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도시락을 싸며 나의 엄마를 만난다.

by 다니엘라


7월 말.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여덟 살 난 첫째 아이는 돌봄교실로 등교를 시작했다.



단 한주만의 가족 휴가를 끝내고

아이를 다시 학교에 보내는데,

아이에겐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방학 때 조차도 학교에 ‘보내져야’하는 상황에

당사자인 아이보다도 내가 더 힘들었다.



어렸을 적 나의 방학은

늘 엄마, 언니와 함께였다.



엄마는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부지런히 챙겨 주셨고,

나와 언니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게으름을 피우며 지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더운 여름

아이를 학교에 ‘여전히’ 보내려니 마음이 살살 아파왔다.



그럼에도 미안해하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함께 있는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주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8월 둘째 주,

아이의 돌봄교실 등교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오전 9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

돌봄교실에서 지내다가

태권도 학원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3시가 되면 집에서 나를 만난다.



본래대로라면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이 되지만,

방학중에는 돌봄 인원만으로는 식수가 적어 급식을 할 수가 없단다.



이러한 연유로

나도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첫 도시락을 싸 주기 일주일 전부터 고민을 했다.

어떤 반찬을 넣어줘야 할까?

양은 얼마나 해야할까?

반찬은 하루 전날 만들어 놓아야 할까?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어쩌지...



‘도시락에 관한 고민거리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넘치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첫날 도시락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카레’로 결정했다.

카레와 밥,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심심할 것 같아

아이가 잘 먹는 데친 브로콜리를 함께 넣어서 보냈다.

(브로콜리) 숲속의 카레


첫 도시락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아이가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 주었고,

저녁에도 또다시 카레를 달라고 하는 걸 보니 감히 ‘성공’ 그 이상이었다고 평가해 본다.



첫 도시락을 싸서 보낸 이후로 매일 저녁 고민을 했다.

어떤 날은 그다음 날의 도시락 반찬까지도 생각을 해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최선을 다해 부지런을 떨었다.



아침 글을 쓰다 말고도

시간이 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이런 것이 모성이겠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하면,

엄마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을 해대는 통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견뎌내질 못한다.

날로 진화하는 아이의 도시락
어떤 날은 사랑고백을, 또 어떤 날은 브로콜리 니무를 심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날은, 진지하게 ‘아트’를 한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쌀 때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우리 아이의 표정을 상상하게 된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없던 에너지가 솟는 바람에 자꾸만 각본에 없던 반찬이 하나 둘 추가된다.



어느 날은 아이의 밥에 호랑이콩으로 하트를 심었다.

그러던 중, 나의 어릴 적 우리 엄마의 도시락이 생각났다.



엄마의 삼십 대 시절,

엄마도 딸들에게 도시락을 싸 주셨다.

따뜻한 밥을 먹이시려고

주기적으로 보온 통을 바꿔 주시고,

때론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의 도시락에는 항상 따뜻한 국이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친구들도 감탄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도시락은

우리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게다가 음식 솜씨까지 좋은 엄마 덕분에

우리 자매의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인기가 있었다.



사춘기의 싹이 돋던 어떤 날은

아침부터 엄마 속을 720도 정도 훅훅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목례만 겨우겨우 하고선 잿빛 얼굴로 집을 나섰다.



그날 점심,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눈앞이 뿌예질 정도로 울었다.



흰쌀밥 위에는 가지런히 놓인 완두콩이 하트를 그리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는 평소보다 더 넉넉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숟가락 통 옆에는

반듯하게 접힌 엄마의 쪽지가 들어있었다.

엄마가 미안하고, 많이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이의 도시락을 싸다 말고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늘 아낌이 없었던

엄마의 사랑이 생각났다.



지금 30대의 내가,

그 시절 30대의 엄마를 기억하며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했다.

이른아침, 사랑고백.


그 시절 엄마의 넘치는 사랑이

언니와 나를 키워냈다.

그리고 그 사랑 덕분에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같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은 사랑이다.

수학 문제집도 좋고-

몬테소리 교구도 좋고-

영재교육도 좋지만,

그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다.



아이를 자라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오게 되어있다.



나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채우며,

사랑을 함께 채운다.



우리 아이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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