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ke Oct 26. 2019

소오강호

험난한 강호에서 거만하게 웃다.

 우리 집은 차가 두 대이다. 맞벌이인 때문이지만 벌이에 비해 과소비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돈 모아서 BMW사의 차를 사는 것을 목표로 둔 적도 있지만 물거품이 된 이후 차는 소모품이고 이동 수단일 뿐이라는 합리화를 시전 중이다. 현재의 차들 모두 형편에 맞추어 중고로 구매했다.  

 

 한 대는 2015년식 QM3이고 연비가 좋아 출퇴근 거리가 제법 되는 내가 주로 이용한다. 다른 한 대는 2009년식 로체 이노베이션이며 집사람이 주로 이용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로체 이노베이션이다. 2014년에 구매했다. 성남의 모 회사에서 회사 차량으로 이용하던 것을 쓸모가 없어져 내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SK엔카를 보고 적당하여 내가 직접 성남까지 갔었다. 중소기업이었고 한 회사 직원이 날 데리고 주차장에 있던 그 차를 보여주었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보통사람이다. 내가 뭘 알겠냐마는 차를 보니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사실 차를 고르고 흥정하는 지난한 세월을 겪은 후라 나는 그 차를 보고 얼른 구매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매도자는 900만 원에 내놓았다. 매수자는 조금이라도 무조건 깎자는 마음이다. 차 상태에 대해서 볼 만큼 본 상황, 이제부터 슬슬 흥정의 판이 벌어진다. 내 머릿속은 수많은 계산으로 복잡해진다. 주변 공기부터 달라진다. 나도 상대도 배팅의 순간이 온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미 난 여러 번의 중고차 흥정을 통해서 강호의 도를 깨우쳤다. 말도 안 되는 가격 후려치기로 혼을 빼놓는 탈혼수, 차가 전혀 급하지 않고 당신의 차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기는 무관심법, 온갖 흠을 잡아 기분 상하게 한 뒤 마지막에 큰 칭찬으로 감동 주는 흠흠신권, 이도 저도 안되면 "남자대 남자로 이야기합시다"로 시작하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섭혼술 등 갖가지 흥정 무공을 깨우쳤던 것이다. 게다가 상대의 반박 무공에 대해 3수, 4수의 앞을 내다보고 그에 대한 대응술도 계산이 끝난 시점, 나는 흥정 무공의 정수를 모아 만든 한 수 30만원을 깎아달라고 제시했다. 작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그 "수" 였다. 그의 예상된 무공 아니 대응을 기다리며 난 다음 수를 잔뜩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예상외로 그는 흔쾌히 미소는 덤으로 바로 그러마 해버린다. 그 순간 바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백만 원을 깎아달라고 해도 깎아줄 태세였는데 소심하게 30만 원만 부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적인 늒임.

 

 그 당시 그 직원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어차피 차는 자신의 차도 아닌 회사차인 데다 그동안 나 말고 많은 매수자들이 와서 자신의 업무도 바쁜데 귀찮게 해왔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빨리 사고 싶고 그 빨리 팔고 싶었던 거였다. 

 

 이미 승부가 끝난 상황 다시 붙자는 것은 강호의 도가 아니었다. 난 뒤를 못 닦은 찝찝함으로 차값을 이체하였다. 차를 싸게 산 나보다 차를 판 그가 더 행복해 보였다. 오히려 이제 그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도로 주행을 안 해보고 사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래서 내가 "차가 혹시 문제가 있나요?" 하수 같은 질문을 하니 "아니 뭐 차는 별 문제없는데 안 타보시고 사시니까.. 근데 차는 진짜 큰 문제없었어요." 이체까지 끝난 이 마당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뭐 괜찮습니다. 엔진 소리도 조용하고 선생님 말을 믿습니다."  

 

 공적인 업무는 끝났고 이제 우린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그간 있었던 중고차 매매와 관련하여 매도자의 입장에서 겪은 일을 술술 털어놨다. "어휴 정말 많이 전화가 와서 뭔 일을 못 할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찾아오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 지 특히 중고차 매매상들이 그렇게 옵니다.", "찾아와서는 이게 어떻다, 저게 어떻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내가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했다나 그러면서 2백만원은 그냥 깎고 시작하더라고요", "아 진짜 도둑놈들.. 차를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하더라고요." 난 영혼이 탈탈 털린 상태로 네네 만 연발했다. 그는 거기서 더 나갔다. "다음에 중고차 사시면 여기를 보세요. 차를 보시면 말이죠 여기, 여기를 뜯어보세요. 여기를 뜯으면 차가 수리한 흔적이 보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이렇게 하더라고요. 헤헤 저도 이번에 배웠습니다" 이러면서 나를 가르쳤다.

 

 차량 이전을 하고 나서 그는 나에게 내 개인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차가 팔렸으니 회사에서 들어놓은 차보험을 해지하고 보험료를 환급받고 싶어 했다. 보험료를 해지하려면 매수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보험가입서를 얻고 싶어 했다. 철저한 사내였다. 이미 나는 정신적 무장해재를 당한 상태였기에 순순히 보험가입증명서를 내주었다. 나는 내 차가 된 로체 이노베이션을 끌고 집으로 말없이 돌아왔다. 그 날로 바로 카센터에 입고시켜 경정비를 보았다. 내가 깎은 30만원이 딱 들어갔다. 그 이후로 타이어를 4짝 다 갈아야 했고, 베어링이 나가 수리했으며, 문짝이 안 열려 수리, 배터리도 갈고, 시동이 안 켜져 속 썩인 거 빼고는 그 사내 말대로 큰, 아주 큰 문제는 없었다. 털썩.

 

 그 날의 거래는 이랬다. 나는 빨리 사고 싶고 그 빨리 팔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하수였고 그는 고수였다.

 누구나 아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어느 회장님의 말씀이 나에게 새롭게 들린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추가로

 "그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면 니가 바로 호구다" 뼈에 새겨야 한다.

이전 01화 어이쿠 잘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