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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Mar 27. 2024

정답은 없다

아무리 많은 조언을 들어도 내 시간을 들여 경험한 것만 못하다



5월 중순이 되면 텃밭의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자칫 잘못하면 줄기가 툭 하고 부러지거나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말농장이라는 크기가 제한된 땅에서 농작을 하는 경우에는 바로 옆에 있는 이웃 밭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넝쿨 식물에 반드시 지지대를 세워서 옆이 아니라 하늘 위로 클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텃밭을 처음 시작했던 첫해에는 뭐 하나 쉽게 해낸 것이 없었다. 유년시절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자주 놀러 갔던 경험 덕분에 지지대를 어떻게 세우고 끈을 묶어주어야 하는지는 할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지만, 그 지지대는 당최 어디서 파는 건지, 언제 설치를 해주어야 하는 건지, 도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특히 넝쿨 식물은 그냥 노는 땅에서 알아서 크는 거라고 내놓고 키우시던 할머니 밭만 봐온 터라, 덩쿨의 지지대를 설치하는 방법에 대해 남편과 몇날 며칠 인터넷을 검색하며 공부를 했다.


대망의 지지대를 설치하는 날. 내 키만한 폴대를 여러 개 챙겨서 텃밭으로 달려 갔다. 폴대와 폴대 사이를 연결하여 그물처럼 만들기 위해 노끈도 챙겼다. 아무리 집에서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글을 통해 미리 공부를 했어도 실제 밭에서 그물을 내 손으로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옆에서 보기에도 우리 부부가 많이 어설펐는지 지나가던 이웃 텃밭의 아저씨가 다가 오셔서 도와 주셨다. 이것 저것 더 효율적인 방향과 방법들을 조언해주시다가 지지대 세우는 것부터가 잘못 됐다며 말릴 새도 없이 남편이 애써 세운 지지대들을 몽땅 뽑고 지지대 사이에 묶어둔 끈들을 잘라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기분이 많이 상했다. 이웃 텃밭 아저씨의 설명도 충분히 납득이 됐고, 그 방법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도 이해했지만 당혹스러울 정도로 일방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과정 속에서 아저씨의 장단을 맞춰드린 내게도 많이 서운해했다. 결국 시간만 지체하고 텃밭에서 하려고 했던 할일들을 제대로 다 하지도 못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나는 미숙 했던 나의 대처가 후회 됐고, 서운해하는 남편에게 무척 미안했다.


남편도 나도 잘 모르는 거지, 잘못 한 게 아니다. 우리는 텃밭을 가꾸는 게 처음이기에 잘 모를 수 있다. 당연하다. 어디서 알음알음 배워온다 하더라도 당연히 능숙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텃밭이 산으로 갈 때마다 농사를 많이 지어보신 분들이 도와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참 많이 받아왔다. 




그러나 텃밭에서 사람들을 몇 번 겪어보니, 모두들 이게 옳다고 나처럼 이렇게 하라 말씀하시는 방법들이 조금씩 다 달랐다. 당연하겠지. 같은 농사를 짓더라도 각자가 경험하는 것은 모두 다 다르니까, 같은 오이 하나를 키우더라도 각자 수월하고 편하다고 느끼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고군분투 하며 딱 봐도 초보티 팍팍 내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당연할 것이고. 


결국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다. 도와주시는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받되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흔들리면 안 될 것이다. 그럼 진짜 텃밭이 산으로 가버릴 테니까. 잘 되어도 우리 밭. 망해도 우리 밭. 결국 책임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농장 사장님이 케일이라며 파셨던 모종이 키워 놓고 보니 양배추였던 것처럼. 양배추가 땅의 지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결국 그 근처에 심었던 대파들은 모조리 시들어 죽어 버렸는데. 이 책임을 농장 사장님께 물 수는 없지. 이건 우리 밭이니까! 


중심을 잘 잡자. 그리고 농작물은 땅이 알아서 키워주지만, 농부가 손을 도우면 분명 더 잘 큰다. 알아서 틈틈이 공부를 잘 하자. 남들은 뭐 키우나, 뭐가 키우기 쉬우려나, 어떻게 키워야 하나 다른 사람들 텃밭을 기웃거릴 필요 하나 없다. 다양한 조언을 받아 따라하면서 실행을 해봐도, 사실 가장 만족스러울 때는 그냥 지극히 단순하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작물을 심어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해가면서 키울 때다. 


그러고 보면 텃밭 가꾸는 과정도 우리 인생과 참 많은 면에서 닮았다. 아무리 많은 조언을 들어도, 내 시간을 들여 직접 경험하느니만 못하다. 



매년 우리의 텃밭 지지대는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설프다. 




그럼에도 작물들은 무럭무럭 큰다. 정답은 없다. 




* 더 많은 이야기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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