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주신쥬디 Apr 26. 2024

Bye, Alaska! 첫 크루즈도 안녕

알래스카 편을 마치며

2015년 7월 26일, 3개월간의 크루즈 피아니스트 일을 마쳤다. HR 오피스에서 월급 정산을 하고, 그간 홈 스위트 홈이었던 내 작은 선실을 텅 비우고 아침 일찍 배에서 내렸다. 정산하면서 점심값이라며 현금 20불도 받았다. 이 회사, 떠나는 사람이라고 굶기지는 않는구나, 좀 괜찮네? 싶었다.

내 보라색 짐가방엔 귀여운 Alaskan angel 배지를 달았다. 작고 소중한 기념품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목적지가 어디든 항상 싱숭생숭하기 마련인데, 알래스카를 떠나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더더욱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고작 3개월 살았던 크루즈를 떠나는 귀갓길이었지만 단순히 여행이 끝난 느낌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A Whole New World는 너무 편해서 가짜 세상처럼 느껴졌고, 그 가짜 세상 속에서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친구들과 정도 들었고, 내가 일한 대가로 통장은 통통해져 있었다. 그 “일”이라 함은 고생이랑은 거리가 먼, 건반 뚱땅거리는 즐거운 일이었다. (죨쥐 아저씨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ㅋㅋㅋㅋ)


이렇게 9년 전 일기를 꺼내보니 그때 일기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튼 하나로 매 순간을 쉽게 저장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이 주 매체가 되는 시대지만 나는 글과 그림으로 간직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중미-파나마 운하-캐나다-알래스카를 항해하는 동안 오래오래 보고 저장하고 싶은 풍경들을 스케치했다.

여백이 가득했던 코스타리카, 니카라과의 현지
거대한 크루즈가 장난감처럼 귀여워보이는 순간
잠시 들렀지만 동화처럼 예뻤던 캐나다의 빅토리아
케치칸의 수상가옥, Mt.Roberts 위에서 바라본 주노
사방이 만년설과 빙하였던 알래스카


또 크루즈 피아니스트 일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I don’t know, probably not.이라고 대답했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분명히 또 할 거라는 친구들의 말에 maybe~~ 라며 웃어넘겼다. 나도 알고 있었던 거다, 이 일을 마다할 이유는 딱히 없다는 걸.


그리고 친구들의 말이 맞았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크루즈에서 연주하며 캐리비안, 하와이, 유럽까지 구석구석 다녀왔다. 알래스카 이후엔 첫 크루즈만큼 “into the unknown~~~~”같은 설렘은 없었지만 크루즈에서 일했던 모든 순간은 평생 특별하게 남을 추억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교-연습실-기숙사만 반복하던 루틴에서 완벽히 벗어난 첫 직장은 직장 그 이상의 가치를 안겨주었다.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달랐을까, 언제까지나 상상이지만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답답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9년 전의 일기를 되돌아보며 그때 만난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금 느낀다. 헤어질 때 “Never Say Never”라며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 했던 로날드. 실제로 그의 말대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로날드를 만났고, 그 밖에도 지구촌 친구들과의 상봉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What a small world!

& What a wonderful world!



지금까지 크루즈 피아니스트 in 알래스카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와이, 지중해, 북유럽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베짱이 뮤지션 드림 -

이전 19화 알래스카 고래 관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