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말 한마디에 덜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일주일만에 요가 수련을 다녀왔다. 동네 시세에 비해 비싼 돈 주고 등록한 요가원인 만큼 반드시 결석하지 않고 매일 출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 달엔 출석 보다는 결석을 밥 먹듯 했다. 월초에 코로나 감염으로 2주간 못 나갔고, 하루 수련 다녀오고 끙끙 앓는 바람에 일주일을 또 결석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오전의 요가원에는 어느새 모르는 얼굴들로 가득했다. 요가원 오픈할 때부터 수줍은 얼굴로 자기소개하며 함께 수련을 시작했던 J의 맞은편에 앉았다. 눈짓으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의 수업은 인요가. 인요가는 양의 기운보다 음의 기운을 사용하여 정적인 동작이 주를 이루는 요가다. 모두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몸과 마음의 정렬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 수업.
오늘은 어쩐지 척추를 바로 세우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나의 동작은 평소보다 굳었고, 서툴렀으며, 무엇보다 아팠다. 이게 왜 안 되지 하며 끙끙 하고 선생님의 지시 앞에 몸을 어색하게 움직였다. 머리 위로 들어올린 오른 팔과 등 뒤로 올린 왼팔을 서로 맞잡으려고 낑낑거리는데, 선생님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쓰지 마세요. 우린 너무 애쓰고 살아요. 지금 만큼은 우리 애쓰지 말아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손을 잡을 수 없다면 잡지 않은 그 상태로 멈추어 지그시 바라보세요. 천천히, 몸을 젠틀하게 대해줍시다.”
요가원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별안간 울컥했다.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어디에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 되면서 너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해열제를 먹어도 며칠간 고열이 지속 되었고, 배탈과 생리통이 겹치면서 먹는 약의 양이 늘었고, 급기야 위경련까지 왔는데 코로나 감염자라 응급실을 가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열흘을 그렇게 앓고 나서 괜찮아질 때즈음, 나는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고강도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트 계단 걷기를 하고, 헬스장에 가서 평소보다 두 배로 근력 운동을 하고, 요가 시간에도 열심히 땀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넉다운.
온몸에 기운이 쪽 빠져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일주일을 더 몸져 누웠다. 계단 운동을 하고 온 날, 하체 근육통이 시작 됐고 헬스장에 다녀온 날엔 평소와 조금은 다른 느낌의 전신 근육통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근육통은 운동으로 풀면 된다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괴롭혔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건 운동이 아니라 학대였고, 독한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너절한 상태의 내 몸에게 행하는 가혹한 고문이었다. 문득 몸에게 미안해서, 애쓴 내가 가여워서 작은 매트 위에 앉아서 나는 조용히 울었다.
더 잘하려고 했을 뿐인데, 코로나로 격리된 동안 못한 일들을 빨리 해내고 싶었을 뿐인데. 남몰래 옷깃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선생님이 건네주신 휴지를 받았다.
깊은 호흡 한 번, 두 번, 세 번. 동요된 마음을 추스리는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 너무 힘든 내 몸을 그대로 두고 괜찮아질 때까지 힘 빼고 쉬기를 선택한 순간, 몸도 감정도 차분해졌다.
작년 여름, 나에게도 반려 식물이 생겼다. 식물 카페에서 받아온 작은 크기의 올리브나무인데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참깨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연두빛 새싹을 계속해서 틔우며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다. 이름은 영이다. 올리브+영.(맞다. 대기업의 뷰티샵 이름에서 가져왔다.)
영이는 겨울부터 눈에 띄게 시들해져갔다. 새초롬하게 커가던 잎사귀들이 마르기 시작하고 급기야 하나 둘 떨어졌다. 볕 좋은 자리 찾아 자리를 옮겨주고, 신경 써서 환기를 하고, 물 한 번 줄 때도 흙 상태를 봐가며 신중하게 줬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애써서 해보아도 영이에게서 더이상의 싱그러움을 찾을 수 없었다.
나무와 다년생 식물에게는 휴면기간이 있다고 한다. 날씨나 계절적 특성으로 불리한 성장 조건이 되면 자연스럽게 성장을 멈추고 최소한의 활동만 하며 잠시 일시정지 상태로 휴면 기간을 갖는 것이다. 더 나은 성장 조건이 될 때까지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가을을 지나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일부러 잎 속의 양분을 줄기로 이동시켜 잎을 붉게 물들게 하고 가지에서 탈락 시킨다. 이 또한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의 휴면 기간, 휴식기인 셈이었다. 그 덕분에 나무는 겨우내 가지고 있는 양분을 최대한으로 보존할 수 있고 따스한 봄이 오면 다시 힘차게 새로운 잎을 틔우며 나무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이 몇 해에 한 번씩 열매가 맺히지 않는 해걸이를 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 그 다음 스텝을 위해 주기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휴식하며 충전하는 시기를 보낸다. 풍요로운 햇살, 넉넉한 바람, 시원한 물, 건강한 땅의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찬란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과실을 맺는 시기가 지나고 꽃 피우고 과실 맺고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모든 에너지를 줄기와 뿌리에 끌어 모아 웅크리고 시린 겨울을 난다. 일 년에 한 번씩, 매년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자연의 휴식기이자 자연의 루틴이다.
성장과 결실에는 필연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 애쓰는 시간을 보내면 애쓴 시간만큼 휴식을 취해주어야 한다. 운동을 할 때도 우리의 근육은 휴식 할 때 만들어지고, 성장기의 아이도 밤에 자면서 큰다. 해걸이가 끝난 과실수는 그다음 해 더 많은 양의 열매를 맺고, 텃밭도 겨울에 얼마나 땅을 잘 쉬게 해주었냐가 그다음 해의 농사를 결정 짓는다.
식물과 나무처럼, 인간도 자연에서 태어났으니 똑같은 것 같다. 인간도 애쓰는 시간과 동시에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라는 혹독한 시기를 이제 막 보낸 나의 몸을 이제는 가만히 두기로 했다. 더 빨리 움직이라고 어서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쉬기로 한다.
우리 집 영이도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줄 작정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땅이 기지개를 켜고, 나무들이 새싹을 틔울 때쯤 우리 집 영이도 활기를 되찾을 거고, 나 역시 회복된 몸으로 코로나 항체가 생긴 건강한 몸으로 더 단단한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더 많은 이야기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