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통에도 좋답니다
급체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의 손을 남자 주인공이 다정하게 지압해주고 있다. 까칠하던 남자를 다시 보게 되는 여주인공.
반대의 상황일 때도 많다. 평상시에는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사이였지만, 체기로 힘들 때 자신의 손을 꾹꾹 눌러주는 여자의 모습에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남주.
이때 지압하는 혈자리는 거의 100% 손등 중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 우묵하게 패인 곳, 바로 합곡이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혈자리가 이 합곡이 아닐까 싶다.
체해서 답답하고 괴로울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혈자리이기도 하다.
합곡(合谷)에서 합(合)은 '합하다, 만나다', 곡(谷)은 산에 있는 계곡, 골짜기를 뜻한다. 엄지, 검지 두 손가락이 만나는 곳으로 계곡처럼 움푹 패여 들어간 곳이라는 의미이다.
합곡 혈자리를 찾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WHO/WPRO 표준경혈위치에서는 둘째 손허리뼈(the 2nd metacarpal bone)의 중간 부분으로 정해놓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한의학의 침과 뜸을 시술하는 나라마다 혈자리를 조금씩 다르게 찾는 것을 통일한 것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 WPRO)에서 전통의학의 표준화 사업의 일환으로 이룬 성과이다. 그 결과 2008년 영문판이, 2009년 한글판이 출간되었다.
합곡은 대장 경락에 속해있는 혈자리이다.
대장 역시 소화기관에 포함되어 있는 장기이기 때문에, 설사 변비 및 구토 등의 증상이 있거나 배가 아플 때 사용 가능하다.
또한 얼굴과 입에 병이 생길 때 두루 활용하면 좋은 혈자리가 바로 합곡이다.
눈이 붓고 아프거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코피가 멈추지 않거나 콧물이 날 때, 치아가 아플 때, 얼굴이 붓고 머리가 아플 때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합곡은 효과적이다.
땀을 조절하는 재미있는 효능도 있다.
감기나 독감으로 열이 날 때, 땀이 나면서 열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도통 땀이 나지 않고 점점 더 열이 오르면서 괴로울 때가 있다. 이렇게 땀이 나지 않을 때 합곡을 자극하면 땀이 나게 돕는다.
반대로 땀이 너무 많을 때는 땀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땀이 나지 않거나 땀이 줄줄 흐를 때는 신장 경락의 부류와 함께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부류는 태계 혈에서 위쪽으로 2촌 올라가면 찾으면 쉽다.
태계는 안쪽 복사뼈와 발꿈치힘줄(아킬레스건)의 중간에 오목한 곳이다.
관련 근육으로는 제1등쪽뼈사이근과 엄지모음근이 있다.
등쪽뼈사이근은 손등의 손허리뼈와 발등의 발허리뼈 사이에 위치하는 근육들이다.
손의 등쪽뼈사이근(배측골간근)은 중지 손가락을 기준으로 손가락을 바깥으로 멀어지게, 즉 펼치게 하며 바닥쪽뼈사이근(장측골간근)은 모으는 역할을 한다.* 손과 발의 등쪽뼈사이근은 각각 4개, 바닥쪽뼈사이근은 3개이다.
손가락이 아플 때, 목에서 문제가 생겨 팔과 손까지 통증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뼈사이근(골간근)이 뭉치고 긴장되어서 아픈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골간근의 통증은 주로 둘째, 셋째 손가락의 옆면에서 나타날 때가 많다. 손가락이 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이를 오랜 시간 방치하면 석회화가 되거나 열이 나고 염증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제1등쪽뼈사이근은 검지 외에도 손등과 손바닥, 새끼손가락까지 통증이 진행되기도 한다.
엄지모음근은 그 이름처럼 엄지를 모으는 기능을 한다. 뭔가를 집거나 잡을 때 사용하는 근육으로, 펜을 잡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는 등의 작업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기 쉽다. 이 근육에 통증이 심해지면 엄지손가락과 손목까지 아프게 되고, 손으로 정교한 동작을 하기 힘들어져 자신이 쓴 글씨도 알아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틈틈히 엄지손가락을 손등 쪽으로 젖혀주는 스트레칭을 하면 좋지만, 막상 합곡 혈자리 부위는 잘 풀리지 않는다.
합곡 혈을 자극할 때는 일반적으로 다른 손의 엄지를 합곡 혈에, 합곡 혈 아래쪽 손바닥 부위에 검지 손가락을 놓고 위아래 방향으로 지압한다. 하지만 합곡 부위를 좀 더 자극하고 싶다면, 엄지는 똑같이 합곡혈에 놓고 검지손가락을 후계 혈에 놓은 채 마치 2,3,4,5지 손허리뼈를 모으듯이 옆 방향으로 지압하는 것도 좋다.
실제로 손가락이 굳어서 뻣뻣하거나 감각이상 등 마비 증상이 있을 때는 합곡에서 후계 혈을 향해 침을 놓기도 한다.
* 발의 등쪽뼈사이근(배측골간근)은 2,3,4번째 발가락을 벌리고, 바닥쪽뼈사이근(족측골간근)은 3,4,5번째 발가락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