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선택과 나의 태도
요즘 내가 언사를 신경 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마시다’와 ‘먹다’ 동사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중에 ‘커피 먹자’와 ‘커피 먹을래’라는 말이 특히 어색하고 거슬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나, 어느 순간 ‘커피 먹었어?’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할 때, 나 스스로가 낯설어지면서 고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액체를 입에 넣는 행위엔 마신다는 단어가 알맞는데, ‘먹다’ 동사는 왜 굳이 ‘마시다’의 자리까지 넘보는 걸까?
둘 다 입에 음식물을 넣는 의미의 동사다. 근데 ‘먹다’의 사용 가능 범위가 ‘마시다’보다 넓다. 그래서 먹다를 어느 음식 뒤에 써도 틀리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 주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고, 두 동사를 민감하고 섬세하게 구분하고 싶은 이유를 서술하고 있는 것뿐이다.
마시는 행위와 먹는 행위의 차이는 그것을 내가 의식/무의식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대하는가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1. 커피 마신다 vs. 커피 먹는다
2. 술 마신다 vs. 술 먹는다
3. 차 마신다 vs. 차 먹는다
세 가지의 마실 것으로 비교해 본다. 위 2개에서 두 동사는 교체 사용이 가능하다. 굳이 나의 기준으로 차이점을 만들어보자면,
커피를 마시려면 내가 좋아하는 로스팅 원두를 집에서 직접 갈아 내리거나, 분위기 좋은 유명 로스터리나 에스프레소 바에 가고,
커피를 먹으려면 주중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테리아나 메가커피에서 테이크아웃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술을 마시려면 좋은 안주와 페어링하겠다는 기본 마음가짐을 가지고 접객 서비스 수준이 평균 이상 되는 주점에 가서 술을 주문하는 것이고,
술을 먹으려면 당일 오전에 동성 친구 몇 명과 약속을 잡은 후 양 많고 가성비 좋은 안주가 있는 역세권 주점에 가면 되는데, 주로 취하기 위한 음주가 되다 보니 보통 다음 날 숙취가 있고, ‘아파 보이시네요’라는 걱정 어린 동료의 인사에 ‘제가 어제 좀 달려서..’로 대답할 때 더 잘 어울린다.
근데 차(tea)를 마실 때는 ‘먹다’라는 동사가 이질적이다. 마치 우리지 않은 찻잎을 씹어 먹는듯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내게 차를 마실 때 연상되는 그림은, 고즈넉하거나 차분한 매장 내에 편해 보이는 2인석 의자다. 또, 차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준비, 혹은 예의 문화가 있을 것 같다. 찻집은 더 각 잡고 가게 되는 것 같고.
정리해 보면, ‘먹다’와 ‘마시다’는 빈도와 내 마음 가짐에 따라 사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의 마시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내게 일상적인 마실 것이 되고, 자연스레 익숙해지면 ‘먹다’는 단어가 점점 혼용되게 된다.
그래서 먹다는 단어엔 그만큼 우리에게 무장해제시키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야, 우리 친구 먹자!”라고 할 때, 그 사람과 자연스레 익숙해진 후에 할 수 있는 말이고, 상대방에게 내 마음의 벽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시려는 것을 의식적으로 내 기분과 결부시키려 노력할수록 ‘마시다’만큼 알맞은 동사는 없다. 내게 아침 커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모닝커피를 마실 것이고, 점심엔 쓰리샷 아메리카노를 때려 넣을 것이다.
‘my body, my choice’, 내 입에 뭐를 넣던 내 선택이고, 그 행위에 맞는 단어도 내가 정하는 것이다. 목적에 맞게 까탈스럽게 골라 쓰자. 여기서 타인의 생각은 필요 없다. My attitude, my choice of words!
essay by 준우
photo by Natan Dum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