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지나도 눈에 아른아른
그리스의 마지막 항구이자 그리스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산토리니!
화이트 앤 블루 동네는 과연 내 기대를 충족시키려나!? 들뜬 마음으로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산토리니는 tender port로,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크루즈를 세워놓고 텐더 보트를 타고 육지로 이동해야 하는 항구였다.
산토리니는 그리스 남쪽에 있는 칼데라 섬, 우리가 생각하는 화이트 앤 블루 예쁜 마을은 그 섬 위에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텐더 보트를 타고 산토리니에 가까워지면서, 시커먼 바위섬 위에 지어진 하얗고 낮은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살짝 눈이 덮인 바위섬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텐더보트를 타고 내리는 곳은 산토리니의 피라(Thira)라는 지역이었다.
관광객들의 목적지인 바위섬 위 하얀 마을에 가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1. 당나귀를 타고 올라간다(산토리니 관광 상품 중 하나)
불쌍한 당나귀.. 이 관광 상품 때문에 안 그래도 작고 약한 당나귀들이 많이 다치고 아프다고 한다. 동물학대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당나귀 승마(?)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한다.
성인이 타는 거 자체가 당나귀에게는 무리인데, 고도비만이 대부분인 크루즈 승객들이 당나귀를 타니 작고 귀여운 그 동물이 무슨 죄람.. ㅠㅠ
2. 걸어 올라간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등산로를 걸어 절벽 위까지 올라가는 방법. 날씨, 체력, 시간만 괜찮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
3.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유료지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
텐더 보트에서 내려서 피라 올드타운(절벽 아래동네) 도착.
지그재그로 나있는 언덕 보행로를 볼 수 있었다.
경사가 가파르진 않지만 그만큼 거리가 꽤 되는 등산로였다.
베프와 나는 걸어 올라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빨리 올라가서 예쁜 동네 구경 시간을 최대한으로 누리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야윈 당나귀들을 볼 수 있었다.
불쌍해..ㅠㅠ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사진으로만 보던 하얀 마을이 눈에 펼쳐졌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보인 싸인 “Save water. Drink wine.” 이걸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 와인은 흔하지 않네..? 그리스도 분명 맛있는 와인이 많이 나올 텐데.. 비즈니스를 못하는 건가?
케이블카에서 내린 동네는 피라(Thira)였다. 이아(Oía)가 산토리니의 찐 구경거리가 있는 곳이라 후에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이아로 향할 예정이었다.
피라와 이아가 어떻게 다른진 몰라도, 이미 예쁜 Blue & White 동네가 눈앞에 펼쳐졌다.
건물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은 덤이었다. 우와.. 이런 데에 살면 어떨까? 동화 속에 사는 기분일까..?
아니겠지, 매일 이런 걸 보면 감동이 없겠지. ㅋㅋㅋ
크루즈 밖에서 음식에 돈을 쓰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이 날 만큼은 베프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한 끼를 즐겨보자!!!!
피라에 왔으니 “마마 피라“ 에서!
(영어 스펠링은 Thira이지만 그리스 발음은 ‘피라’가 맞다)
마마 피라에서 맥주 한잔과 함께 뷰를 즐겼다.
바다 위에 한 달째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며 밥을 먹는데 산토리니에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르게 느껴졌… 올까?
ㅋㅋㅋ
일상이 여행인 삶이 늘 감사했고 소중했다.
크루즈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는 것, 수많은 크루즈 회사 중 직원 대우가 가장 괜찮은 Holland America Line에서 일하는 것,
지루한 루트가 아닌 크루즈의 보석이라 불리는 지중해 크루즈를 타게 된 것, 쿵짝이 너무 잘 맞는 베프와 동고동락하는 것, 새로 만난 친구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거의 없었고, 전부 다 운이 좋게 내게 주어진 환경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감동이었고 감사였다.
2015년, 처음으로 크루즈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알래스카에 갔을 때에도 그때의 현실이 과분하다고 느꼈었는데
더 좋은 조건으로 알래스카, 하와이, 캐리비안까지 거쳐 유럽 수십 개의 도시에 발을 딛는 나날들은 비현실적일 만큼 만족스러웠다.
이게 끝나면 그만큼 이 삶이 그리울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베프와 Mama Thira에서 맥주 한잔과 간단한 끼니를 먹을 후,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이아(Oía)로 향했다.
Oía로 가는 길은 모래바람이 날리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다.
이아에 내리자마자 왜 여기가 찐 산토리니 구경지라고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피라에도 파란 지붕 예쁜 건물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아는 동네 규모가 훨씬 컸다.
기념품샵도 훨씬 많았다.
절벽 위에 만들어진 동네라 계단도 많았는데, 계단까지도 감각 있는 예술작품 같았다.
“Steps to ART”
굳이 그 계단을 가지 않아도 이 동네 자체가 art인걸?
이렇게 작은 안내판 외에는 간판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모든 게 각지고 무채색이고 간판 투성이인 대도시와 정 반대인 이곳이 좋았다.
밝고, 둥글둥글하고, 각양각색의 특색은 있지만 조화로운 동네.
사진을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작품처럼 찍혔다.
한국이었으면 모든 건물이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뒤덮여있었을 거야..
하얀 건물에 파란 지붕이 주 건축 스타일이 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라고 한다.
1. 하얀색으로 건물을 만듦으로써 뜨거운 햇볕을 반사해 내부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2. 그리스 정교에서 파란색은 하늘과 바다, 신의 보호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고 악귀를 쫓는다는 믿음도 있어서 문과 지붕을 파란색으로 칠한다.
이러한 이유로 파란색과 하얀색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리스 정부에서 관광산업을 키우기 위해 산토리니와 미코노스 중심으로 흰색+파란색 건축물만 허가하는 건축 규제를 시행했다.
아주 현명한 건축 규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걸 보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을까!!
무단으로 다른 색의 건물을 짓거나 칠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니
저 주황색 건물은 특별히 허가를 받았나 보다.
몸과 마음이 평-안 해지는 날이었다.
산토리니는 그리스 다섯 개의 항구 중 마지막이었는데, 그리스 투어를 마무리하는 완벽한 루트였다.
산토리니에 온 만큼 화이트+블루 컨셉으로 입고 돌아다닌 나.
캐리비안에서 이렇게나 시커멓게 탔었구나.. 그땐 잘 몰랐는데.
하긴, 온몸이 랍스터처럼 빨갰다가 뱀처럼 허물을 벗었더랬지.
쉽게 타는 내 피부를 백인 친구들이 부러워했더랬지.
베프와 나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절벽 아래로 내려와 텐더 보트를 타고 크루즈로 귀가했다.
직원 명찰 달고 뷔페에 가서 또 끼니를 때우고, gym에 가서 운동하고, 저녁엔 블랙 연주복을 입고 반짝이는 무대에서 본업에 충실했다.
3개월이나 더 남은 유럽 크루즈, 그리스는 시작에 불과했고 후에 북유럽은 지중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