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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Nov 16. 2019

<최종화. “에필로그”>

독박육아 프로젝트 '아내에게 휴가를!'




7박 8일간의 짧고도 긴 여정이 끝났다. 육아와 가사가 쉬울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다.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싸우고 지치고 고된 시간도 많았다. 다행인 건 모든 힘든 시간들이 나에게 크고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과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에는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들을 다시 돌아보고 나름의 평가를 해보았다.  


1.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정서적 안정상태 유지하기. (★★☆)

->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었던 초반에는 정서적 안정이 잘 유지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불안요소로 작용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이 예민해졌다. 나 역시 아내의 부재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특히 아이들이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날은 나도 배려와 이해보다는 짜증이 먼저 튀어나왔다. 일주일 동안 크게 화를 내거나 극단으로 치닫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만큼 너그럽게 행동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2. 협박이나 회유 같은 조종하는 육아를 하지 않기. (★☆☆)

->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고 제일 잘 되지 않은 부분이다. 굳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평소의 나는 아이들에게 회유나 협박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더 많이 신경을 썼는데 잘 되지 않았다.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바쁠 때나 힘들 때는 어김없이 조종하는 육아가 먼저 튀어나왔다. 특히 후반기에는 아이들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간식을 너무 많이 이용했다.



3. 안전이 최우선.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자. (★★★)

-> 아내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었는데 다행히 둘 다 다치지 않고 잘 지냈다. 특히 캠핑 갔을 때나 고깃집에 갔을 때, 주차장을 다닐 때는 각별하게 주의했다. 아이들이 평소에 워낙 안전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4. 방 청소, 빨래 개기, 간단한 요리 같은 가사를 매일 경험하게 하기. (★★☆)

-> 은우는 생각보다 일을 잘했다.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면 두배로 피곤한 일들이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은우가 깔끔하게 일을 잘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만 가사노동을 너무 재밌어해서 평소 엄마의 힘든 점을 알게 하는 건 실패했다. 



5. 그날의 활동을 육아일기와 블로그에 기록하기.  (★★★)

->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까먹지 않기 위해 수시로 음성 녹음을 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매일 녹음을 다시 듣고 사진을 찾아보며 일기 쓰는 시간이 3시간씩은 걸린 것 같다. 매일같이 나의 육아일기와 아내의 여행기를 교환하여 보면서 서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심도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도 많은 격려가 되었다.






아내를 보내기 전의 나에게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 나 스스로를 가사력과 육아력이 뛰어난 아빠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보통의 아빠들보다, 아니 웬만한 엄마들 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달랐다. 자취 시절 매일매일 즐겁게 했던 가사노동은 육아와 병행하는 순간 끝이 없는 중노동으로 바뀌었다. 난이도와 분량도 늘어났지만 무엇보다 종료 시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이라는 말의 무게가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육아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원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이해심 많고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였다. 아이들의 입장을 배려하고 화 한번 내지 않고 대화하려 애쓰는 그런 아빠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아내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힘들고 귀찮은 일은 아내 몫으로 제쳐두고 나는 편하게 그냥 좋은 아빠의 모습을 누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매 순간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생각했던 좋은 아빠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 더욱 그랬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아내를 ‘잔소리하고 화내는 엄마’라고 생각하는 건 나의 잘못이 컸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아내의 노력과 희생으로 나는 좋은 아빠가 되었지만 나는 그만큼 아내를 좋은 엄마로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느꼈던 대부분의 깨달음은 아내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들이었지만 몸은 항상 피곤했고 매 순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경험해보고 느끼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심이다. 더 빨리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다.



또 하나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은 개인적인 자유시간의 부재이다. 나름 짬 시간을 알차게 쓰는 데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24시간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니 단 5분도 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평소에 나의 루틴이었던 아침운동, 신문보기, 책 읽고 리뷰 쓰기, 게임하기.. 이런 것들을 이전처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동안 내가 편하게 지내는 데는 아내의 희생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숙달이 되면 요령이 생겨서 어느 정도 시간이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상상했던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 청소를 한 뒤, 세탁기를 돌리며 커피를 한잔 내려 우아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그런 주부의 모습은 실존하지 않는 것 같다. '가정주부'는 나의 소박한 꿈 중에 하나였는데 이번 기회에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되었다.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겉으로 보이는 극적인 변화는 없다. 여전히 아이들은 틈만 나면 싸우고, 밥 먹는 시간은 끝없는 인내심을 필요로 했으며 아이들을 재울 때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육아는 여전히 힘든 일이고 우리 부부의 체력은 항상 부족하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우리 부부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을 느낀다. 부엌일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나를 보는 아내의 눈빛에서 전에 없던 깊은 이해와 신뢰, 그리고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든든한 동료가 생긴 느낌이랄까. 여전히 힘들지만 이상하게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내가 많이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사소한 계기로도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계기’, 그리고 ‘행동’이다. 작은 계기와 행동으로도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을 바꿀 만큼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자, 이제 당신이 행동에 옮길 차례다. 오늘 저녁, 가사와 육아에 지친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보자.






“자기, 이번에 휴가 좀 다녀올래? 나도 독박 육아라는 거 한번 해보고 싶어서”









2019-10-27

독박 육아 프로젝트 '아내에게 휴가를'

시즌 1.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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