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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롱 Jun 14. 2023

그 티셔츠를 찾아서


마침내, 아끼던 티셔츠를 버렸다. 


  10년 가까이 입은 하얀색 티셔츠는 적당히 낙낙한 품에 시원한 소재, 단순한 디자인과 내가 꼭 좋아하는 톤의 하얀색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데라고는 단 한 구석도 없는 옷이었다. 그만한 옷을 다시 찾지 못해서 2만원 주고 산 티셔츠 한 장을 신주단지 모시듯 매번 손빨래 해 가며 아껴 입어왔던 터였다. 

  아무리 아껴 입은들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늘어난 목은 둘째치고 언제 생겼는지 구석구석 변색되어 빨아도 지지 않는 얼룩이 남고 말았다. 그런 때면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과탄산수소에 30분 이상 담갔다가 조물조물 빠는 것.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내 손길과 세월에 시달린 티셔츠에게 마침내 그 방법도 먹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하긴 얼룩에 가장 취약한 하얀색 티셔츠를 그토록 오랫동안 입으면서 과탄산수소에 자주 담가 빨고 깨끗하기를 요구하는 건 나를 위해 할만큼 한 티셔츠에게 못할 짓인지도 몰랐다.

  오직 티셔츠 한 장을 찾기 위한 웹서핑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주 찾던 쇼핑몰을, 그 다음엔 친구가 알려준 괜찮은 사이트들을 드나들었다. 하얀색, 적당히 여유있는 품, 그림이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민소매 디자인. 이런 티셔츠 하나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여름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날마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는 광고를 보고 쇼핑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인스타 광고를 한번 클릭하고 나니, 똑똑한 인스타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귀신같이 알아채고서 하얀색 민소매 상의를 피드에 띄워주기 시작했다. 귀찮던 인스타 광고가 요즘처럼 고마울 때가 있었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또 자다가 깨서도, 새로운 쇼핑몰이 보이면 눈에 불을 켜고 들어가 상의 카테고리를 뒤적인다. 최근 몇 년간 옷 쇼핑과는 멀어진 생활을 하다가 티셔츠 하나에 이렇게 집착하고 있으려니, 내 삶이 몽땅 티셔츠 한 장에 달린 듯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다.

  아직도 내가 원하는 그 티셔츠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한여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오늘밤에도 나는 미지의 쇼핑몰을 찾아 인스타에 접속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바로 그 티셔츠가 마침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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