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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Oct 25. 2019

어이쿠 잘 했다.

 성인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또는 성인으로 인정 받는 일은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 아닐까? 내가 운전 면허를 딴 날은 대학 2학년 마치고 그 해 겨울이었다. 나태하고 나름 잉여질로 바쁜 대학생활에 차일 피일 미루다 군대 입대 날짜를 얼마 앞두고 면허시험을 응시했다. 내심 면허증을 가지고 가면 운전병으로라도 빠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컸었다. 물론 아무 상관없었다는 것이 금방 판명났었다. 여하튼 그 해 겨을 내 운전면허 시험준비는 춘천에서 이루어졌다. 춘천이 사람이 적어 최대한 빨리 시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내 기준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고 합격 통지를 받던 날,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버지는 말 수가 없는 분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불만도 거기서 시작이었던듯 하다. 술이나 한 잔 걸치시면 그동안 쌓아놓았던 감정과 걱정을 쏟아내셨다. 우린 그런 아버지의 의사소통 작동방식이 싫었다. 지금 기억으로 내가 운전면허를 딸 당시 아버지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계속 응시하고 계셨지만 필기시험의 벽을 넘지 못하셨다. 불합격의 날은 더 말수가 없으셨고 침묵의 깊이가 더 깊었다. 또는 머쓱한 맘에 술 한잔 걸치고 그동안 예치해두었던 감정과 걱정을 쏟아내셨다. 여하튼 그날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난 사실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4남매중 막내다.) 운전면허 합격 했어요" 그러자 아빠는 "어이쿠 잘 했다." 

 

 어이쿠 잘 했다... 난 그 때까지 아버지에게 그런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어이쿠 잘 했다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을 합격했을 때도, 입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아버지는 인사치레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맘 같이 표현을 못하시는 분이셨다. 그 날 아버지의 충격적인 말에 나는 상투적이지만 내 귀를 의심했다. 잘 했다를 연발하셨던것으로 기억한다.(선택적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아버지의 운전면허 응시원서는 두껍고 무겁다. 응시할 때 마다 응시 수수료 납부 명목으로 우표같은 것을 사서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수필증이라고 한다. 수 년간 필기시험에서 떨어진 아버지는 나름대로 부끄러움과 개인적인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높은 벽을 절감하셨던듯 하다. 그런데 아들이 한 방에 붙었다고 하니 그렇게나 기쁘셨을까? 

 

 나는 그 이후로도 "어이쿠 잘 했다"를 꽤 기대했다. 군 제대 후 다시 대입을 보고 합격 했을 때 아버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나 기대했고,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할 때도, 마음에 쏙 들어하시는 며느리감을 인사시켰을 때도, 첫 딸을 얻었을 때도 아버지의 입을 유심히 보게 되지만 들을 수 없었다. "응 그래" 정도였다. 대부분 아무 말씀 없으셨다. 아니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 마음속에서 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하셨을 수도 있을거 같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 아버지는 그러셨을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둘째를 얻고 얼마 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이제 더 들어볼 기회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운전면허증이 더없이 소중하다. 개나 소나 딸 수 있다는, 너무 쉬워 외국에서 따러 온다는 우리 나라 운전면허증, 하지만 나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면허증을 가만 보면 아빠의 그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 "어이쿠 잘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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