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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힘나 Dec 13. 2024

글을 쓰려면 질문을 던져야해요

여백의 공포를 질문으로 극복하기

  그렇다면, 무엇(what)을 어떻게(How) 쓰면 좋을까?

작사가를 꿈꾸던 지인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넨적이 있다.


"글을 너무 쓰고 싶은데, 뭘 가사로 써야할지 모르겠어"


지인은 사랑 노래만 범람하던 때에, 사랑 말고 다른 얘기를 써내려고 보니 어떤 이야기부터 써내려 가야할지 막막했음을 푸념했다. 이메일이든, 댓글이든, 카톡이든, 어쨌든 우리가 소위 디지털 시대라고 일컫는 이 시대는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서 이제 필수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글"이라든지, "작가"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부담감에 나를 포함한 우리는 정면으로 맞서 글을 써내는것이 아니라 뒷걸음질 친다는 것이다.


  뭘 써내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던 지인처럼, 사실은 과연 어떤 주제로, 어떤 소재로 글을 써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미없는 작법서만 뒤적 거리며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글을 쓰고 싶은데 뭘써야할지 모르겠어요"라거나, "글을 쓰고 싶은데 여백에 대한 공포(부담)가 있어요"라는 분들을 위해서 작지만 꽤 효율적인, 근사한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 시절, 나를 향해 늘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던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조언 중에 하나인데, "논문의 한 문단 문단은 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된다. 글을 잘 못 쓰겠다면 질문을 던져보라"고 정리를 해주신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시대 문학의 대표 여류작가 중 한명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1816. 4. 21.~1855. 3. 31.)는 그녀의 대표작 <제인에어>(1847)에서 고아이지만 가정교사로, 남자주인공인 로체스터와의 사랑을 이루어내는 강인한 여성, 제인이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저택에 불을 질러 로체스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전 처(ex-wife),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던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인 버사 역시 만들어냈다. 이 소설을 읽은 크리올계 혼혈 영국인 소설가인 진 리스(Jean Rhys, 1890. 8. 24.~1979. 5. 14.)는 이 다락방에 갇혀있던 자메이카 출신의 미친 여자에 관해 의문을 품었다. "과연 정말로 버사가 미친 여자였을까?", 라든지 "혹시 그녀의 백인 크레올계 정체성이 백인/흑인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미친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력을 품은 질문으로 시작해 버사 메인슨의 과거를 재구성해 <드넓은 사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1966)를 창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해리포터 부모님과 관련된 팬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팬픽은 해리 포터 부모인 제임스 포터와 릴리 에반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원작의 공백을 메우고 확장한 비공식 창작물인데, 주로 호그와트 시절 두 사람의 연애와 성장, 마라더스와의 우정, 스네이프와의 갈등 등이 주된 주제이다. 졸업 후 불사조 기사단에서 볼드모트와 싸우는 모습이나, 해리 탄생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한 희생의 과정도 자주 다뤄졌다. 이 팬픽은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이고 수요도 상당한것으로 알고 있다. 이 팬픽에서 진 리스와 닮은 꼴을 찾는다고 한다면, 아래의 질문 꾸러미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 제임스와 릴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원작에서는 제임스와 릴리의 연애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다. 팬들은 둘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특히 제임스의 성격 변화와 릴리가 그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에 대해 궁금해했을 것이다.


2. 마라더스의 호그와트 시절은 어땠을까?

팬들은 제임스와 시리우스, 리무스, 피터가 함께 보낸 호그와트 시절의 장난과 모험, 우정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이들의 일상을 구체화하려 했을 것이다.


3. 릴리와 스네이프의 우정은 왜, 어떻게 끝났을까?

원작에서 릴리와 스네이프의 관계는 간략하게 다뤄졌다. 팬들은 스네이프가 릴리와 멀어지게 된 구체적인 사건과 제임스와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상상했을 것이다.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 그리고 그 내용에 맞춰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 안에 있는 깊숙이 숨어있던 질문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답변을 스스로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질문의 초점이 삶에 맞춰져 있다면 그것은 담담하게 삶을 써내려 간 수필이 될테고, 압축한 언어로 담아낸다면 시가 될 것이고, 상상력을 담았다면 소설의 여러가지 갈래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글은 내 안에 생각할 거리를 던질 수 있는 질문(소설과 수필 각각 10개씩)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판타지를 쓴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 10개>


1. 매일 밤 같은 꿈을 꾸는데, 꿈에서 만나는 사람이 깨어난 현실에서도 나를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 길에서 우연히 주운 열쇠가 모든 문의 잠금을 해제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열고 싶은 문은 무엇일까?


3.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나만 움직일 수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4. 내가 그림으로 그린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능력을 얻게 된다면, 가장 먼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5. 내 주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특정 상황에서만 드러난다면, 가장 놀라운 비밀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6. 매일 타는 버스가 사실 다른 차원의 도시로 나를 데려가는 수단이라면,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7. 어떤 이유로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8.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작은 마법이 발동한다면, 어떤 마법이 가장 나를 닮았을까?


9. 어릴 적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살아 움직이며 나를 찾아왔다면, 그 물건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10.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사실 과거를 기록한 거대한 기록 장치라면, 나는 어떤 순간을 찾아볼까?


<수필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 10개>


1. 오늘 나를 가장 오래 멈춰 세운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2. 최근에 스쳐 지나간 풍경 중에서 이상하게 마음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3. 내 삶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4. 어린 시절 가장 강렬하게 기억나는 한 장면은 무엇이며, 그때의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5.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지금 그 말을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6. 평범한 하루 중에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은 언제였을까?


7. 내가 자주 잊어버리지만 사실 소중한 존재나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8.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9. 오늘 하루 내가 고마움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0.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한다.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글로써 답변을 적어내는 그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건필을 오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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