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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Dec 24. 2021

오늘의 환자

돈이 없어요.

오늘 중년의 남자 환자분이 오셔서 스케일링을 받고 싶어 하셨다.

검진해보니 치석이 어마어마했고 흡연까지 하셨기에 스케일링뿐만 아니라 잇몸치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충치도 있었다.

중년 나이대에서는 충치 활성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양치질을 잘하면 관리될 수 있는 충치도 있지만

환자의 치아 중 2개는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씹는 면의 충치여서 10만 원짜리 레진을 권했지만 환자분은 보험이 되는 약한 재료를 선택했다.

나는 힘을 많이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레진으로 해야 한다고 재차 설득했지만

환자분은 보험 되는 재료를 결국 선택했다.


"돈이 없어요."


환자의 말이었다.

일단은 솔직해서 좋았다.

치료받을 거 다 받아놓고 진료비를 내놓지 않는 환자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니까.


이럴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절대적으로 돈이 없는 걸까?

다른 곳에 써야 하기 때문에 치아에 쓸 돈이 없다는 말일까?


어떤 환자분은 어금니가 많이 없어서 임플란트 치료를 해야 하는데

자녀가 많아서 자신에게 쓸 돈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환자분은 내가 치아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으니 저렴한 재료를 권해도

꼭 좋은 재료로 해달라고 한다.

그분은 자기가 곧 죽을 것 같으니 저렴한 재료를 입에 넣고 가기 싫다고 했다...

(실제로 몸이 많이 안 좋은 중환자였다.)


돈이 사람을 참 웃기가 만든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돈이 없다는 말 대신 이렇게 표현한다.

깎아 달라. 왜 이리 비싸냐? 다른 치과랑 비교할 테니 견적을 내달라.

그리고 이런 사람.

"나는 도~온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로 진료비를 따지지 않고 치과의사를 신뢰하여 자기 몸을 맡기는 환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료비가 정말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세상에 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나는 치과의사이기 때문인지 치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환자들을 보면, 같은 나이라도 치아가 좋은 분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젊다.

인생에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몇 개나 더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돈을 중요한 순서부터 쓸 것이다.

그중에 치아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높은 순위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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