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오브 험프리스
한미 방위비 협상이 장기화되며,
이례적으로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직원들이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한 명이었죠. 당시 근무 4년 차였습니다.
선배들의 말로는 유사한 얘기가 몇 번 오갔지만,
실제로 시행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군에서 전역한 뒤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갑작스러운 통보는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휴직 중에는 서울 가족의 품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어머니는 홀로 남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내와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건 내심 기쁜 일이기도 했습니다.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임시 일자리를 알아보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죠.
가장 마음이 갔던 곳은 서울의 한 대학 기숙사 행정직이었습니다.
야간 대학원 수업도 병행할 수 있을 듯해서,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기억입니다.
그 무렵 저는 자주 관악산을 찾았습니다.
과거 ‘직업전환 준비 기간’ 동안, 자주 산자락의 도서관에 들렀죠.
졸업생 출입증으로 출입이 가능했고, 그곳의 공기와 풍경은 늘 위안이 됐습니다.
목적 없이 걷는 캠퍼스는 마음을 비우기 딱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뽑은 300원짜리 진한 커피는,
그날의 마지막을 위로해 주는 고마운 한 잔이었습니다.
최근 다시 들른 캠퍼스에는 자판기가 신형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300원 커피는 이제 없더군요.
조금은 아쉬웠지만,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 변화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시절은 제게 있어 작은 터널 같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커피 한 잔과 도서관 풍경, 가족의 품이 가장 큰 힘이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