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ke Nov 12. 2019

자동차 고장이 한 가정에 미치는 영향(1)

제대로 된 공동체는 고난에서 힘을 발휘한다.

자동차가 고장 났다. 일전의 그 녀석이다.( https://brunch.co.kr/@imjake/3 참고)

일요일 오전이었다. 큰 녀석을 데리고 아내의 동네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이가 있는 여느 가정 그렇겠지만 우리 집 약속과 스케줄이 있는 오전은 항상 정신이 없다. 정신없이 먹고 옷 입고 서둘러 출발하려고 하는데 차가 문이 안 열린다.


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꽤 많은 잔고장이 우리를 괴롭혔어도 문이 안 열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마트키를 아무리 눌러도 차는 묵묵부답.

 스마트키에서 열쇠를 뽑아 차문에 직접 넣어 돌리니 열린다. 이제 시동을 넣을 차례, 두근두근한다. 시동도 안 걸리는 거 아닌가 불안하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시동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차 안의 조명만 깜빡깜빡할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재빨리 검색을 한다. 수많은 자동차 수리점 광고를 스킵하고 찾아낸 해답은

1. 스마트키를 가까이 대고 버튼키를 누를 것

2. 그래도 안되면 서비스센터에 입고시킬 것

3. 일반 카센터 안되고 스마트키 관련이라 정식 서비스센터로 갈 것.


 스마트키를 아무리 핸들 근처에 가까이 대고 시동 버튼을 눌러도 소용이 없다. 이거 점점 일이 커진다. 일반 카센터도 아니고 서비스센터에 넣어야 한다니.. 일단 지금은 일요일이라 서비스센터에 입고시키기엔 늦었다.

내일 내가 일찍 조퇴를 하고 긴급출동을 불러서 제일 가까운 헌데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넣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당분간 로체(차 이름)를 이용할 수 없다.

 

 로체는 집 사랍의 출퇴근으로 이용한다. 더불어 우리 집 두 딸도 같이 그 차로 등교한다. 당장 내일부터 며칠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 등교, 등원을 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들의 학교와 유치원이 아내의 직장 바로 근처라는 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 등교, 등원을 하게 되면 아침 기상 시간이 30분이 당겨진다. 차로 가면 십분 거리의 목적지가 대중교통을 타면 40분으로 늘어난다. 애를 키워 본 엄빠들은 알 것이다. 고작 30분일 수도 있지만 그 30분을 당기기 위해선 한바탕 전쟁이 휘몰아쳐야 한다.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꽤 걸어가야 하고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경기도 외곽에서 산다.


 다음 날 평소와 다르게 일찍 알람이 울린다. 먼저 애엄마가 일어난다. 힘겨워보인다. 아니 난 눈을 뜨지 않았다. 소리와 인기척, 아주 미세한 한숨소리를 느끼면 알 수 있다. 화장실에서 씻는 소리가 들린다. 그다음 부엌으로 가서 뭔가를 정리한다. 그리고 아직 침대에 남아있는 우리의 이름을 한 사람씩 크게 부른다.


 첫째가 벌떡 일어난다. 우리 첫째는 예민하다. 하지만 곧 피로감을 못 이기고 몸을 털썩 다시 눕는다. 둘째는 자는지 깼는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나도 그렇다. 더 눕고 싶다. 평소와 다른 이른 시간의 깨움에 내 몸이 멍하다. 그래도 얼른 일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아침부터 아내에게 한소리 먹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런 찰나의 생각들이 지나가고 더 자고 싶다는 욕구와 이제 안 일어나면 혼난다는 이성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거의 항상 욕구가 이긴다.


 다시 한번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뾰족하다.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하는데..

역시 첫째가 다시 일어난다. 그러더니 알았어..라는 볼멘 목소리로 터덜 터덜 침대에서 나와 어제저녁에 골라놓은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안방으로 아내가 들어온다. "오빠가 매일 늦게 일어나니까 애들도..." 이 말을 시작하면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라고 보면 된다. 나는 얼른 일어나 욕실로 도망치고 서둘러 준비를 한다.


 이제 둘째만 남았다. 이 녀석은 응석받이로 키워서 그런지 첫째와 많이 다르다. 첫째에 비해 애교도 많고 눈치도 빠르고 무대뽀다. 잠은 벌써 깬 거 같은데 침대에서 나오질 않는다. 늦게 나올수록 대장 같은 느낌을 받는 건지. 괜한 고집을 부린다. 애엄마의 인내심의 한계가 내가 있는 욕실까지 느껴진다. 드디어 최후통첩,

"너 등짝을 맞아야 일어날 거야!!"

그제야 둘째는 움찔 하지만 그래도 몸만 잠깐 꿈틀 하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드디어 이불이 걷어치워지고 등짝에 철썩 애엄마의 응징이 이루어지자 둘째는 울음을 터뜨리며 침대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를 찾는다. 등짝 맞은 자기를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준비를 마친 나는 눈물을 짜고 있는 둘째를 안아 옷을 입히고 눈물을 닦아주고 식탁에 앉힌다. 첫째는 어느새 준비를 끝내고 식탁에 앉아 비교적 밥을 퍽퍽 잘 먹는다. 문제는 둘째다. 방금까지 울던 놈은 식탁 위에 인형이랑 작은 장난감을 가져와 만지작거리며 성실히 먹지 않는다. 마음이 급한 우리 내외를 조바심 나게 한다. 또 몇 번의 엄마의 뾰족한 소리가 들리고 나도 괜히 무섭게 빨리 먹으라고 닦달하지만 무대뽀다. 내가 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떠먹여 준다.


 얼마 전까지 떠먹여 주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먹게 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못 참겠는지 내가 떠먹여 주는 걸 애엄마는 눈감아 준다. 드디어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애들은 얼른 치카를 하고 가방을 메고 집으로 떠난다. 느림보 둘째는 이때부터는 매우 빨라진다. 이제는 괜히 게으름을 피우다간 자기를 혼자 집에 놓고 갈 수도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귀신같이 때를 알아채고 바쁘게 움직인다. 바쁘지만 서툰 움직임이 웃기면서도 안쓰럽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세 여자는 엄마를 필두로 첫째 딸, 둘째가 순서대로 나간다. 마음이 바쁜 엄마는 나가면서 대충 인사하고 쌩하니 나가고 그 뒤를 첫째가 아빠 안녕 인사해준다. 마지막으로 둘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빠 안녕, 오늘 일찍 와? 오늘 꼭 일찍 와야 돼" 라며 뒤돌아서서 나랑 인사하고 눈 맞춤하고 말을 건다. 그럼 첫째가 "빨리 와!! 설희!!"라고 재촉한다. 그제사 이미 멀어진 엄마의 뒤를 바쁘게 뛰어간다. 바쁘게 뛰어가는 조그만 몸뚱이들이 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그 바쁜 와중에 아빠를 챙겨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언제 저렇게 컸는지 신기하다.

내가 좀 잘났으면...

엄마가 전업주부여도 되면...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고 여유 있게 아침인사를 주고받는 가족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자괴감도 든다.


이제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나도 바쁜 걸음을 시작한다.

 


이전 05화 나의 흔적이 반갑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