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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리스 일기 9

상관의 추억

by 류이선 Ryu Ethan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솔직히 떠올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불편함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한번 써보려 한다. 그것도 나의 기록이니까.


전역 후, 나는 다행히 미 8군 산하의 한 부대에 민간인으로 채용되었다.

첫 근무지는 동두천에 위치한 캠프 케이시였다.
당시 내 상관은 오랜 시간 한국에서 일해온 미국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유연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나 역시 처음엔 그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이면이 드러났다.


그는 종종 직위를 사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내 차량을 자신이 쓰기도 했고, 사무실 장비가 그의 집으로 향하는 것도 목격했다. 나를 개인 운전사처럼 부리려 했던 일도 있었다. 처음엔 당황했고, 이게 문화 차이인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규정에서 벗어난 행동들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미군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션 장비 운용과 계획 수립이었다. 자부심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런 부당한 상황들 속에서 점점 위축되었다.


부당함을 바로잡기엔 구조도 낯설고, 나는 새내기 민간 직원일 뿐이었다.
결국 3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었고, 그 사람은 더 이상 한국에서 근무하지 않게 되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솔직히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내게 또 하나의 훈련장이었다.

군대 밖에서 처음으로 겪는 조직과 인간, 권력과 침묵의 구조 속에서 나는 배우고 또 깨달았다.
그 경험은 내가 야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의 역할, 그 안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는 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선 나 자신도 인정해주려 한다.




다음 주 수요일, 험프리스 일기 최종회(10화)

에필로그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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