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편을 마치며
2015년 7월 26일, 3개월간의 크루즈 피아니스트 일을 마쳤다. HR 오피스에서 월급 정산을 하고, 그간 홈 스위트 홈이었던 내 작은 선실을 텅 비우고 아침 일찍 배에서 내렸다. 정산하면서 점심값이라며 현금 20불도 받았다. 이 회사, 떠나는 사람이라고 굶기지는 않는구나, 좀 괜찮네? 싶었다.
내 보라색 짐가방엔 귀여운 Alaskan angel 배지를 달았다. 작고 소중한 기념품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목적지가 어디든 항상 싱숭생숭하기 마련인데, 알래스카를 떠나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더더욱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고작 3개월 살았던 크루즈를 떠나는 귀갓길이었지만 단순히 여행이 끝난 느낌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A Whole New World는 너무 편해서 가짜 세상처럼 느껴졌고, 그 가짜 세상 속에서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친구들과 정도 들었고, 내가 일한 대가로 통장은 통통해져 있었다. 그 “일”이라 함은 고생이랑은 거리가 먼, 건반 뚱땅거리는 즐거운 일이었다. (죨쥐 아저씨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ㅋㅋㅋㅋ)
이렇게 9년 전 일기를 꺼내보니 그때 일기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튼 하나로 매 순간을 쉽게 저장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이 주 매체가 되는 시대지만 나는 글과 그림으로 간직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중미-파나마 운하-캐나다-알래스카를 항해하는 동안 오래오래 보고 저장하고 싶은 풍경들을 스케치했다.
또 크루즈 피아니스트 일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I don’t know, probably not.이라고 대답했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분명히 또 할 거라는 친구들의 말에 maybe~~ 라며 웃어넘겼다. 나도 알고 있었던 거다, 이 일을 마다할 이유는 딱히 없다는 걸.
그리고 친구들의 말이 맞았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크루즈에서 연주하며 캐리비안, 하와이, 유럽까지 구석구석 다녀왔다. 알래스카 이후엔 첫 크루즈만큼 “into the unknown~~~~”같은 설렘은 없었지만 크루즈에서 일했던 모든 순간은 평생 특별하게 남을 추억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교-연습실-기숙사만 반복하던 루틴에서 완벽히 벗어난 첫 직장은 직장 그 이상의 가치를 안겨주었다.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달랐을까, 언제까지나 상상이지만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답답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9년 전의 일기를 되돌아보며 그때 만난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금 느낀다. 헤어질 때 “Never Say Never”라며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 했던 로날드. 실제로 그의 말대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로날드를 만났고, 그 밖에도 지구촌 친구들과의 상봉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What a small world!
& What a wonderful world!
지금까지 크루즈 피아니스트 in 알래스카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와이, 지중해, 북유럽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베짱이 뮤지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