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허무해도 남기고 싶은 내 이야기.
안녕, 난 치즈고양이
오렌지빛 윤기를 뿜어내는 털코트를 입고 목에는 새하얀 눈처럼 빛이 나는 스카프를 두른 신사 중에서도 신사지요 발목 부분이 쫀쫀한 흰 양말도 신고 있지요 나의 오렌지빛 털코트에는 황갈색 빗살무늬가 있지요 그래서 아주아주 어릴 적에 난 내가 호랑이인 줄 알았지요
길고 탄성이 좋은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질이 돋을 때는 있는 힘껏 하늘로 치켜세운 어깨로 땅을 걷는, 나는 그런 고양이지요 사자 파워 콘푸라이트가 아닌 호랑이 기운이 불끈 솟는 콘푸로스트를 먹은 고양이지요 기운은 호랑이 저리 가라 지만 얼굴은 저어기 바다 건너 미국나라 말로 베이비페이스지요 조막만 한 얼굴에 눈꼬리가 매섭지만, 앙증맞은 하얀 조랭이떡으로 귀염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지요 조랭이떡 두 짝엔 들쭉날쭉 수염이 요란하게 나 있지요 살짝 구불구불한 수염 끝으로 제 승질머리를 조금 엿볼 수 있지요 요란한 승질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앙증맞은 분홍 코와 발바닥 젤리를 보고 그런 승질머리쯤은 별거 아니라며 모두 받아주지요
앞에서 본 나는 분홍코에 콕 박힌 매력점과 덧니가 돋보이는 베이비페이스지만 옆에서 볼 때의 나는 또 느낌이 다르지요 근육질 몸을 뽐내고 있지요 내가 앉은 자세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나의 근육질 몸이 가장 도드라질 때지요 불끈 솟은 승모근과 화가 단단히 난 후면 삼각근을 보고 우리 집사는 늘 호들갑이지요
왜 그렇지요 집사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왜 그렇지요..?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수선을 떨지요 수선만 떨면 다행이지요 조용히 있고 싶어서 구석진 곳에 똬리를 틀고 졸고 있는데 기어코 찾아와서 필요한 게 없냐며 얼굴을 들이밀지요 얼굴만 들이밀면 그것도 다행이지요 졸기 전에 까슬까슬 혓바닥 빗질 마친 제 털코트를 쓸어준다면서 되지도 않는 손가락 빗질을 하지요 거기까지도 괜찮지요 내 정수리에다가 얼굴을 마구 부비는데 내 정수리만 늘 떡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다들 아시지요
떡진 정수리만 생각하면 화가 나지요 그래서 냥냥냥 거리기 시작하고 손으로... 아니 앞발로 '집사야 저리 가라'하고 밀어내면 집사는 나를 냅다 들어서 안고 현관 가까이 가지요 집사의 레퍼토리는 늘 똑같지요 "아이고 주인님이 날 밀쳐내고 이렇게는 같이 못 살겠네 제가 나가겠습니다" 집사의 말이 거의 끝나갈 때쯤 난 집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지요 그러면 집사가 "아이고 이러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라며 너무도 많이 들은 이야기를 꺼내지요 난 두 팔로 아니 앞발로 집사의 목을 감싸안아 주지요 그리고 집사 얼굴에 코를 갖다 대지요 그러면 집사는 좋아라 하며 현관을 빠져나오지요 참나 주인 노릇하기 참으로 힘들지요 이 연기를 한 3년 째 하고 있지요
난 우다다다 놀이를 좋아하지요 넘치는 속도 그리고 미끄러질 듯한 코너링이 예술이지요 집사의 이상한 행동은 우다다다 놀이에서도 발동되지요 비율로 따지면 나보다 다리도 짧은 게 내 우다다 실력을 따라잡고 싶은지 가끔 나를 안고서는 "주인님! 나도 우다다다 잘한다!"라고 말하며 뛰어다니지요 아마 내게서 '우리 집사 잘한다'라고 칭찬을 받고 싶어서겠지요 난 집사 얼굴에 코를 갖다 대지요 그러면 집사는 좋아라 하며 내 조랭이떡에 얼굴을 마구 부비지요 집사는 내 조랭이떡을 아주 좋아하지요 조랭이떡 뽀뽀가 시작되면 난 그냥 의미 없이 초를 세고 있지요 사실 나도 좋긴 하지요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는 우리 집사지만 그래도 난 우리 집사가 참 좋지요 밤에 자다가 가끔 한기가 돌 때가 있지요 그러면 난 집사한테로 가서 이불을 덮어달라고 하지요 집사는 자고 있어도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잘 듣지요 언제나 이불을 열어 포근한 안쪽 자리를 내어주지요 그르렁그르렁 소리가 절로 나지요 그 소릴 들은 우리 집사는 내 털코트를 마구마구 쓰다듬지요 내 빗질보단 맘에 안 들지만 난 그래도 집사의 손길이 좋지요
가끔은 집사가 내 털코트를 쓰다듬다가 내 뱃살에 얼굴을 파묻고 웅얼웅얼하는 거지요 며칠 전이었지요 너무너무 잠이 쏟아지는데 집사가 내 뱃살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지요 잠이 다 깨버렸지요 난 집사가 잠들기만을 기다렸지요 드디어 집사가 잠들고 난 집사 얼굴 쪽으로 가서 냅다 집사 입에 솜방망이 냥펀치를 날렸지요 정말 처음이었지요 거실 바닥에 쉬도 해보고 이불에다가 러그에다가 토를 해본 적은 있지만 정말정말 집사 입에 냥펀치를 날린 건 그 날이 처음이었지요
...라고 치즈고양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옮긴이 : 집사... 캔따개... 등등등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svklim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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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잘 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주둥이 공격에 많이 놀랐다.
이게 꿈인가... 눈만 끔뻑끔뻑
누워있는 내 얼굴 위에서 치즈고양님이 쳐다보고 계셨다... 만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