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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Feb 03. 2021

'죽음이란 무엇인가' 8강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2020-12-30의 기록.



집중 집중.




아빠 : 자, 지난 시간엔 어떤 이야기를 했지?


은우 : 그.. 세 가지 중에 뭐가 제일 좋은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3가지 관점을 이야기하는 듯.)


아빠 : 그건 지지난번이고.


은우 : 음..


아빠 : 기억 못 할걸?

지난번 꺼가 좀 이해하기 어려운 거였거든.


은우 : 아니야, 알아! 뭐냐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빠 : 응, 맞아.

죽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은우 : 근데 그거 책 제목 아니야?


아빠 : 그렇지, 이제야 어느 정도 본론이 나온 거지.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지? 


은우 : 그..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아빠 : 응. 그렇게 식물인간 같은 상태의 사람은 인격 관점에서는 어떤 상태이지?


은우 : 죽은 거.


아빠 : 육체 관점에서는? 


은우 : 산거.


아빠 : 응. 그래서 장기이식 같은 데서 많은 논란과 고민이 있다고 했지?


은우 : 응.


아빠 : 자, 오늘은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근데 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아빠도 잘 이해 못한 부분이 있거든.

일단 한번 해보자. 

첫 번째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주장.


은우 : 엥? 진짜 그런 사람이 있어?


아빠 : 응. 근데 어떤 사람이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하고 주장한다는 말이 아니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이야.

이걸 두 가지 관점에서 볼 거야.

먼저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 

음.. 인격 관점에서 볼 거야.


은우 : 응.


아빠 : 인격 관점에서 사람들이 내가 죽어서 없는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걸 못 믿는다고 해.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 일단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라는 전제가 진짜라고 가정해보자.

교수님은 이 전제도 틀렸다고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맞다고 하고 진행할 거야.


은우 : 전제가 뭐야?


아빠 : 조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가정하는 조건 같은 거.


은우 : 응.


아빠 : 사람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거만 믿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내가 죽은 상태를 상상할 수 있어?


은우 :....


아빠 : 한번 해볼까?

아빠가 이제 늙어서 곧 죽는다고 해보자.

아빠가 가족에게 둘러싸여서 누워있어.

다 자라서 어른이 된 너희들이 아들, 손자를 데리고 옆에서 슬퍼하고 있고

엄마가 아빠 손을 잡아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

그리고 아빠의 생각이 점차 없어지고 눈도 점차 안 보이고 소리도 점차 안 들리고..

여기까지는 상상할 수 있는데..

죽은 다음에는? 상상도 못 하겠지?


은우 : 응. 


아빠 : 내가 생각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상상을 하는 건 불가능한 거 같아.

예를 들어 여기 볼펜.. 아니 연필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자, 너희들이 이 연필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은우 : 응.


아빠 : 그럼 어떨 거 같아?


은우 : 음..


유민 : 막 그림 그리고 그럴 거 같아.


아빠 :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답답하겠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어차피 그런 생각도 못해. 

볼펜은 살아있는 게 아니니까.


유민 : 근데 왜 연필이라고 했다가 볼펜이라고 해?


아빠 : 아.. 연필. 잘못 말했어.^^;;

자, 연필은 살아있지도 않고 뇌도 없으니 생각도 못하겠지?

그럼 우리가 연필이 되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어?


은우 : 아니.. 도저히 못하겠어.


아빠 : 그렇지? 죽은 다음의 일을 상상할 수는 있을 거야.

막 가족들이 슬퍼하고, 장례식을 하고, 땅에 묻히고.. 그런 걸.

근데 그건 '나'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게 아니고 어디 유령 같은 게 되어서 위에서 지켜보는 상상이잖아.


은우 : 맞아.


아빠 : 그래서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해서 은우가 앞으로도 자주 들어볼 거야.


은우 : 응. 들어본 거 같아.


아빠 : 그래? ^^;;

아무튼, 그 프로이트도 사람들이 죽음을 상상할 때 자기의 내면이 아닌 외부 관찰자로 자신을 몰래 데리고 오기 때문에 실제로 죽은 상태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어.

그리고 죽은 상태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고 했지.

근데 이런 건 어때?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하는데 은우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

그럼 은우는 그 외식을 상상할 수 없겠지만 외식을 할 거라는 건 믿을 수 있잖아.


은우 : 그렇지.


아빠 : 교수님은 사람들이 죽은 상태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죽음이 막 미스터리고 신비하고 상상도 못 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대. 

하지만 사실 죽는 건 그냥 죽는 거고 이는 설명할 것도 상상할 것도 없는 것이라고 해.


은우 : 그럼 아까 두 개 중에 또 하나는 뭐야?


아빠 : 또 하나는 육체의 관점에서 죽는다는 걸 믿지 않는다는 거야.

은우는 언젠가 죽지?


은우 : 당연하지.


아빠 : 유민이는?


유민 : 아니.


아빠 : 지금 말고..^^;;

아주아주 오랜 뒤에 늙어서는?


유민 : 그래도 유민이는 안 죽어.


아빠 : 음.. 그래^^;;

(진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구나^^;;)

아빠는 아빠가 언젠가는 죽는다고 믿어.

근데 사람들은 자기가 진짜 죽는다는 걸 사실은 믿지 않는대.


은우 : 진짜? 난 믿는데?


아빠 : 그게 진짜로 믿는 게 아니라는 거지.

의식적으로는 누구나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무의식적으로는 안 믿는대.


은우 : 난 진짜 믿는데?


아빠 : 그게 아니라는 거지.

봐봐, 우리가 만약에 비행기 타고 가다가 비행기가 떨어져서 곧 죽게 될 거라 하면 엄청 무서워서 울고 소리 지르고 그러지 않을까?


은우 : 당연히 그러겠지.


아빠 : 근데 왜 지금은 안 그래?


은우 : 지금 당장 죽는 게 아니잖아.


아빠 : 응. 당장 죽는 게 아니니까 실감이 안나지.

언젠간 죽는 건 맞지만 당장은 아니니 와 닿지가 않는다는 거지.

무의식 중에 죽는 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은우 : 음..


아빠 :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을뻔한 일을 겪고 나서 사람이 바뀌는 경우가 있거든.

평소에 소중한 가족을 외면하고 일만 하다가 죽을 뻔하고 나서는 진짜 중요한 게 가족이구나 하면서 가족에게 집중하는 그런 일도 있대.

근데 그 사람은 자기가 죽는다는 걸 믿고 있었으면 왜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은우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니? 내일 죽을 사람처럼?


은우 : 꼭 그렇지는 않아.


아빠 :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하면 오늘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그렇지?

근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을까?


은우 : 그러네..


아빠 : 그니깐 우리는 진짜 내가 죽는다고 믿고 있지는 않다는 거지.

이건 아빠도 맞는 말 같아. 

교수님도 맞는 말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고민해볼 만한 문제래.


은우 : 응.


아빠 : 자, 죽음에 대한 두 번째 놀라운 주장은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야.

사람이 태어나서 다 같이 살아가지만 죽을 때는 혼자라는 거지.

근데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건 죽음의 본질에 대한 거잖아. 

'본질'이라는 건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항상 그래야겠지?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반대되는 사례를 말하면 되는 거고.


은우 : 응. 맞아.


아빠 : 우리가 지금부터 이 주장을 비판해볼 거야.

교수님은 이 주장을 3가지 관점으로 해석했어.

첫 번째는 진짜 물리적으로 홀로 죽는다고 하는 주장.

이건 누가 봐도 아니지?

물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죽는 사람도 있겠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니까.


은우 : 응.


아빠 : 두 번째는 죽을 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죽는 건 나 혼자라는 주장이야.

이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은우 : 음..


아빠 : 전쟁이나 사고로 동시에 죽는 경우는 어때?


은우 : 응.


아빠 : 근데 그렇게 말했더니 처음에 주장했던 사람들이 그러는 거야.

아, 그건 그냥 같이 있다가 죽은 거지 둘이 협력해서 죽은 건 아니잖아?

은우가 길을 가는데 옆에 모르는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

그렇다고 그걸 은우가 그 사람이랑 같이 걷는다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은우 : 맞아.


아빠 : 그럼 사람은 혼자 죽는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은우 :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

집에 가족이 있는데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폭탄을 떨어뜨려서 같이 죽는 거.


아빠 : 아까 전쟁이나 사고로 죽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니야?


은우 : 근데, 무서워서 이렇게 다 같이 껴안고 죽는 거야.


아빠 : 음.. 비슷한데.

이런 경우가 있어. 

'로미오와 줄리엣'알아?


은우 : 들어본 거 같아.


아빠 : 진짜? ^^;;

셰익스피어가 쓴 유명한 슬픈 이야기인데.

로미오라는 남자와 줄리엣이라는 여자가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집안끼리 원수지간인 거야.

그래서 부모님들이 둘의 결혼을 반대했는데 줄리엣이 어떤 약을 구해.

그 약은 먹으면 잠깐 죽었다가 살아나는 약이거든.

그래서 그 약을 먹고 죽은 척했다가 장례식을 마치고 살아나서 로미오랑 도망가려고.

근데 로미오는 줄리엣이 진짜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은우 : 으....


아빠 : 근데 더 슬픈 건.

줄리엣이 깨어나 보니 로미오가 죽어있는 거야.

그래서 줄리엣도 독약을 먹고 "당신을 따라가겠소" 하면서 죽어.


은우 : 엄청 슬픈 이야기다.


아빠 : 그렇지? 이런 경우 같이 죽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다 같이 악기 연주하는 것처럼 협력해서.


은우 : 응.


아빠 :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또 악기 연주랑은 다르다면서 뭐라고 해.

악기 연주는 내가 아니어도 남이 대신할 수 있는데 죽음은 대신할 수 없다고.


은우 : 대신 죽을 수 있지 않아?


아빠 : 응. 예전에 미국 남북전쟁 때..

전쟁 나면 젊은 남자들은 병사로 끌려간다고 했지?

근데 어떤 부자들은 죽기 싫으니까 자기 대신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고 해.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어.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했거든.

근데 그 다른 남자가 죄를 지어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어.

그랬더니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어떻게 했게?


은우 : 그 남자 대신 죽었어.


아빠 : 응. 왜 그랬을까?


은우 : 그 여자를 사랑하니까.


아빠 : 맞아. 사랑하는 여자가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겠지.

아무튼, 이렇게 대신 죽는 게 가능하잖아?

그랬더니 또 이렇게 말해.

대신 죽으면 그건 내가 죽는 게 아니고 남이 죽는 거지.

결국 나의 죽음을 남이 대신 경험할 수는 없다고.



은우 : 그러네..


아빠 : 근데 교수님은 사실 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대신 죽을 수 있든 없든 이게 죽음의 본질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은우 : 그럼 또 하나는?


아빠 : 마지막 해석은 사람이 죽을 때 느끼는 외로움 때문에 혼자 죽는다고 말한다는 거야.

죽을 때 느끼는 두려움, 쓸쓸함, 외로움 이런 것들 때문에 혼자 죽는다고 표현하는 거지.

이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은우 : 잠깐! 내가 생각해볼게. 

(1초 만에) 

잘 모르겠어.


아빠 : 하하하.. ^^;;

은우야, 생각해본 거 맞아?

자,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으면?

그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은우 : 오. 맞아. 그러네.


아빠 : 근데 그랬더니 또 이러네.

"아, 조건이 있는데.. 사람은 '깨어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고 홀로 죽어."

이건 어떻게 반박할까?


은우 : 음... 모르겠어.


아빠 : 그냥 길가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는 경우가 있잖아.

깨어있는데 외로움을 느끼면서 죽은 게 아니지.


은우 : 맞네.


아빠 : 근데! 그랬더니 또 이러는 거야.

"아,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고 있을 때'만 외로움을 느끼고 홀로 죽어."

이건 어떻게 반박할래?


은우 : 음...


아빠 : 예전 배운 거에서 나오니까 잘 생각해봐.


은우 : 아.. 모르겠어.


아빠 : 소크라테스 이야기 기억나?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죽었지?


유민 : 웃으면서!


아빠 : 맞아.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영혼이 계속 존재할 거라고 믿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죽었다고 했잖아.


은우 : 그러네.

아빠, 근데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야?


아빠 : 어??

어.. 은우야 정말 좋은 질문이다. 

아빠도 대체 왜 교수님은 이런 말들을 맞다 틀리다 하고 있을까 궁금했거든.

근데 사람들이 죽음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죽음이 뭔가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사실 죽음은 죽음일 뿐인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뭔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결국 홀로 죽는 거지.."하고 멋진 척을 한다는 거지.

근데 왜 죽음은 그냥 끝이라고 자꾸 강조하는 걸까?

죽음이 끝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어?


은우 : 잘 살아야지.


아빠 : 그렇지, 아빠도 아직 다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결국 잘 살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거야. 

죽음은 나쁜 것인가?

은우야, 죽음은 나쁜 것일까?


은우 : 죽음이 좋을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아빠 :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더 잘 살게 되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

아마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p.s. 아이들과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사실 아이들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고민이 되는 일이지만 '자살'이라는 주제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기에 더 조심스러운 주제입니다.

은우는 '자살'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런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겠죠.

더욱이 오늘 강의 내용 중에 '동반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나 고민했습니다.

아내와 고민 끝에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를 통해 '동반자살'이라는 키워드를 부각하지 않으면서 같이 죽는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넌지시 보니 책의 마지막 챕터의 주제가 '자살'이고 특정한 경우에서는 자살도 옳다는 논조를 하고 있어 살짝 걱정은 됩니다.

하지만 아직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과한 걱정이었나 생각도 드네요.


여전히 아이들과 이야기 하기에 '죽음'이나 '자살'같은 주제는 많이 조심스럽고 걱정도 됩니다만, 

아이들이 '죽음'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미스터리나 너무 두려워서 마주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고,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잘 살기 위한 행복한 고민들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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