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싫음

by 리릭

쭈니가 싫어하는 것, 대표적인 한 가지를 들자면 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지만, 진심 개 싫어한다.

이토록 개가 싫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여 나는,

개가 개를 싫어하는 일반적인 이유에 쭈니를 대입해보기로 했다.




태생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는가?

강아지 시절엔 슈나우저 형아, 누나들과 강릉 여행을 가서 한 유모차에 동승을 해도 얌전히 자리를 나눠 앉을 정도로 Gentle했고, 애견 펜션 운동장에서 뽀메 누님의 적극적인 구애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코뽀뽀도 나눌 정도로 friendly 했었으며,


초면의 다양한 견종들과 스스럼없이 운동장을 뛰어놀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니 태생적 개포비아는 아니란 것은 증명이 된다.




질투심이 강한가?


차니를 데려오기 전에 고민했던 제1순위는 아직 7개월 강아지인 쭈니가 샘을 내서 차니한테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외동으로 있던 반려 아이들이 동생을 맞이하여 합사를 할 때 트러블이 잦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꽤 조심스럽게 둘의 첫 대면을 지켜보았다.

허나, 섣부른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차니를 쭈니에게 보여주면서 아이를 파악할 시간을 주자 킁! 킁! 킁! 킁! 구석구석 냄새를 맡으며 적극적으로 차니를 관찰하기 시작하더니 슬쩍슬쩍 핥아주는 것이 아닌가.

차니가 조금이라도 찡찡거릴라치면 엄마보다 먼저 달려가 차니를 살피는 다정함을 보였고, 자기보다 작은 차니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침대 아래로 내려가 아이와 눈을 맞추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엄마인 나는 그런 쭈니가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현재까지 둘은 서로 물거나 다치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으르렁대며 다툴 때가 간혹 있지만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누워 버둥버둥 으르렁거릴 뿐 서로를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다 큰(?) 혹은 다 늙은(?) 지금까지도 차니의 얼굴을 꼼꼼히 핥아주는 쭈니의 스킨십은 계속되고 있다.



소심한가?



소심하다기에 그는 너무 당당하다.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이쁨을 받아야 함이 당연한 아이가 쭈니다.

차니가 먼저 들이대고 있어도 당당히 치고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하여 쭈글거리며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은 늘 차니다.

맘마를 배식받을 때, 까까를 배분받을 때, 시원한 물을 먹을 때,

단 둘이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줄을 선다.

제일 앞은 당연히 자기라는 듯 차니 앞을 가로막고 앉는 아이, 그가 쭈니다.




어떤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밤, 모델처럼 워킹하며 산책을 즐기던 쭈니가 가구점 입구를 보더니 맹렬히 짖으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살핀다고 살폈는데 개가 있나?!!! 싶어 황급히 살피니 거기엔 레트리버 형상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그걸 개라고 인지하고 오만 성질 다 부리고 있는 쭈니를 보고 있자니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랬다.


이런 당당, 맹렬한 쭈니에게 소심이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일반적인 이유 세 가지에 대입해서 살펴본 결과, 쭈니의 개싫음 이유는 일반적이진 않음이 확인되었다.


하여 나는 쭈니를 가슴 가득 안고 토닥토닥하면서 쭈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해보았다.

쭈니와 함께 했던 10년의 날들을 가만히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훑다 보니 자그마한 이유의 줄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쭈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엄마, 아빠, 형아.


쭈니가 엄마, 아빠, 형아를 얼마나 좋아하나?

너무도 많이.


아하, 알겠다, 이유를.


쭈니는 엄마, 아빠, 형아를 너무 좋아하느라 온 마음을 써서 다른 것들을 좋아할 에너지가 모자란가 보다.

엄마, 아빠, 형아를 너무 사랑하느라 다른 것들을 사랑할 방법을 잊었나 보다.

철부지 어린 시절엔 사랑을 몰랐는데, 커보니 자신 안에 가득한 사랑이 너무 소중해서 그걸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날카로워졌는가 보다.


품에 안기면 액체처럼 틈도 없이 휘감기는 아이.

품에 안겨 "꾸웅"하며 애교의 한숨을 내뱉는 아이.

엄마, 아빠, 형아가 늦게 귀가하는 날엔 구슬픈 울음을 우는 아이.

같은 침대를 쓰진 않지만 같은 공기를 맡는 것 만으로 안심하는 아이.


나는 쭈니의 개싫음의 이유를 사랑 때문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드라마 속 진부한 대사 같지만 그게 True이니까, 난 그런 너를 이해하고 사랑해, 쭈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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