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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05. 2023

구만리

우울증에도 요요가 오는가?

지난주에 산소 이장을 위해 아이와 할아버지의 고향(전북 부안)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개장을 보기 위해 하루 일찍 내려왔고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곳이라 추억 쌓인 장소들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답사했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겨울이 완연했지만 아직 가을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곰소항의 갈치요리는 여전히 일품이었다. 유재석이라는 방송인이 다녀간 후 명소가 되어버린 베이커리 카페에서 곰소염전의 소금을 넣은 흑당소금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향했다.


평일의 이틀이나 학교를 빠지고 올만큼 아이에게는 중요한 일정이었다.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서 무리를 하여 좋은 숙소를 잡았고 저녁 전에 가볍게 당구를 치며 기분전환을 했다. 요즘 들어 아이의 컨디션에 적색신호가 들어오고 있기에 여러모로 공을 들인 여행이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산소에 갔고 화장장을 거쳐 분당의 묘역에 안치될 때까지 꽤나 고된 여정을 아이는 잘 소화해 주었다. 그렇게 금요일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두 달여간 놀라운 속도로 좋아졌기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전환점이 왔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시적이라고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나의 확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다만 정신적 건강이 급격히 좋아지는 것과 달리 신체적 건강에 위험신호가 오고 있다는 것을 경계했을 뿐이었다. 아이는 일 년 새 급속도로 체중이 불었고 그런 이유로 허리, 다리, 무릎에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걱정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언제나 방심하는 순간에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내가 놓쳤던 몇 가지 중요한 증상이 최근 두 주 사이에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 상황이 내가 조심하려 했던 터널의 끝인지 혹은 더 긴 터널의 시작인지 나는 분간할 수 없다. 터널의 끝도 시작도 언제나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우울증과 약 부작용으로 오랫동안 어지러움증과 하지마비에 시달렸다. 덕분에 지팡이, 목발에 휠체어까지 장만하게 되었지만 최근의 신체증상은 조금 달랐다. 엉치뼈 부근이 찌릿하고 오른쪽 다리에 힘 풀림이 반복되었다. 엑스레이 진단으로 디스크 소견은 없었기에 단순히 체중 증가에 따른 부작용쯤으로 치부하며 도수치료, 추나요법 등 물리적인 치료를 가끔 받게 했는데 최근 증상이 악화되었다.


정형외과에서는 정밀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고 대학병원의 초기진단은 천장 관절염이었다. 더 우려스러운 건 단순히 관절염으로 보기에는 증상이 심해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며 유전자 검사, MRI, CT검사까지 받게 하였다.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희귀 난치성 유전질환이라는 강직성 척추염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나의 방심이 불러온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두 번째는 꽤나 호전되었다고 믿었던 우울증의 재발이었다. 아이는 지난주부터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했고 수면장애로 인해 과각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주말 아침에는 급격한 우울감을 호소했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볼 수 없었던 증상이다. 이제 좀 나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증이 심했던 때의 모습을 잠시 보인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아버렸다. 아이의 증상에 대한 나의 추측은 두 가지 가설로 수렴되었다.


첫째는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면장애와 우울감이 다시 찾아왔다는 가설이다. 특히 지난주에는 지방에 다녀온 관계로 주 1회 받는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건너 띄웠다. 한 주간의 정신적 피로를 푸는 장치로 토요일의 상담이 큰 역할을 해왔는데 아이는 이번주에 그럴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유학준비를 위한 독일어 과외가 5개월째 접어들면서 아이에게 큰 학업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


두 번째 가설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큰아이의 친구 중에 입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의 패턴과 유사한 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갖은 고생 끝에 입시에 성공하여 우울증이 호전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다시 악화되면서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흔한 말로 조울증이었다. 극도로 들뜬상태와 급격한 우울감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병으로 우울증 중에도 예후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이것만은 아니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켜보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속수무책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강직성 척추염과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판명되더라도 나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 기대와 조급증이 아이의 재발을 부추긴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나는 또 잠시 흥분했고 또 잠시 성급했음을 반성한다.


젊은 청년을 보며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앞길이 구만리라는 말이 있다. 내 아이의 미래도 구만리요, 우울증 극복의 길도 구만리다. 난 고작 한걸음을 떼고는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다시 돌아갈 방법은 느긋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길 뿐이다. 그렇게 삼만리를 동행하면 아이에게 남은 육만리가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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