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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소용돌이

소용돌이 

♧. 소용돌이   

   

“나는 찾고 싶었어!”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고 어둠에 취한 그녀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의 원룸에 다녀온 뒤, 여자와 뒹굴며 행복감에 젖은 남편의 모습이 꿈자리를 어지럽혔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았던 재산, 뜯어진 진주 목걸이를 완성하면 마치 남편이 그녀에게 돌아오기라도 하듯, 구슬을 그러잡고 꿰었던 날들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식탁을 버리고, 진주를 버리고, 둥근 상을 버리면 여자의 풍요로운 식탁은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쟁취가 아닌 버림으로써 남편에 대한 집착도 버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버림의 자리엔 남편이 벗어 놓은 깊고 막막한 어둠이 침묵하고 있었고, 더욱더 풍성해진 여자의 식탁에서 남편의 수저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이혼 서류를 꽉 움켜쥐고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을 놓아줄게. 이제 그 여자를 박차고 나와서 당신만을 위해 살아. 우리 많이 힘들었으니까 이제 자신만 위하며 살아보자.”      


비통한 표정으로 순정을 바라보던 남편이 소리쳤다. 

“나는 찾고 싶었어!”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내가 잃어버린 것, 우리의 소중한 것!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 외도하지 않았어!” 


이혼의 결정은 남편의 외도가 영향은 미쳤지만, 전적으로 외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정엄마를 홀로 떠나도록 내버려 둔 딸의 죄, 돈 때문에 장모를 외면한 사위의 죄, 그것도 모자라 가정까지 팽개치려는 가장의 죄, 그 죄가 못 견디도록 그녀를 아프게 했다.           


그녀의 아픔을 동조하듯 산허리를 휘감은 가로등이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고, 바람에 풀이 비스듬히 누워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숨소리조차 내 밭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상관없어. 이미 우린 충분히 지켜낸 것 같아. 그것으로 됐어.’      

 치고받고 부대껴 제 몸이 가리가리 찢겨도 언젠가 흘러가는 물길의 여정을 만나고 말리라는, 확고한 신념이 소용돌이의 중심을 지켜낼 수 있는 것처럼, 남편도 온몸을 세상에 던져 넣으면 중심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정도를 벗어났을까? 그녀는 오래오래 생각했다.      


 천천히 손을 뻗어 남편의 볼을 어루만지려다, 그만두었다. 배낭 안에서 이혼 서류를 꺼내 가슴에 안았다. 차가운 서류가 한기를 훅훅 뿜어냈다. 추웠다, 몹시 추워서 한시라도 빨리 이혼 서류를 남편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따뜻한 온기로 이혼 서류를 데웠다.      

“자, 받아 이혼 서류야.”     


 남편은 서류를 밀쳐내고 울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남편의 눈 속에 붉은 가로등이 보였다. 붉은 가로등 불빛에 속아 남편을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남편을 외면하고, 거친 물결 안에서 부딪히고 깨어지며 제 몸의 일부를 가만히 지켜보는 소용돌이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울음소리가 소용돌이를 따라 힘차게 돌고 돌았다. 서러운 울음은 말하고 있었다. 힘들었다고, 많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그래… 맞아. 당신은 우리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잃지 않으려고 잠시 당신 몫의 삶을 이탈하려고 했을 뿐이야. 하지만 난 식탁을 버렸어. 당신이 지키려고 했던 그 식탁을 말이야.”      

 순정은 철망을 가볍게 넘어 위험지역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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