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2020-12-21의 기록.
아빠 : 자, 오늘은 또 재밌는 주제가 나올 거야.
지난번에 했던 거 기억나? 뭐였지?
은우 : 내가 나이기 위해서 필요한 거?
아빠 : 응. 그게 뭐라고 했지?
은우 : 음..
아빠 : 정체를 밝혀라!
은우 : 정체성!!
아빠 : 응, 맞아.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세 가지 관점이 있다고 했지? 뭐였지?
은우 : 인격, 영혼, 그리고... 몸!
아빠 : 오.. 천잰데?? ^^;;
자, 오늘은 그중에서 어떤 관점이 타당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특별한 상황을 상상해야 해.
사람은 몸, 영혼, 인격이 다 하나잖아.
은우 : 응. 세 가지가 모여서 사람이 되는 거지.
아빠 : 그렇지?
근데 뭐가 진짜 중요한지 알려면 그 세 가지가 나눠질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야 해.
그리고 나눠진 다음 뭐가 중요한지 선택을 해야 하지.
자, 그전에 잠깐 봐봐.
약간 잔인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혹시 '고문'이라는 말 알아?
유민 : 아니.
은우 : 들어본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아빠 :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고통을 주는 걸 고문이라고 하거든.
은우 : 어떻게?
아빠 : 막 묶어놓고 바늘로 찌르거나 칼로 자르거나 불로 태우거나...
은우 : 으...
아빠 : 만약 어떤 사람이 아빠랑 그리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잡아놓고 둘 중 한 명을 고문해야 된다고 했어.
그럼 누구를 고문하라고 할 거야?
은우 : 어떤 사람.
아빠 : 왜?
은우 : 아빠가 아픈 건 싫으니까.
아빠 : 그렇지?
그럼 은우랑 또 다른 어떤 사람 중에 한 명을 고문해야 된다고 하면?
은우 : 어떤 사람.
그리고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그런 걸 못하게 할 거야.
아빠 : 그렇지? 은우가 고통받기 싫은 건 나쁘거나 그런 게 아니야.
사람은 당연히 나랑, 내 주위 사람이 더 소중한 거니까.
그럼 만약에 둘 다 은우라고 해보자.
그중에 누구를 고민했으면 좋겠어?
은우 : 응? 무슨 말이야?
아빠 : 예를 들어 한 명은 은우의 몸, 한 명은 은우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둘 중 은우가 고문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은우가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은우 : 아..
아빠 : 일단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해볼 거야.
은우 학교 친구 중에 이름 아무나 말해봐.
안 친한 친구도 괜찮아.
은우 : 음.. 지효!
아빠 : 자, 어떤 나쁜 과학자가 있어.
은우 : 막 새로 개발한 약을 다른 사람 몸에 넣어보고 그런?
아빠 : 어? 어.. ^^;;
어느 날 그 과학자가 은우랑 지효를 잡아다가 서로의 인격을 바꿨어.
그래서 은우가 정신을 차려보니 지효 몸에 들어가 있는 거야.
거울을 보면 은우가 아니고 지효의 얼굴이 보이겠지?
그리고 지효는 정신을 차려보니 은우 몸에 들어가 있고.
자, 지효 몸에 들어간 은우랑, 은우 몸에 들어간 지효랑,
둘 중 누구 한 명을 고문해야 하면 누구를 고문하라고 하겠어?
은우 : 어떤 고문인데? 그게 중요해.
아빠 : 은우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
두 번 다시 당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고통이야.
은우 : 아.. 고민된다..
내(지효 몸에 들어있는 은우의 인격)가 고문받기는 싫은데..
지효를 고문하라고 하면 내 몸이 없어지는 거잖아.
아빠 :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냥 은우는 지효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
은우 : 그럼 그냥 지효를 고문하라고 할 거야.
아빠 : 자, 그럼 은우는 몸보다는 인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네?
은우 : 그러네.
아빠 : 여기서 재미있는 게..
아빠가 질문을 좀 바꿔볼게.
이번에는 똑같이 인격이 바뀌었는데 인격을 바꾸기 전에 기억을 싹 지웠어.
그러니까, 지금 은우의 몸에 은우의 기억이 지워지고 지효의 인격이 들어오는데,
은우는 은우였다는 기억을 못 하고 그냥 내가 원래 지효라고 생각하는 거야.
반대로 지효는 자기가 원래 은우였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은우 몸속에 있고.
이런 상황이면?
은우 : 그럼 지효의 몸에 있는 은우를 고문하라고 할거 같아.
아빠 : 그럼 이번에는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
왜 같은 질문인데 대답이 달라질까?
은우 : 어.. 기억을 하고 못하고 그래서?
아빠 : 응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처음 질문은 내 인격이 유지되었다는 말이 뇌가 이동하지 않았다고 착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아무튼, 같은 질문에 대해 육체 관점과 인격 관점에서 다른 대답을 했지?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해볼 거야.
은우 : 응.
아빠 : 자, 각각의 관점을 하나씩 볼 건데.
먼저 인격 관점부터 볼까?
은우랑 아빠는 인간의 정체성을 인격이라고 생각하지?
은우 : 응.
아빠 : 예를 들어 과거의 위인.. 누가 있지?
좋아하는 위인 한 명만 말해봐.
지금 돌아가시고 안 계신 사람 중에.
은우 : 음.. 증조할머니?
아빠 : 어?^^;;
음.. 증조할머니도.. 위인이시긴 하시지..
근데 좀 더 유명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엄마 : 방정환?
(최근에 아이들과 방정환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음.)
아빠 : 그래, 방정환 선생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현대에 방정환 선생님의 인격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보자.
자, 아빠의 몸에 아빠의 인격이 없어지고 방정환 선생님의 인격이 들어온 거야.
은우 : 우와, 그럼 좋겠다!
아빠 : 응? 왜?
은우 : 그럼 아빠가 막 아이들을 사랑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아빠 : (아빠도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주는데..ㅜ.ㅜ)
그럼 아빠의 인격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좋아?
은우 : 아니;;
아빠 : 자, 아무튼.
방정환 선생님이 그러겠지?
"어? 나는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네?
근데 내 몸이 왜 이러지? 여기는 어디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그 사람이 방정환 선생님이 맞을까?
은우 : 맞지.
방정환 선생님의 인격이니까.
아빠 : 그렇지?
과거의 방정환 선생님이 살다가.. 돌아가셨고.. 현대에 인격이 다시 살아난 거지?
이렇게 하나로 묶을 수 있잖아.
이런 걸 뭐라고 했지?
은우 : 음.. 그 시간.. 시공간 벌레!
아빠 : 오~ 맞아.
같은 시공간 벌레로 묶을 수 있으니까 과거의 방정환 선생님과 지금 방정환 선생님은 같은 사람이야.
유민 : 아빠! 왜 책에 그림을 그렸어?
아빠 : 이거 아빠가 그린 거 아니고..
원래 책에 있는 그림이야.^^;;
아무튼, 과거의 방정환 선생님과 지금 아빠 몸에 들어있는 방정환 선생님이 같다는 건 다 인정하지?
은우 : 응.
아빠 : 자, 근데 방정환 선생님의 인격이 하나만 살아난 게 아니고..
복제가 되어서 엄마 몸에서도 깨어났어.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랑 둘 다 눈떠서 "어? 나는 방정환인데?"이러고 있는 거야.
은우 : 잉??
아빠 : 자, 그럼 둘 중 누가 진짜 방정환 선생님이야?
은우 : 음.. 둘 다?
아빠 : '나'라는 존재가 둘이 될 수 있을까?
은우 : 아니,, 모르겠어.
아빠 : 자, 둘 중 하나만을 방정환 선생님이라고 하기가 좀 그렇지?
그렇다고 둘 다라 고도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이런 경우에 "둘 다 방정환 선생님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은우 : 응. 맞아.
아빠 : 그래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인격 관점..
그러니까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은 인격이다."라고 말하려면 이런 조건이 필요해.
"인격이 복제되지 않았다는 조건하에서만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은 인격이다."
은우 : 응.
아빠 : 자, 근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겨.
내가 '나' 일 때 중요한 건 '나' 아니야?
근데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없어야 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게 좀 그렇지 않아?
은우 : 응?
아빠 : 예를 들어.
은우가 달리기 시합을 해서 1등 하면 1등이고, 꼴등이면 꼴등이잖아.
근데 은우가 몇 등을 하던지 미국에 있는 어떤 초등학생의 등수를 따라야 한다고 그럼 이상하잖아.
은우가 1등 해도 걔가 꼴등이면 은우도 꼴등인 거야.
이상하지?
은우 : 응. 그건 말도 안 되지.
아빠 : 마찬가지야.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나의 복제가 없어야 된다고?
그럼 나는 똑같은 나인데,
내 복제가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내 복제가 없어야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다고?
그런 게 어딨어?
은우 : 그러네..
아빠 : 하지만 그렇다고 복제 조건을 빼면 이번엔 인격 관점 자체를 포기해야 하니까 난감하지.
은우 : 그럼 인격 관점이 틀린 거야?
아빠 : 사실 다른 관점도 비슷해.
하나씩 보자.
또 어떤 관점이 있었지?
인격 말고?
유민 : 영혼!
아빠 : 응, 영혼 말고 또 하나는?
은우 : 몸.
아빠 : 응. 몸. 육체 관점 먼저 보자.
육체 관점에서 최고의 주장이 뭐라고 했지?
육체 관점의 핵심?
은우 : 응?
아빠 : 육체 관점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말이야.
은우 : 아.. 뇌!
아빠 : 맞아. 육체 관점에서는 같은 뇌를 가지면 같은 사람이라고 보잖아.
그런데 꼭 뇌 전체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사고나 병으로 뇌의 한쪽이 없어져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있거든.
은우 : 진짜?
아빠 : 응. 뇌는 원래 그래.
자, 지금부터 끔찍하지만 재밌는 상상을 해볼 거야.
아빠가 만약 큰 사고가 났어.
그래서 아빠의 몸이 다 망가진 거지.
근데 과학이 발달해서 아빠의 뇌를 다른 몸에 이식할 수가 있어.
그럼 아빠는 계속 살 수 있겠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의사들이 수술이 실패할까 봐 아빠의 뇌를 반으로 나눠서
두 개의 몸에 각각 이식한 거야.
근데 운이 좋아서 둘 다 성공한 거지!
자, 그럼 둘 중에 누가 아빠야?
은우 : 음...
아빠 : 오른쪽 아빠를 오른쪽이, 왼쪽 아빠를 왼쪽이라고 하자.
오른쪽이 가 아빠야? 왼쪽이 가 아빠야?
은우 : 둘 다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어.
아빠 : 맞아. 은우야.
그럼 육체 관점도 똑같지?
육체 관점을 유지하려면 똑같이 '복제는 안된다.'라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럼 또 어떤 문제가 생길까?
은우 : 음..
아빠 : 자, 아빠가 잘 때 누가 몰래 아빠의 뇌 절반을 꺼내서 다른 사람한테 이식했어.
그리고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잘 살고 있다고 해보자.
그럼 아빠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빠가 아니게 돼.
똑같은 복제 존재가 있으니까.
은우 : 그러네.
아빠 : 내가 나이기 위해 중요한 게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어야 된다는 조건이라니.
너무 불공평하고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복제 조건을 빼버리면?
은우 : 그럼 육체 관점이 틀린 게 돼버리지.
아빠 : 그렇지.
육체 관점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거야.
자, 마지막 영혼 관점도 볼까?
은우 : 응.
아빠 : 영혼 관점에서도 똑같아.
복제가 가능하다고 하면 똑같이 둘 중 누구도 나라고 할 수 없으니까.
결국 복제 금지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마찬가지로 내가 나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내가 아니고 다른 내가 없다는 조건이 돼버리지.
그렇다고 복제 조건을 포기하면 영혼 관점이 유지가 안되고.
은우 : 응.
아빠 : 하지만 영혼 관점은 좀 다른 게 있어.
예전에 했던 거라서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소크라테스 이야기야.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나뉠 수 있다고 했나?
은우 : 아니, 나누어질 수 없다고.
아빠 : 그렇지? 그런 근원적인 존재들을 뭐라고 했지?
은우 : 영혼?
아빠 : 음.. '형상'. 기억나?
은우 : 아. 맞다. 형상.
아빠 : 응. 영혼도 형상처럼 나누어질 수 없다고 했잖아.
그럼 영혼 관점은 복제 문제가 없는 거네?
은우 : 그럼 영혼 관점이 맞는 거야?
근데 나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아빠 : 그렇지?
일단은 나누어질 수 없다고 해보자.
근데 그럼 큰 문제가 생겨.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구지?
은우 : 이원론.
아빠 : 그렇지?
이원론자들이 영혼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했지?
은우 : 세 가지를 증명했잖아.
(삼단논법 이야기를 하는 듯.)
아빠 : 눈에 안 보이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뭐라고 했지?
세균이나 원자 같은 그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야 설명할 수 있는 상황들을 이야기한다고 했잖아.
은우 : 응. 맞아.
아빠 : 그래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지?
"사람의 창조성, 사랑, 마음.. 이런 사람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존재가 필요하다."
은우 : 응.
아빠 : 근데.. 잘 생각해봐.
'오른쪽이', '왼쪽이' 기억나지?
뇌는 양쪽으로 나뉘었지만 영혼은 나누어질 수 없으니까,
아빠의 영혼이 오른쪽이 한테 갔다고 해보자.
그럼 왼쪽에는 뇌는 있고 영혼은 없는 상태야.
근데 왼쪽이 도 창조적이고 사랑도 하고 마음도 있고 그럴 텐데..?
은우 : 오!
영혼이 없는데도 그렇게 하니까 이원론이 틀린 거네.
아빠 : 맞아.
영혼이 나뉠 수 없다고 하면 이원론이 틀린 말이 될 수가 있어.
물론 나중에 과학이 발달한 뒤에 진짜 그런 수술을 해봐야지만 알 수 있겠지.
만약에 저렇게 뇌를 나누는 수술을 했는데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이상하게 꼭 한쪽만 깨어난다고 해보자.
그럼 뭐라고 할 수 있어?
은우 : 이원론이 맞다고.
아빠 : 그렇지?
(머리 회전이 진짜 빠르네..)
영혼이 존재하고 나뉘지 않으니 반쪽씩 뇌를 이식해도 한 명만 깨어난다고 할 수 있겠지?
근데 아직은 그런 증거가 없으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는 거야.
은우 : 응.
근데 일원론은 이원론을 좀 괴롭히는 거 같아.
아빠 : 원래 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논리가 발전하는 거야^^;;
자, 어쨌든 세 가지 관점이 모두 문제가 있지?
교수님은 '분열 불가 조건을 추가한 육체 관점'이 맞다고 생각한대.
아빠는 일단 인격 관점이 맞다고 생각해.
은우 : 응. 나도.
아빠 :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야.
사실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내 정체성이 무엇이고 죽은 뒤에 그걸 어떻게 유지할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은우 : 그럼?
아빠 : 죽음 뒤에 살아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뭐할 건데?' 진자 중요한 건 이거지.
은우 : 왜? 안 죽으면 좋잖아.
아빠 : 자, 세 가지 관점에서 각각 볼까?
먼저 '영혼 관점'에서 죽어도 영혼이 유지가 된다고 해보자.
몸은 바뀌고 인격도 바뀌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처럼 영혼은 유지가 되는 거야.
물론 인격이 바뀐다는 말은 기억이나 그런 건 다 없어진다는 말이지.
은우 : 응.
아빠 : 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죽어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든 동물로 태어나든..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은우 : 아니.
아빠 : 그럼 육체 관점은?
내 영혼과 인격은 바뀌지만 육체는 영원히 유지된다고 해보자.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은우 : 아니.
그럼 인격 관점이 맞는 거야?
나는 인격이 계속 남아있으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아빠 : 맞아. 은우야.
아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근데 인격이 남아있다는 게 은우가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를 수 있어.
은우 : 어떻게?
아빠 : 시공간 벌레 이야기할 때 '실'이야기했지?
실을 이루는 섬유 하나하나는 다르지만 하나의 실로 인정하잖아.
그리고 인격도 급하게 바뀌는 게 아니고 천천히 연속성이 유지되면서 바뀌면 같은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은우 : 응.
아빠 : 그럼 은우가 한 천년을 살면서 인격이 천천히 바뀌면 어떨까?
천년 뒤의 은우도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변화하니 은우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천 년 뒤 은우는 지금의 은우랑은 전혀 다른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은우 : 아니.. 없을 거 같아.
아빠 : 그렇지?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진짜 중요한 건,
지금의 나의 생각과 인격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지가 핵심인 거 같아.
은우 : 응. 그런 거 같아.
아빠 : 그리고 각자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다를 수 있다는 거지.
은우는 인격 관점이 맞다고 했잖아.
그럼 은우가 죽고 나서 천사들이 하늘나라에 준비된 은우의 새로운 '몸'과 '영혼'에 지금 은우의 '인격'을 넣어주면 어때?
지금의 기억과 마음과 목표, 믿음 그런 걸 그대로 가지고 유지할 수 있다면.
은우 : 진짜 그럴 수 있어?
아빠 : 어떤 종교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일단 그럴 수 있다고 하면.
그럼 죽음을 극복할 수 있어?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 않을까?
은우 : 응. 나는 그럴 거 같아.
아빠 : 근데 교수님은 그런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증거는 못 찾았으니 그런 건 믿지 않는대.
그래서 교수님은 죽음이 진정한 종말이고 나의 끝이고 내 인격의 끝이고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대.
은우 : 온 세상이? 그냥 '작은 나의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닐까?
(시적인 표현..^^;;)
아빠 : 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자, 일단 오늘의 수업은 이렇게 끝나.
근데!
아빠는 여기서 하나 생각할 거리를 얻었어.
아주 중요한 이야기고 엄마도 같이 들었으면 좋겠어.
엄마 : 응.
아빠 : 아빠는 인격이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빠가 죽고 나면 당연히 내 인격은 끝나겠지?
그런 의미로 죽음이 진정한 종말일 수도 있지만..
인격과 비슷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면 어떨까?
은우 : 어떻게?
아빠 : 자, 아빠가 늙어서 죽는 상황이야.
이것이 내 인격이 끝이구나.. 하면서 절망하고 있는데 은우가 보이는 거지.
은우를 보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저기 나랑 비슷한 기억과 믿음과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내 아들이 있구나..
내 인격의 일부가 은우 안에 있으니 나의 일부는 죽음 뒤에도 존재하는구나.'
이렇게 내 인격의 일부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이 덜 무서울 것 같아.
은우 : 그래? 난 아닌 거 같은데.
아빠 : 물론 아빠의 인격을 100% 남길 수는 없지만 일부나마 은 우안에서 살아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아빠는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르치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자기만족으로 하는 일들이 있지?
열심히 운동해서 몸짱이 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어.
책을 많이 읽고 깨달음을 얻었어.
혹은 재밌는 게임, 영화, 만화를 즐기면서 재밌게 살았어.
이런 것들이 막상 죽을 때가 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없는데.
은우 : 그럼?
아빠 : 아빠가 은우에게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일들로 나의 일부를 남긴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운동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거나,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남기거나,
재밌는 게임을 하고..
은우 : 막 게임을 만들고?
아빠 : 응. 게임, 영화, 만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런 것들.
그런 게 세상에 남아있으면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죽음을 극복한 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이런 걸 자아실현이라고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한 자기만족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어.
엄마 : 그렇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럼 자아실현이라는 게 의미가 없는 건가?
아빠 : 적어도 단순한 자기만족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한 자기만족은 자아실현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아.
근데 책에 있는 수업은 아까 "죽으면 다 끝이다."까지이고 이건 순전히 아빠의 생각이야.
엄마 : 진짜?
아빠 : 응.
은우 : 우와!
그럼 아빠가 이 교수님보다 똑똑한 거네??
아빠 : 그런 건 아니고.. ^^;;
교수님이랑 아빠랑 생각이 다른 거지.
일단 아빠는 은우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은데,
은우의 생각을 글이나 책으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말이지.
은우 : 응. 그래서 내가 책 썼잖아.
'개미 아저씨'였나?
아빠 : 아. 맞네 ^^;;
은우가 책 만들었었지.. 하하하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