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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퇴직

퇴직 

♧. 퇴직      


이를 악물고 담벼락에 의지했다.

‘버텨야 해! 암, 버텨야 하고말고.’    



           

윤재는 지난 1년간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간 비용을 몇 시간 째, 점검하고 있다. 계산은 딱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불안했다. 

‘이봐 김 부장, 횡령죄로 쇠고랑 차지 않으려면 자금관리 똑바로 해. 운영비 세세히 기재해서 보고하고. 교육부 곧, 감찰 들어갈 거야.’

횡령 운운한 경영지원부 박 부장의 고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점검을 다 끝낸 운영비 명세서를 다시 열어 확인했다. 

저녁을 먹고 계산을 시작했는데,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하던 계산을 마지막으로 끝냈을 때,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부장님, 퇴사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정말이에요?”

회사 정문에서 마주친 천 대리가 뜬금없는 소문을 전했다. 

“아침부터 무슨 흰소리야? 누가 퇴사한다는 거야?”

“교육부에 문제가 생겨서 김 부장님이 책임지고 자진 퇴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횡령 운운한 박 부장의 추궁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치졸한 퇴사 압력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휴지 한 장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그의 생활습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부장이 횡령죄 운운할 리 만무하다.      


회사로 들어서려던 그는 다리에 힘이 쫙 풀려 담벼락에 기대섰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고령의 아버지와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마른 낙엽처럼 휙 지나갔다. 

취업하지 못해 대학교 5학년이 된 아들과 재수를 하고 올해 서울권 대학에 진학한 딸아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담벼락에 기댄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를 악물고 담벼락에 의지했다.

‘버텨야 해! 암, 버텨야 하고말고.’


그는 국내 굴지 기업인 L 기업의 모태인 GS사에 1977년 입사해서 L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하며 

35년째 근무하고 있다. 

L 기업은 2011년부터 부서 통합, 명예퇴직, 협력업체 전출, 등을 유도해서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 중이다.      

그가 1년 전, 중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 경영지원부와 교육부가 통합되었고, 그가 하던 일을 경영지원부 박 부장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퇴사 압력은 1년 전부터 진행되었다. 이미 눈치채고 있으면서 강제퇴사 대상자가 자신임을 인정할 수 없었다.      

*     

턱을 괴고 책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과장으로 승진하고 함께해온 책상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는 기술직으로 근무하다가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전환되었다. 

일반 사원과 진급체계가 달라서 사무직 과장치 고는 근무 해가 길었다. 낡은 책상 때문에 만년 과장으로 머물 거라고, 직원들은 낡은 책상을 바꾸지 않는 그를 놀리곤 했다.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헌 책상을 끌고 다니며 유난 떤다는 눈총을 받으면서 낡은 책상은 그의 곁을 지켜왔다.      

새 제품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만, 19세 때 기술직 말단으로 시작해서 부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평사원의 애환을 직접 체험했고, 새 직기는 근로자들의 눈물과 땀이 서린 대가라는 것을 알기에 작은 집기도 아껴서 썼다.      

회사에 몸담은 35년 세월 중, 마지막 날은 제대로 기억에 담아두려고 다시 한번 낡은 책상을 어루만졌다.      

‘휴’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명분은 자발적 퇴사지만, 정리해고로 쫓겨나가는 회사, 무슨 미련이 남아 청승을 떠는지 입맛이 씁쓸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고개를 들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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