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

아이들과의 농도짙은 시간들.

by 다니엘라




행복이란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저. p.19.-




월요일 오후, 그러니까 오늘 오후.


반쯤 잠에 취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하원 차량에서 내린 첫째 이삭이의 첫마디.



“엄마 나 오늘 태권도 안 가면 안돼?”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이삭이에게 듣는 말이다.



순간, 욱하며 -

“지난주 금요일에도 친구가 와서 태권도를 결석하고, 2주 전에도 월요일에 안 가고, 오늘 또 안 간단 말이야? 이렇게 자주 빠질 거면 그냥 다니지 마. 너 태권도 수련비가 한 달에 얼마인지 아니? 그 돈이면.........”


하는 폭풍 잔소리가 나올 뻔했는데, 입을 꾹 다물었다.



목숨 걸 일이 아니면(혹은 예의에 많이 어긋나거나 비도덕 적이거나 등등 심각 단계에 있는 행위) 허용해 주고,

허용해 줄 거라면 불필요한 잔소리는 하지 말자 했던 스스로의 결심이 떠올라 이삭이의 손을 잡고 묵묵히 집을 향해 걸어왔다.



까칠한 답변 대신 손을 잡아 준 엄마를 보며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는 판단을 내린 이삭이는, 이내 피곤했던 얼굴을 활짝 펼치며 조잘대기 시작한다.



선교원에서 하고 있다는 리코더 연습, 그리고 독감에 걸려 오늘 힘들게 선교원에 왔다는 친구 이야기(‘독감인데 왜 격리하지 않고 출석을 했을까?’가 더 궁금한 엄마), 그리고 그 아픈 친구에게 3단 합체 미니카를 접어주고 싶다는 이삭이.



태권도를 하루 쉰다는 사실 그 자체로도 이삭이에게는 행복이 밀려왔나 보다. 난데없이 친구까지 챙기는 걸 보니..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씩 빠지는 태권도 수업.



사실은,

빠지고 싶을 때 수업에서 빠진다는 것이 습관이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정말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될 테니 지금부터 목숨 걸고 아이에게 강요를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수업에 한번 빠지게 해 주었다고 이렇게 좋아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별 말을 다하며 신이 나있는데 어떻게 안된다고만 하겠는가...

이삭이에게는 이것이 정말 ‘순간의’ 행복인 거다.



그래도 사실 엄마 속마음에는,

아이에게 악성 습관이 만들어질까 봐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분위기 좋을 때 아이의 다짐을 받아 냈다.

이제부터는 태권도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태권도를 완전히 그만두는 것으로 하자고, 그리고 이제는 빠지지 말고 잘 다니자고...


Pinterest

어젯밤부터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



두통, 근육통이 심하고 잠이 쏟아진다.

무기력하고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아무래도 몸이 고생하는 그런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타이레놀을 먹으며 그냥 버텨볼까도 했지만,

주중에 출근하는 날 더 심해지면 그때는 답이 없어서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늘 가는 동네의원.



내 이름으로 접수를 하니 우리 아이들도,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도 놀라는 눈치다.

‘애들이 아니라 엄마만?’

‘우리가 아니라, 엄마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 오늘은 저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며 병원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자동반사적으로 각자 책을 집어 들고 본다.

형이 하는 행동은 코딱지 파는 것까지도 따라 하는 요한이가, 형이 책을 집어 드니 같이 책을 집어 든다. 이럴 땐 이삭이가 같이 있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태권도에 안 보내길 잘했다며 혼자 속으로 물개 박수를 짝짝 치며...)

덕분에 진료를 잘 받고 약까지 타서 병원 건물을 나왔다.



우리 아이들.

발이 안 떨어진다.


병원 건물 1,2 층엔 맥도널드가 있다.

맥도널드 로고인 ‘웃는 표시’를 보면 여기가 어딘지 요한이도 찰떡같이 알아챈다.

이삭이는 치즈 스틱이 먹고 싶고,

요한이는 감자튀김이 먹고 싶다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맥도널드에 들어가자마자 진열된 장난감을 보며 이삭이가 선수 치며 한마디를 한다.

“엄마 나는 오늘은 장난감 안 해도 돼. 여기 있는 건 다 유치해서 나는 안 해도 돼. 요한아~오늘은 장난감 안 하는 거야.”

(응 엄마도 장난감 햄버거는 사줄 생각 없었어.ㅎㅎ)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


좀 있으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무거운 간식을 사주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 병원을 착하게 잘 따라오고 얌전히 있어준 아이들에게 고마워서 어떤 방식으로든 선물을 해주고 싶던 차였다.



이삭이가 좋아하는 치즈 스틱과, 요한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쵸코 셰이크를 사서 깔깔거리며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별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이렇게 행복하다.

이 작은 일에 이렇게 활짝 웃어준다.

평소보다 조금 더 허용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우리 아이들을 보니

김민식 피디님의 말씀이 틀린 게 아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오늘도 욱하지 않고 폭신한 쿠션으로 아이들을 받아주는 연습을 했다.


작은 행복 덕분에

오늘은-

아이들도 나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웃을 수 있는 날이었다.






keyword
이전 01화육아. 힘 좀 빼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