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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Nov 11. 2019

나의 흔적이 반갑다

돈을 벌고 싶니?, 부자가 되고 싶니?. 이게 니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

 재테크 관련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제 그만 까먹고 돈 좀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그러다 부동산 관련 책을 정말 오랜만에 열심히 읽었다. 실전매매를 위한 총론서 비슷한 류였는데 다 읽고 보니 내용이 부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이 막 생겨나고 의심이 생겼다. 헐... 책을 읽을 때는 항상 글을 의심하고 단어를 곱씹고 작가를 합리적으로 비판하면서 읽어야 된다고 그러던데.. (feat. 초서독서법)


 내가 재테크 관련 도서에서 내가 꿈꾸었던 독서법을 이루다니...

역시 자본주의 시대에 열심히 적응 중인 내가 기특하고, 궁하면 통한다더니 나의 물욕이 꽤 진지하구나 했다. 

여하튼 책을 읽다가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에 답답하던 찰나, 책꽂이에 내가 찾는게 있었던 거 같은 아리송한 기억이 있어 얼른 서재(라고 하지만 사실은 창고) 구석 책꽂이에 가서 찾아봤다. 새 책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표지가 깨끗한 부동산 관련 책이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재테크 광풍이 불었다. 뭐 우리 사회는 항상 재테크 광풍이  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남의 집 여자를 데려왔으니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한때 재테크 관련 책을 많이 샀고 많이 읽었었다. 그때 샀던 책 중의 하나였다. 


 얼른 뽑아 들고 살펴보았다. 새것 같다고는 했으나 그래도 세월의 풍상은 못 비켜갔던 듯 누레진 속지가 화장으로 한껏 예쁘게 꾸민 어느 고운 할머니 같다. 

책을 살펴보니 책이 두껍고 나름대로 자세하게 설명하여 읽는 재미는 덜하지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꽤 충실한 책이었다. 책 내용보다는 벌써 10년 전에 이런 책을 선택한 나의 안목에 나름 으쓱해진다.


그러다 어느 페이지에서 책에 밑줄 그은 나의 흔적을 보았다. 아주 낯선, 내 기억에 없는 밑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은 내가 샀으며(산 기억은 있으니까) 누구에게 빌려준 적이 없고 집사람은 재테크 관련 책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밑줄까지라니.. 상상하기 힘들다.


어쨌든 내 소행이 확실한 그 밑줄을 보니 일단은 반가웠다. 그리고 그 당시 젊은 시절에도 돈을 벌어보겠다고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한 내가 짠했다.(가엾다가 맞지만 왠지 짠했다가 어감이 적절하다.)


이제 책 내용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 흔적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여러 곳에서 내 밑줄을 찾을 수 있었다. 밑줄 그은 곳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꽤 나름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음에 기특하고 열심히 읽고 공부한 흔적에 나 스스로가 안쓰럽고 그렇게 공부했음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허무했다. 


유치하지만 타임머신이 있다면 밑줄을 긋는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헛고생이야!, 그냥 서울에 아무 곳에나 집 한 채만 사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의  흔적을 만나는 일, 꽤 재미있고 애틋했다. 거기에 더해 글쓰기로 내 흔적을 많이 남겨야겠구나라고도 생각했다. 단순히 밑 줄 만으로도 내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내 생각을 표현한 글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한참 지난 옛 글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만나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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