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쁜 것인가>
2021-01-06의 기록.
아빠 : 자, 지난 시간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은우 : 음.. 뭐였지? 죽음이란 무엇인가?
유민 : 그건 애월 맛차에서 했던 거잖아. 옛날에.
아빠 : 응 그건 옛날에 했던 거지. 기억 안 나?
은우 : 뭐였지?
아빠 : 음.. 두 가지..
은우 : 아, 맞다. 두 가지의 놀라운 주장!
아빠 : 응. 놀라운 주장이 뭐였지?
은우 : 응.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다 같이 살지만 죽을 때는 혼자다.
아빠 : 응, 맞아. 그런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봤지?
오늘은 약간 어렵긴 한데 그래도 흥미진진한 내용이야.
그리고 이 죽음 강의에서 핵심적인 내용인 거 같아.
오늘의 주제는 '죽음은 나쁜 것인가?'에 대한 거야.
죽음은 나쁜 것이야?
은우 : 아니, 나는 그냥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아빠 : 그래? 그럼 죽는다고 생각해도 아무 기분이 안 들어?
무섭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기분 말이야.
은우 : 그런 기분이 들어.
아빠 : 그럼 죽음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해.
근데 왜 나쁜 건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아빠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
유민이는 죽음이 왜 나쁘다고 생각해?
유민 : 음.. 유민이는..
은우 : 죽으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잖아.
아빠 : 그렇지, 죽음은 헤어져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지?
유민 : 아! 유민이가 말하려고 했는데.. ㅜ.ㅜ
아빠 : 아.. 이건 정답이 있는 게 아니야.^^;;
유민이 생각도 똑같을 수 있어.
유민이도 헤어지는 게 싫어서지?
자기는?
엄마 : 나도 같은 생각이야.
죽으면 사람들이랑 이별하는 거니까.
아빠 : 아빠는 죽는 게 그냥 무서워.
자, 은우랑 유민이랑 엄마는 죽는 게 이별이라 나쁜 거라고 했잖아.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사실, 죽는 건 나한테는 나쁜 게 아니래.
어차피 죽고 나면 내가 없으니 '나한테' 나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별을 하면 남겨진 가족에게는 나쁠 수가 있겠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마냥 '이별' 때문에 죽음이 나쁜 건 아닌 거 같다는 거야.
잘 봐봐.
은우의 친구가 있어, 근데 친구가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가.
근데 로켓이 빨라서 출발한 뒤 1시간이 지나면 멀리 가서 더 이상 연락을 못해.
그리고 친구는 100년 뒤에 돌아올 거라 두 번 다시 못 만나고.
그럼 1시간 뒤에 완전 이별이니 슬프겠지?
은우 : 응.
아빠 : 자, 지금 느낌을 잘 기억한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들어봐.
두 번째는 우주여행을 가는 건 똑같은데 출발한 지 1시간 뒤에 로켓이 터져서 친구가 죽은 거야.
이것도 죽음 때문에 이별한 거니 슬프겠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은우는 첫 번째랑 두 번째랑 어떤 게 더 나쁜 거 같아?
은우 : 두 번째.
아빠 : 왜?
은우 : 첫 번째는 살아있는데 두 번째는 죽었잖아.
아빠 : 그렇지? 아빠도 두 번째가 더 나쁜 거 같거든.
근데 둘 다 '이별'인건 똑같잖아.
근데 두 번째는 죽음이니까 더 나쁘다고 느껴.
그렇다는 말은 죽음에는 이별과는 별개로 다른 나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렇지?
은우 : 응. 그러네.
아빠 : 그게 뭘까?
은우 : 뭐지.. 모르겠어.
아빠 : 오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기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죽음이 나쁜 핵심적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건 '죽음'이야.
죽어가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 아파서 죽으면.
근데 잠자다가 평화롭게 죽는 그런 죽음도 있거든.
그런데 지금 말하는 건 죽어가는 과정도 죽기 직전도 아니고 '죽음'자체에 대한 거라는 걸 꼭 기억해야 해.
은우 : 알았어.
아빠 : 자, 죽기 전에는 아직 '죽음'이 없지?
나쁠 게 없겠지?
은우 : 응.
아빠 : 근데 죽고 나서는?
내가 없는데 뭐가 나쁠 수 있을까?
내 존재가 없다는 건 나쁘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런 느낌도 없는 건데?
은우 :......
아빠 : 근데 왜 사람들은 죽음이 나쁘다고 느낄까?
아빠도 죽음이 나쁘다고 느끼거든, 죽는 게 싫고.
왜 그럴까?
은우 : 그러게..
아빠 : 무언가 나쁜 건 세 가지 종류가 있대.
첫 번째는 그 존재 자체로 나쁜 것.
예를 들면 고통 같은 거.
아픈 건 그 자체가 그냥 싫은 거지?
은우 : 응.
아빠 : 두 번째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게 나쁜 걸 만들어 내는 것.
예를 들면 가난 같은 거.
돈이 없다는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아파도 치료를 못 받고 그러면 나쁜 게 되겠지?
은우 : 응.
아빠 : 마지막으로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나쁜 거.
무슨 말이냐면 다른 거랑 비교했을 때 나쁘다는 거야.
자, 봐봐.
오늘 죽음 강의가 끝나면 잠잘 때 강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거야?
유민 : 재밌었다고.
아빠 : 그렇지? 그럼 강의가 좋은 거지?
근데 만약에 잠잘 때 아빠가 이렇게 말해.
"아, 오늘 강의 안 했으면 그 시간에 포켓몬 영화 봤을 텐데.."
이러면 어때?
유민 : ㅇ_ㅇ;;;
아빠 : 그럼 강의가 나쁜 게 돼버렸지?
이런 거야.
또 예를 들면.. 자, 아빠가 은우한테 봉투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어.
은우가 고른 봉투 안에 있는 거는 은우가 가질 수 있어.
자, 두 개 중에 어느 걸 고를 거야?
은우 : 아니, 근데.. 나중에 또 말을 바꾸고 그러면..
엄마 : 은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빠 : 그래. 일단 골라봐.
은우 : 이거.
아빠 : 축하해! 안에 만원이 들어있네!
기분 좋지?
은우 : 음.. 응.
아빠 : 여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아빠가 다른 봉투를 열어보니 거기엔 십억이 들어있어!
이럼 어때?
은우 : 아, 이럴 줄 알았어! ㅡ.ㅡ;
아빠 : 그럼 은우가 고른 봉투가 나쁜 거가 되겠지?
죽음은 이렇게 바로 상대적으로 나쁜 거라는 거야.
자, 그럼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잃게 되는 게 대체 뭘까?
유민 : 먹는 거, 노는 거.
은우 : 사랑하는 거.
엄마 : 공부하고 책 읽고..
아빠 : 그렇지.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잃게 되는 건 '삶' 그 자체야.
죽는 순간 우리는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재밌게 놀지도 못하고, 사랑도 못해.
그리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그런 삶 자체를 잃게 되는 거야.
그래서 죽음이 나쁘다는 거지.
어때?
은우 : 맞는 말 같아.
아빠 : 그렇지? 아빠도 그래.
이걸 '박탈 이론'이라고 해.
은우 : 박탈?
엄마 : 빼앗긴다는 뜻이야.
아빠 : 응. 맞아.
근데 이 '박탈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죽음은 삶을 빼앗기는 거니까 나쁜 거야"라고 했더니 "그 말이 틀렸어"라고 하는 거지.
은우 : 진짜? 그럴 수가 있어?
아빠 : 응. 대표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중에 에피쿠로스라는 사람이 있어.
은우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하하하!
아빠 : 아니, 에피쿠로스..ㅡ.ㅡ;
은우가 나중에 중학교에 들어가면 배울 거야.
암튼, 에피쿠로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
집중해서 잘 들어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은우 :......
아빠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까 한말이랑 비슷한 거야.
우리가 죽어서 없는데 안 좋을게 뭐가 있느냐 라는 거지.
이 주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를 사실이라고 하려면 그게 사실이거나 사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대.
이 말은 맞아?
은우 : 응.
아빠 : 음... 예를 들어.
은우 : 응. 아빠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으니까 얘기 계속해봐.
아빠 : 아니, 잘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하늘이 파란 건 사실이지? 언제 파래? 낮에 파랗지?
은우 : 응.
유민 : 아빠가 강의하는 거..
아빠 : 그래, 유민아.
아빠가 강의하는 것도 사실이지? 언제 강의해? 지금이지?
이렇게 뭔가가 사실이라고 말하려면 그게 언제 사실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사실인데 언제 사실인지 말 못 할 그런 것도 있을까?
한번 생각해봐.
은우 : 모르겠어. 없는 거 같아.
아빠 : 응. 그럼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하면..
잘 봐봐.
"죽음은 나쁘다"는 사실은 대체 '언제'야?
죽음은 '언제'나쁜 거야?
은우 : 죽을 때 나쁘지..
아빠 : 그건 아직 죽기 전이잖아.
은우 : 음.. 언제 나쁜 거지?
죽은 다음에 쭉! 계속.
아빠 : 그렇지? 죽은 다음에 지속적으로 삶을 박탈당하는 거니.
근데 죽은 다음에는 나의 존재가 없는데 나쁠 게 있나?
은우 : 그러네.. 모르겠어.
아빠 : 자, 일단 에피쿠로스의 말이 틀렸다고 하려면, 그러니까 '죽음이 나쁘다'라고 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첫 번째는 전제가 틀렸다고 하는 거야.
"사실이어도 그 시점이 언제인지 말하기 어려운 일도 있어.
죽음이 나쁜 건 언제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사실이야." 이렇게.
두 번째는 죽음이 나쁜 시점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거야.
"죽음이 나쁜 건 사실이야. 왜냐면 죽음은 '이때' 나쁘거든!" 이렇게.
첫 번째 꺼부터 해보자.
은우 : 응.
아빠 : 사실은 맞는데 그게 '언제'인지 말하기 어려운 일을 찾아보자.
어떤 게 있을까?
은우 : 음....
아빠 : 아빠도 이건 도저히 생각을 못하겠더라고..
근데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어.
잘 들어봐.
예를 들어 아빠가 월요일 누구를 총으로 쐈어.
유민 : ㅇ.ㅇ!!!
아빠 : 그냥 예로 든 거야. 아빠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아.
은우 : 당연하지.
아빠 : 자, 아빠가 월요일 총으로 쐈는데 그 사람이 안 죽었거든.
근데 화요일 아빠가 죽었어.
그리고 그 사람은 피를 흘리다가 수요일 죽었고.
이때, '아빠가 그 사람을 죽인 건' 사실이지?
은우 : 응.
아빠 : 그럼 아빠는 그 사람을 '언제' 죽인 거야?
은우 : 총으로 쐈을 때.
아빠 : 그때는 살아있었는데?
은우 : 수요일.
아빠 : 그땐 아빠가 죽어서 없는데? 어떻게 죽인 거야?
은우 : 음..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죽인 거야.
아빠 : 장난하지 말고..ㅡ.ㅡ;
언제 죽였다고 말하기 애매하지?
은우 : 아니 근데 수요일 죽은 거잖아.
아빠 : 그래. 그 사람이 죽은 건 사실이지?
그게 사실이니까 언제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하지?
그 사람이 죽은 게 언제야? 수요일이지?
은우 : 그니까.
아빠 : 근데 죽'은'거 말고 죽'인'건?
아빠가 죽인 게 사실이잖아.
근데 그 사실은 언제야??
은우 : 그러네.. 모르겠어.
아빠 : 이렇게 사실이지만 언제인지 말 못 할 일들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죽음이 나쁜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인지 물어보면 모른다는 거지.
근데 교수님은 사실은 아까 총 쏘고 그런 것도 잘 생각해보면 납득할만한 답변을 찾을 수 있을 거래.
아무튼 아빠는 첫 번째 방법은 별로야.
그럼 두 번째 방법을 볼까?
아까 은우가 죽음이 언제 나쁘다고 했지?
은우 : 죽고 나서 쭉.
아빠 : 응. 그렇게 정확한 시점을 말했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뭔가가 나한테 나쁘려면 내가 존재해야 한다.'
즉, 죽은 다음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으니 나쁠 수가 없다. 이렇게.
이건 어때?
은우 : 나쁠 수 있지. 삶이 없는데.
아빠 : 그래, 박탈 이론에 의하면 '존재가 없는 거' 자체가 박탈의 증거니까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자, 그럼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나에게 뭔가가 나쁠 수 있다고 생각해볼까?
은우 : 응.
아빠 : 그럼 봐봐.
은우는 아빠 몸의 아기씨, 그니까 정자랑 엄마 몸의 난자가 만나서 태어난 거지?
엄마 몸에 아기집이 있고 난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난자가 나오는데 정자를 만나면 아기가 되고
정자를 못 만나면 아기집이 허물어져서 피로 나온다고 했지?
은우 : 그게 생리야?
아빠 : 응.
엄마 : 갑자기 성교육이네. ^^;;
유민 : 근데 왜 엄마는 우리가 있는데 왜 계속 생리를 해?
아빠 : 아, 그건 나이 먹어서 더 이상 난자가 안 나올 때까지 계속돼.
셋째를 낳게 될 수도 있잖아?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근데 정자는 3억 마리 중에 1등만 난자랑 만나거든.
은우 : 2등은? 동시에 1등도 될 수 있어?
아, 그게 쌍둥이야 그럼?
아빠 : 아니, 1개만 만날 수 있어.
2개가 만난다고 해도..
아.. 이야기가 자꾸 새는데..
봐봐. 세포 안에 세포를 만드는 법이 쓰여있는 실(DNA)이 두 가닥 있다고 했지?
이게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한테서 온 거거든.
그래서 정자, 난자에 한가닥씩 들어있는데 만약 정자 두 개가 들어오면 실이 세 가닥이 되지?
그럼 세포를 어떻게 만드는지 헷갈려서 아기가 되지 못할 거야.
암튼!!!
그럼 은우가 된 정자, 난자 말고 나머지 몇 십억, 몇 백억의 정자, 난자는?
걔네들은 사람으로 존재한 적이 없지?
근데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나한테 뭔가 나쁠 수 있다'면서, 그럼 걔네들도 똑같이 죽음을 슬퍼해야겠네?
은우 : 응. 난 그럴 수 있어.
엉엉엉.. 슬프다~~ ㅜ.ㅜ
아빠 : ㅡ.ㅡ;;
그럼 엄마, 아빠 만이 아니고 전 세계의 남녀의 정자, 난자에게 다 슬퍼해야겠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빠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은우 : 응. 이상해.
뭐가 잘못된 거지?
아빠 : 자, 지금은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어.
아까 "뭔가 나에게 나쁘려면 내가 존재해야 한다." 이걸 존재 요건이라고 하거든.
이 존재 요건이 맞다고 하면 죽은 뒤에 내가 없으니까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고 해야 해.
근데 죽음은 나쁘다고 느껴지잖아.
그래서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나쁠 수 있다."라고 하려면 이번엔 세상에 모든 정자, 난자의 죽음을 슬퍼해야 해.
은우 : 응.
아빠 : 자, 그래서 존재 요건을 조금 쉽게 만들 거야.
"뭔가 나에게 나쁘려면 나쁜 거랑 나랑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이게 아니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아도 특정 시점에 존재하기만 하면 나에게 나쁠 수 있다" 이렇게.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럼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존재했었으니까 죽음 뒤에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죽음이 나에게 나쁠 수 있지?
은우 : 응.
아빠 : 그럼 정자, 난자는?
걔네는 사람으로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나쁠 게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
은우 : 오. 그러네.
맞는 말 같아.
아빠 : 여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이것도 문제가 있어.
자, 아빠가 100살까지 살 수 있는데 50살에 죽었어.
그럼 어때?
은우 : 나쁘지.
아빠 : 그럼 20살에 죽으면?
50살에 죽은 거랑 비교하면 뭐가 더 나빠?
은우 : 20살.
아빠 : 그럼 1살에 죽으면?
은우 : 더 나빠.
아빠 : 그렇지? 태어난 지 1분 만에 죽으면 더 나쁘고 1초 만에 죽으면 더 나쁘겠지?
이렇게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 더 나쁜 게 되잖아.
근데 봐봐. 만약 아빠가 태어나지도, 아니 생겨나지도 않았으면?
그럼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나쁠 게 없다며.
은우 : 어? 그러네?
아빠 : 이상하지?
은우 : 응. 시간이 줄어들면 더 나빠지다가 아예 없어지면 갑자기 안 나쁜 게 되네.
아빠 : 맞아.
뭔가 이것도 이상하지?
이쯤 되면 "죽음이 진짜 나쁜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은우 : 어렵다.
아빠 : 그렇지? 오늘 꺼가 좀 길어.
자, 이번엔 다른 철학자가 나와.
루크레티우스라는 사람이야.
다시 박탈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그 이후의 삶이 박탈되니까 나쁘다고 했잖아.
은우 : 응.
아빠 : 내가 없으니까 속상하고 우울하지?
은우 : 응.
아빠 : 그럼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내가 없으니까 똑같이 속상하고 우울해?
은우 : 음.. 똑같네?
태어나기 전이랑 죽은 다음이랑.
아빠 : 그렇지?
근데 죽은 다음에 내가 없는 거는 속상한데 왜 태어나기 전에 없었던 거는 속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루크레티우스는 "죽고 나서 존재하지 않는 게 나쁜 거면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나쁜 거 아닌가? 근데 안 그런 거 보면 죽음이 나쁜 건 아닌가 봐." 이랬거든.
우리는 여기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은우 : 그냥 그 말이 맞다고.
아빠 : 그래. 첫 번째 방법은.
"그래 네 말이 맞아. 죽음은 나쁜 게 아니야." 할 수도 있지.
두 번째는 "아니, 나는 죽고 나서 내가 없는 게 나쁘고 태어나기 전에 내가 없었던 것도 똑같이 나빠" 할 수도 있지.
마지막으로 "태어나기 전이랑 죽고 나서는 달라, 태어나기 전에 내가 없었던 건 별로 안 나쁜데 죽고 나서 내가 없는 건 나빠." 할 수도 있어.
아빠는 마지막 말이 맞는 거 같아.
은우 : 나도.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아빠 : 근데 마지막 말이 맞다고 하려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없는 거'랑 '죽고 나서 내가 없는 거'가 뭐가 다른 건지를 말해야겠지?
자, 우리가 죽으면 삶을 가지고 있다가 잃잖아.
이렇게 가지고 있다가 잃는 걸 '상실'이라고 해.
근데 반대의 경우는 마땅한 단어가 없어.
'지금은 없는데 앞으로 가지게 될 것.'이라는 뜻의 말이.
은우 : 아니야. 있어.
음.. 탄생?
아빠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정확하진 않은 거 같아.
그래서 교수님은 단어를 만들었어.
'쉬모스'라는 단어야.
그럼 죽음은 뭐야? 뭐가 있고 뭐가 없어?
은우 : 상실이 있고 '쉬모스'가 없어.
아빠 : 탄생은?
은우 : 상실이 없고 '쉬모스'가 있어.
아빠 : 그럼 탄생보다 죽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려면?
'쉬모스'보다 상실이 더 중요한 이유를 말해야지?
왜 일까?
은우 : 태어나는 건 내가 마음대로 못하잖아.
아빠 : 응. 맞아. 비슷한 뜻으로 토머스 네이글이라는 사람이 말했어.
"죽음을 미루어서 더 오래 사는 건 노력하면 가능한데 노력해서 일찍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렇게.
일찍 태어나는 게 가능할까?
아빠가 엄마를 1년 빨리 만났으면 은우가 1년 빨리 태어났을 것 같지?
은우 : 응. 아니야?
아빠 : 아니지.
1년 빨리 아기가 태어나긴 하겠지만 그게 은우는 아니지.
은우는 딱 그때 그 시간의 그 정자와 그 난자가 만나서 생긴 거잖아.
그럼 토머스 네이글의 말이 틀렸다고 하려면 노력해서 일찍 태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말해야겠지?
말할 수 있겠어?
은우 : 어! 당연!
자, 봐봐.
이렇게 타임머신을 타고 1년 전으로 돌아가서..
아빠 : 근데 그 1년 전의 정자, 난자는 은우가 되지 않는다니깐.
은우 : 아니, 아빠는 내 말을 이해 못한 거 같아.
잘 들어봐 봐.
만약에 엄마가 오늘 서귀포에 갔어. 운전하고.
근데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오늘을 시작하면 똑같이 준비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서귀포에 갈 거잖아.
아빠 : 아, 그러니까 시간을 되돌리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거지?
근데 그럼 은우가 생겨난 날로 되돌려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그럼 일찍 태어난 게 아니지.
은우 : 어.. 그러네..
그럼 이건 어때?
아빠 : 음. 일단 오늘 갈길이 머니까 아빠가 말해줄게.
자연적으로 임신이 힘든 경우에 정자와 난자를 뽑아서 합쳐서 다시 몸에 넣는 식으로 시술을 하기도 하거든.
근데 정자와 난자를 얼려놓고 나중에 쓸 수도 있어.
은우 : 그럼 냉동 아기 아니야?
아빠 :.......
암튼, 예를 들어 10년 전에 정자, 난자를 얼려놓고 10년 뒤에 아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어서 9년 뒤에 아기를 만들었어.
그럼 일찍 태어난 거가 맞지?
은우 : 응. 맞아.
아빠 : 좀 억지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하면 토머스 네이글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근데 그랬더니 이번엔 프레드 펠드먼이란 사람이 다른 말을 해.
은우 : 뭐라고?
아빠 : 자, 봐봐.
우리가 늦게 죽는다고 하면 더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
근데 일찍 태어났다면?
은우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엄마 : 그럼 그때를 살다가 죽었겠지.
아빠 : 그렇지?
일찍 태어난다고 더 오래 사는 게 아니고 그냥 삶을 앞으로 당긴 거라고 생각이 들잖아.
자,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은우 : 근데 왜 자꾸 틀렸다고 해야 해?
그냥 맞다고 하면 안 돼?
아빠 : 그러게...
이렇게 말로 반박하고 하는 게 철학인가 봐..
암튼, 틀렸다고 하려면 일찍 태어나서 오래 살 수 있는 상황을 말하면 되겠지?
말할 수 있겠어?
은우 : 음...
아빠 : 아빠가 어릴 때는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말이 있었거든.
실제로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유민 : 그래서 무서웠어?
아빠 : 진짜 멸망한다고 생각하면 무섭겠지.
근데 진짜 멸망했다고 치자.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해서 다 죽은 거야.
이런 경우는 어때?
일찍 태어났으면 더 오래 살 수 있었겠지?
은우 : 응. 그러네.
아빠 : 자, 그럼 프레드 펠드먼의 말도 틀렸어.
일찍 태어나는 게 삶의 연장은 아니니 '쉬모스'보다 상실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틀렸어.
일찍 태어나는 것도 삶의 연장이 될 수 있어.
자, 그럼 '쉬모스'보다 상실이 더 중요한 이유는 대체 뭐지?
은우 : 내가 선택하고 못하고?
아빠 : 맞아. 은우야.
자, 이제 마지막이야.
데렉 파피트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
은우가 만약 수술을 해야 되는데 마취를 못해.
은우 : 으.. 끔찍해!
그럼 죽잖아.
아빠 : 응, 수술을 안 하면 죽어.
수술을 하면 사는데 마취 없이 고통을 참아야 해.
근데 그런 고통을 당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으니 수술이 끝나면 의사 선생님이 약을 줄 거야.
그 약을 먹으면 기억이 없어져서 고통의 기억도 사라져.
수술받은지도 모르게 돼버려.
은우 : 응.
아빠 : 자, 은우가 눈을 떴어.
기억이 없으니 수술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몰라.
이 상황에서 은우는 수술을 받은 상태이면 좋겠어 아닌 상태이면 좋겠어?
은우 : 받은 상태.
아빠 : 왜?
은우 : 수술을 안 받으면 죽잖아.
아빠 : 그렇지?
살기 위해선 수술을 받아야 하고 고통을 견뎌야 하니 수술을 받은 상태인 게 낫겠지?
자, 이렇게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과거랑은 다르기 때문에 '쉬모스'보다 상실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그 말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가 없는 상태는 딱히 나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의 존재가 없다는 사실은 나쁘다는 말이지.
은우 : 응. 끝이야?
아빠 : 사실은 이러한 생각도 사람의 기호이고 정당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긴 해.
하지만 가장 타당한 말인 것 같아.
'박탈 이론'이 이렇게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죽음이 나쁘다는 것을 설명할 가장 좋은 이론인 거 같아.
자, 그럼 이제 대답할 수 있겠지?
죽음은 왜 나쁜 거야?
은우 : 죽고 나면 삶이 없으니까.
아빠 : 그렇지.
아빠도 이게 맞는 말 같아.
죽고 나면 더 이상 살아서 세상을 경험할 수 없으니까 죽음을 생각하면 슬프고 우울해.
근데 영원히 죽지 않으면?
은우 : 그래도 싫어.
우주에서 혼자 살아야 되니까.
아빠 : 지구랑 다른 사람들도 영원히 존재하면?
은우 : 그럼.. 잘 모르겠어.
아빠 : 그렇지? 다음 시간에 이야기해볼 거야.
자, 오늘은 죽음이 나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어.
다음 시간에는 그렇다면 영원히 사는 건 좋은 걸까? 에 대해서 말해줄게.
은우 : 근데 왜 영원히 사는 게 좋은지 막 맞다 틀리다 그런 걸 해야 해?
아빠 : 그냥 '죽음은 나쁜 거야' 이러고 끝나면 죽는 게 무섭잖아.
근데 영원히 사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다고 하면 죽음의 의미가 또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은우 : 아니, 그렇긴 한데..
왜 철학을 해? 나는 이런 건 쓸모가 없는 거 같아.
엄마 : 은우야, 철학을 통해서 세상이 발전했어.
과학, 의학 이런 것들도 다 철학에서 발달한 거야.
사람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냥 생각도 안 하고 살았으면 아무런 발전이 없었겠지.
아빠 : 그래, 맞아.
생각을 멈추면 더 이상 발전이 없거든.
인간은 생각하는 힘으로 문명을 발전시킨 거야.
오늘은 너희들이 컨디션도 안 좋은데 내용이 좀 길고 복잡해서 어려웠지?
피곤하고 졸릴 텐데 수고했어!
자~ 이제 양치질하고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