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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10. 2023

울면 안 돼

나도 선물을 받고 싶어요

울면을 팔지 않는 중국집 이야기도 아니고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산타 이야기도 아니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이야기도 아니다. 쉰두 해를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비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볼품없는 가장 바로 내 이야기다. 오늘은 하루종일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데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내 아이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445일이 되는 날이고 본격적인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받은 지 143일이 되는 날이며 그 여파로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 지 75일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다시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수면장애가 찾아온 지 12일쯤 되면서 4개월 이상 아이에게 희망의 끈이 되어주었던 독일어 과외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내 아이에게 다시 절망과 불행이라는 암초가 찾아온 것 같아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이의 투병기를 함께 하면서 이런 날이 하루이틀이었겠는가마는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가 사그라들 것처럼 흔들리는 오늘만큼은 이겨낼 재간이 없다. 아이 걱정에 편한 날이 없는 아내는 아침부터 감기몸살이 제대로 왔고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대학생 딸아이는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들을 챙기면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마른 눈물을 쏟아냈다.


작년 겨울의 끔찍했던 기억이 연상될 만큼 올 겨울도 내 마음은 황량하다. 아이는 많이 밝아졌고 가족과도 잘 지내지만 여전히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 한해를 통째로 우울증에 저당 잡힌 아이에게 대학입시는 버거운 일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유학이라는 원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건 스스로를 버티게 해 줄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그 명분이 더 큰 좌절로 돌아올까 노심초사했던 내 염려가 기어코 현실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나는 혼란스럽다.


그래도 나는 울지 않는다. 우는 아이를 앞으로도 수없이 다독이고 일으켜야 할 내가 아이 앞에서 울어서야 되겠는가? 아비를 잃고 목메임을 알았고 아들을 잃을 뻔 한 뒤 미어짐을 알았다. 그리고 오늘은 마른 울음을 알았다. 더 얼마나 알아야 어른이 되는 걸까? 아이가 내일 점심엔 초밥이 먹고 싶단다.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직은 살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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