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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Nov 14. 2019

엄마가 뿔났다.(1)

어머니와 단둘이 샤먼 여행(2017.04.30~2017.05.03)

나는 막내이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의 환갑 때 여전히 학생 신분이어서 아무런 기여를 못했다. 그것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나름 결혼한 후에는 국내로 부모님을 모시고 꽤 다녔다. 형이나 누나는 그 기간 동안 해외도 몇 번 모시고 나갔다. 그래서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을 한 번 해야지 해야지만 하고 미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원래는 우리 가족 모두 가기로 했으나 애들까지 가면 의도치 않게 엄마를 손자 돌보는 보모 역할로 데려가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엄마랑 둘이서 같이 가겠다고 집에 말하니 흔쾌히 오케이 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그즈음 중국 샤먼 여행이 유행이었다. 중국이라면 나도 좀 아는 편이었다. 4년 전에 한 일 년 동안 중국에서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먼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엄마는 막무가내로 반대셨다. 가족끼리 가야지 다 늙은 내가 거기를 왜 따라다니냐며 손사래를 치셨다. 하지만 계속되는 며느리의 설득에 마지못해 가기로 하셨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시골에서 짐을 잘 싸가지고 오셨다. 나름 아들과의 여행이라 옷도 새것 같고 모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둘이 같이 비행기를 탔다. 처음으로 같이 비행기에서 주는 밥도 먹어보고 3시간 반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도착한 샤먼은 공기도 깨끗했고 햇살이 따가웠다. 샤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로 도착하자 괜찮은 뷰에 괜찮은 룸 상태가 초반부터 여행의 만족도를 높였다. 좋은 건 여기까지 였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호텔에만 있을 수 없어 밖에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일단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해변이 있었다. 그래 엄마가 바다를 좋아하시니 첫 일정은 해변이다. 택시를 잡고 목적지를 말하니 택시 기사님이  전혀 내 중국어에 반응이 없었다. 어쨌든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니 알았다는 몸짓으로 택시가 출발한다. 택시는 한참 가다가 멈추었다. 길 한복판인데 내리란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해변이 아닌데.. 택시기사의 몸짓은 조금만 올라가면 나온다는 뜻 이리라. 어쨌든 내렸다. 엄마와 난 둘이 걸었다. 땡볕이었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 대충 방향을 봐가며 걸었다. 막막했다.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었다. 30분 정도 걸었더니 해변이 나오긴 했다. 이미 우리는, 엄마는 많이 지쳐있었다. 지친 우리는 바다가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엄마는 화장실이 급하셨다. 노인은 화장실을 자주 간다. 그리고 실수도 쉽게 한다. 그래서 화장실이 근처에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긴 해외인 데다가 내 중국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드디어 찾았다. 엄마를 크게 불렀다. 그런데 들어가려고 하자 중국 여자가 뭐라고 하며 길을 막는다. 눈치를 보니 돈을 내란다. 엄마는 무슨 공중화장실에 돈이냐며 노인 특유의 한국말로 대거리를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는 코웃음도 안쳤다. 난 "원래 이래 엄마. 그냥 들어가"라고 말리고 돈을 얼른 화장실 문지기에게 쥐어줬다. 엄마는 물러섰다. 일단 볼 일은 봐야 할 일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뭔 일이 생겼나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윽고 나온 엄마는 그 안에도 사람이 한가득이라고 담배 피우는 여자들이 안에서 담배 먹고 얼른 안 나와서 한소리 했다고 씩씩거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4년 전에 잠깐 중국에 있었던 일이 자신감이 되어 샤먼에 날아왔지만 내 중국어는 통하지 않고 내 입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거의 벙어리였다. 게다가 엄마는 평생 쉽고 곱게 사신 분이 아니라 수틀리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막무가내였다. 우리 둘째가 할머니를 닮았나 보다.


 말이 안 통하여 자신감이 급속히 추락한 나와 같이 다니기 힘든 노인네와의 여행이 쉽지 않겠구나를 절감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하도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느라 점심도 굶었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는 여행 내내 끼니를 잘 챙기지 못했다. 때늦은 점심으로 간신히 좌판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아 우육면 같은 것을 먹었다. 바닷가 잠깐 보다가 우리는 얼른 택시를 잡고 호텔로 돌아왔다. 난 이제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든든히 먹고 느지막이 나왔다. 나는 틈만 나면 검색하고 간단한 여행중국어를 되뇌며 준비했다. 둘째 날은 샤먼의 대표적 관광지인 구랑위 섬으로 가려고 나왔다. 호텔 셔틀버스로 구랑위 섬으로 가는 여객터미널로 갔다.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터미널에 놀라고 엄청난 인파에 넋을 잃었다. 맞다 오늘은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샤먼은 중국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며 게다가 5월 1일 노동절은 중국의 연휴로서 이때 사람들은 많이 여행들을 떠난다. 우리의 설날과 추석과 같이 말이다. 수많은 인파에 묻혀 잘못하다간 엄마를 잃어버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으로 나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 일정을 변경하여 구랑위는 다음에 보자고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내가 뭐라고 해도 알았다고 하신다. 일단 작전상 후퇴로 내일 보기로 했던 샤먼 먹거리 동네인 중산로와 남해 보타사 그리고 샤먼대학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택시를 간신히 잡고 중산로에 내렸다. 먹거리 동네이기 때문에 길거리 음식부터 먹기로 했다. 해산물을 파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서 이것저것 시키는데 배부르다며 왜 자꾸 시키냐고 화를 내신다. 우린 조식 이후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데 배가 부르다니...


 엄마는 다 드셨다. 나와서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많아 아이스크림 하나 샀다. 생과일을 얼린 것이라 값이 꽤 나갔다. 그래도 신기한 것이라 하나씩 샀더니 또 값을 물어보신다.

"이게 뭐여.. 이게.. 고작 하드 하나 값이 왜 이렇게 비싸, 중국은 물가도 싸다던데 다 거짓말이었네."

 슬슬 지치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남해 보타사에 들렸다. 산길을 꽤 많이 걸었다. 그리고 엄마는 자주 쉬었고 쉴 때마다 누웠다. 마지막으로 아주 예쁘다는 샤먼대학에 갔다. 거기 가서도 과일도 팔고 한국에서 못 보던 먹거리도 있어 조금씩 살 때마다 잔소리에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사실 신기해서 사보면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도 있어 버리게 되는데 그것을 엄마는 못 참는 것이었다. 돈 주고 산 것을 버린다는 것은 우리 엄마 사전에 없었다.

이미 엄마의 잔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빨리 호텔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 좀 해 엄마!! 여행을 왔으면 좀 즐겨야지 비싼 것도 아닌데 좀 사 먹어 보면 어때!!"

나는 화를 내었다. 그리고 엄마도 뿔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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