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작은’ 사람을 키워 내는 일

육아의 다른 말, 부모와 아이의 동반성장.

by 다니엘라



아이들 등원 5분 전.
하루 중 가장 긴장 넘치고 바쁜 시간이다.


첫째 아이는 옆 통로에 사는 친구를 만나 등교를 하고,
둘째 아이는 선교원 차가 8시 33분쯤 오면
그걸 타고 등원을 한다.


선교원 차량 시간에 맞추려면 집에서 넉넉하게 25분쯤 나서야 한다. 그래야 뛰지 않고 걸어 나가서 느긋하게 아이를 탑승시킬 수 있다.


조금 더 일찌감치 부지런을 떨어야지 하면서도,
늘 집을 나가기 5분 전부터 부산을 떤다.
양치, 세수, 로션 바르기 콤보 + 거기에 마스크 씌우기까지.


짧은 시간에 할 일이 많다 보니
아침시간에 아이들을 다그칠 때가 많다.


어제 아침이 바로 그런 날.
치카를 하라고 칫솔에 치약까지 묻혀서 내놓았는데,
그걸 찾지 못하겠다며 욕실 거울을 보며 얼굴개그를 하고 세월아 네월아 ~ 하고 있는 첫째.


양말은 이미 신겨 놓았고 신발만 신으면 되는데,
“이거 안 신을 거야.”
하며 양말을 벗고
그 바쁜 시간에 양말 디자인 따지는 네 살짜리 둘째.


아침부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속이 뒤집어졌다.


침을 꿀꺽 삼키고...
“너희들 정말!!!!!!!
학교에 선교원에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모두 집에 있어!!
왜 양말을 아무거나 안 신는다는 거야! 얼마 전까지 잘 신던 거잖아?
너는! 왜 양치질을 스스로 찾아서 안 해?.....”


너그러운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나는 너무 더웠다.


요한이 선교원 차량 도착 시간까지는 빠듯했지만,
나 혼자만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정신없이 쏟아부었다.


첫째는 재빠르게 해야 할 일을 하고 현관까지 나왔고,
둘째는 양말 두 켤레를 거절하고 나서야 세 번째 양말을 신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또 그냥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얼굴을 풀고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아 주었다.
“오늘도 씩씩하게, 즐겁게 지내! 사랑해.”
내가 봐도 나는 차암~ 알다가도 모를 엄마다.


아이 둘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설명할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내가 졌다.
내가 나에게 졌고,
내가 아이들에게 졌다.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침의 나는
이성의 끈을 놓은 무지막지한 엄마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내 모습을,
또다시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음이 풀리기까지는 오전 나절이 꼬박 걸렸다.
남편과,
엄마 아빠,
그리고 시어머니까지 통화를 했다.


이 세상에 처음이 아닌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우린 모두 엄마가 처음이다.
강아지며 병아리는 키워 봤어도
이 작은 ‘사람’들을 키워내는 일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자꾸만 같은 곳에 상처가 난다.


한참을 우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꼬마들을 낳고 기른 뒤부터
자꾸만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좌절을 경험한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의 갯수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탁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나도,
이 모든 게
처음이라는 사실 덕분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완벽하기 때문에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지키는 엄마가 되어,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엄마로서 주어진 거의 유일한 책임이자 역할은
단 한 가지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


아이들을 키우며-
수시로 같은 실수를 하고,
수시로 마음이 아파온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이도 자녀 되는 것이 처음이니까...


부모와 자녀는
함께 성장하기 위해 만난 존재임을 잊지 말자.
거기서부터 엄마의 ‘행복’은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