내가 나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
혜리성 기억상실증
그와의 소통 이후로 내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인간 김혜리’부터 찾아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젖 먹던 힘 끄집어내서 참 부단히도 애를 썼다. 처음엔 긴 세월 얼어붙어있던 내 인생의 시계가 째깍째깍 작동하기 시작함이 경이롭고 그것만으로 신나서 다른 게 와 닿지가 않았었다.
그러나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연락과 소통의 재개를 통해 나에 대해 나의 인생에 대해 발견해 갈수록, 설렘과 신남은 점점 충격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견뎌온 시간들 모든 게 ‘실제상황’이었고,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삶의 발자취를 찾아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어보고, 기억의 매개체들을 단계별로 활용해서 교통사고 전과 후의 기억을 이어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가 있다가, 시간이라는 녀석에게 익숙해지는 과정 중에 난 좌충우돌 혼란덩어리였다. 가족의 현 모습까지 낯선 기이한 의학적 상태였다.
분명 쭉 같이 살아온 가족인데 가족의 얼굴, 키, 성격, 화법, 나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낯설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낯설음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런 내 상태를 인정하고 사람의 말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인간에 대해 배워나갔다. 백지 상태에서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갔다. 참 기묘하고도 특별한 노력이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고 나 스스로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자포자기했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요상해졌다는 걸 나도 알고 가족들도 알지만 이십대에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잘 몰랐다. 똑똑함의 기준은 다 상대적인 것이기에 사고 후의 내 모습만 알고 겪은 사람들은 그게 원래의 나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나는 그래도 보통 이상으로 똑똑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나는 사고 후 완전 바보가 되었다. 글을 쓸 수도 없었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는 더더욱 없었으며,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소통을 할 수도 없었다.
원래의 나를 나는 알기에 그런 나 자신의 변화가 너무 커서 움츠러들고 숨어버렸었다. 사람들로부터도 잠적해 버리고 세상으로부터도 숨어서 세상과 타인을 향해 철저하게 벽을 쳤었다. 그렇게 살다 그의 기억을 매개체로 수많은 기억들의 필름이 머릿속에서 8배속으로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10년 전 교통사고 당시의 기억부터 기억의 조각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이게 내 기억이라고? 내가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았다고? ’
그 시점에 알고 지낸 지인들의 이름과 얼굴, 외우다시피 했던 전화번호, 그리고 심지어 수능을 공부했던 내용까지 기억이 났다. 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대해 검색하다가 동아일보의 옛날 기사를 우연히 보았고 완전 내 얘기라고 느꼈다.
『 기억을 잃은 소녀가 6년 만에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기억을 되찾은 기적 같은 사건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
기사처럼 나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고 극적이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의 의학적 명칭부터도 내 이름을 담고 있지 않은가! 나의 부분 기억상실증에 다음과 같이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혜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