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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힘나 Nov 29. 2024

퇴근길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틈새시간을 찾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해 왔다. 그 작가라는 범위는 학생시절에는 만화가에만 국한되어있었는데, 대학원 시절 논문쓰기로 한바탕 고초를 겪은 이후에는 그 범위가 꽤 확대되었다. 이를테면 만화가를 포함한 모든 작가, 성공적으로 논문 쓰기를 마친 모든 박사생으로까지 말이다. 마치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가 "열등감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삶의 원동력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논문을 쓰면서 겪었던 모든 힘듦은 나의 열등감이자, 작가 선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나에게 "너는 기본도 안 되어있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붓던 교수에게 상처를 받고 반발하여 "과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라든지, "어떤 글이 잘 쓴 글인가",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등의 바람이 오래도록 내 안에 똬리를 틀듯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업이 아닌 이상 글을 끊임없이 쓴다는 것은 내 삶과는 매우 요원한 목표이긴 했다. 겨우 겨우 직장을 다니고 지친 하루의 무게를 견뎌 내고 남은 힘으로 글까지 쓴다는 것은 먼 별나라 이야기였다.

  글을 못 쓰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끊임없이 댈 수 있었다. 내 안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트라우마라고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가며 "나는 글쓰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아직 극복 못해서요"라든지, "글을 어떻게 쓸지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요"라는 핑계를 대며 끊임없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작법서 읽기에만 몰두하던 나였다. 그렇게 미혼의 시절이 지나갔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유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보니 "두려움"이라는 핑계 대신에 이번에는 "시간이 없음"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영국의 조지 버나드쇼가 자신의 묘비명에 남긴 유명한 말처럼-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계속 이렇게 핑계만 대다가는 "글은커녕 일기도 못 쓰고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똥 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브런치 쓰기는 마치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었다.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이 그녀의 책 <The Artist's Way>에서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이 자기 발견과 창의성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점에서 치유의 과정을 겪었는지 나의 첫번째 브런치 책인 <40대 아줌마의 공공기관 취업성공기>를 예로 들어 이유를 대자면, 첫째, 구조와 틀이 잡힌 글로 지식을 전달하면서 끊임없이 같은 주제로 말을 하는 앵무새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40대의 나이에 학원강사에서 사무직으로 직종 변경한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거니와, 그것이 그 사람 인생에 최대 업적이 된다면 무척이나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기 전까지는 40대에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했던 경험,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노하우를 "마치  잊어버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읊어댔다. 심지어 나의 이런 정보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 없는 앵무새 역할은 집필을 마치면서 해방된 사람처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겪은 모든 일을 일일이 입으로, 머리로 기억할 필요 없이 기억하고 싶을 때 내가 써둔 글을 읽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글로 이미 쓰인 노하우와 지식을 전달하면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내 지식과 경험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내 이야기가 그저 수다에 불과했으나 진짜로 공공기관으로 직종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지식전달자가 되었다. 실예로, 공공기관 공직자들만 모이는 워크숍에서 겪은 일이다. 내가 4개의 계약직을 거쳐 5번째에 정년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직을 성공했다고 하니, 경험 공유가 끝나고 한 분이 찾아오셨다.

"선생님, 사실 저도 ○○기관에 계약직으로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셔서 들어가시게 됐나요?"

내게 질문을 하러 오신 그분의 나이는 42세였다. 배울 만큼 배우신 분이고, 나보다 연배도 위여서 그런 질문을 하기 힘드셨을 텐데 용기를 내서 찾아온 것이다. 이런 절박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분께 내가 뭐라고, 거들먹거리며 훈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말로만 설명했으면 우왕좌왕, 충분히 30분 이상이 족히 걸릴 이야기였을 테고 필요한 스펙과 준비사항은 훈수와 지적질로 변질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다행히 그분께 완성된 내 브런치 책을 소개할 수 있었고 부족하게나마 정보전달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즉, 다시 말하면 글로 쓰면서 구두언어로써는 할 수 없었던 단기간의 지식전달, 거기서 오는 해방감,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어 도울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 치유의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겪은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한 해방감과 치유는 다시 한번 더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 깨끗하게 치워진 방 안에서, 딸도 남편도, 쌓여있는 집안일도 없는, 오로지 나만이 홀로 있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진짜 글을 쓰고 싶다면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는,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서 있는 이 지하철에서 오롯이 몸을 싣는 1시간에 스마트폰으로 해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기 시작했다.

"퇴근길 1시간, 나만의 글쓰기 시간"

  첫 시도는 쉽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1시간 안에 무조건 글 한 개를 발행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글이 짧을 때도 많았고 퀄리티가 낮을 때도 있었다. 이번에도 처음과 눈에 띄게 차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개씩 글을 발행하느라 글이 짧고 아쉬웠다면 글 발행일에 여유를 가지더라도 나의 독자님들이 읽으셨을 때 지적 호기심이라든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해소는 될 만큼 쓰려고 기준을 잡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준은 2,500~3,000자 이고, 참고로 여기까지 쓴 글은 3,000자를 훌쩍 넘기고 있다.(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은 O분 안에 3,000자를 넘게 읽는 능력을 보유하고 계신 것이다. 축하드린다!)

  퇴근길 글쓰기를 통해 시간이란 정말 만들어 쓰는 것임을 배웠다. 하루 종일 바쁘다는 이유로 내 꿈을 미뤘지만, 퇴근길 1시간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내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나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모두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드린다.

“저는 퇴근길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쓰기 시작한 이상 당신도 이제 작가님입니다. 저랑 같이 꿈을 이뤄봅시다"라고 말이다.

퇴근길,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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