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2021-01-13의 기록.
아빠 : 자, 지난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유민 : 죽음은 나쁜 것인가?
아빠 : 그건 지지난번이고.
죽음이 왜 나쁜 거라고 했지?
은우 : 박탈 이론!
아빠 : 그렇지, 삶을 빼앗아가니까 나쁜 거라고 했지?
그럼..
은우 : 아 맞아, 지난번에 영생은 좋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어.
아빠 : 그래, 맞아.
죽음이 나쁜 거면 영생은 좋은 걸까?
유민아 영생이 뭐지?
유민 : 영원히 사는 거.
아빠 : 그게 좋은 걸까?
은우 : 아니, 나쁜 거.
아빠 : 왜였지?
은우 : 너무.. 지루하고..
아빠 : 그렇지, 지루하지 않으려고 기억을 지우면 그건 내가 아닐 거고.
결국 영생에서 벗어나는 의미에서 죽음은 나쁜 게 아닐 수 있는데,
막상 죽게 되는 상황이 되면 죽음이 나쁘겠지?
은우 : 응. 아쉽고.
아빠 :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지?
은우 : 만족스러운 삶.
아빠 : 응. 맞아.
지난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자, 오늘은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거야.
은우 : 응. 나 아빠 없을 때 조금 읽어봤어.
아빠 : 그래? ^^;;
자, 우리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라고 했잖아.
그런데 만족스러운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인생에 뭐가 있으면 만족스러울 것 같아?
은우 : 부자 되는 거. 돈.
아빠 : 응. 돈도 중요하지.
다 적어보자. 또?
유민 : 집.
아빠 : 오케이. 집.
그리고...
은우 : 얼음정수기!!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얼음정수기를 이야기하는 은우..^^;;)
아빠 : 자, 그럼 나쁜 건?
인생에서 없었으면 하는 것.
은우 : 병.
아빠 : 그렇지? 또 뭐가 있지?
유민 : 죽는 거.
아빠 : 죽는 거는 삶이 아니니깐 그건 빼자.
다른 거 뭐 있지?
엄마 : 화내는 거 ^^;;
은우 : 주사.
엄마 : 주사는 엄마도 싫어.
(각자 싫어하는 것들을 이야기함.)
아빠 : 자, 그럼 하나씩 볼까?
위쪽은 좋은 거 아래쪽은 나쁜 거야.
처음에 돈. 돈이 있으면 뭐가 좋아?
은우 : 갖고 싶은걸 다 살 수 있어.
아빠 : 그럼 뭐가 좋아?
유민 : 지구를 다 살 수 있어.
아빠 : 응. 그럼 뭐가 좋을까?
은우 : 다 맘대로 할 수 있어.
아빠 : 그렇지? 근데 그럼 뭐가 좋아?
은우 : 기분이 좋지.
아빠 : 맞아 은우야. 기분이 좋지?
그럼 집은? 집이 있으면 편하지?
그럼 뭐가 좋지?
은우 : 기분이 좋지.
아빠 : 맞아.
그럼 사람이 있으면?
유민 : 기분이 좋지.
아빠 : 사랑은?
은우 : 기분이 좋지.
아빠 : 응. 우리가 좋다고 적은 게 다 결국 기분이 좋은 거네?
이걸 어려운 말로 쾌락이라고 해.
즐거울 쾌, 즐거울 락. 쾌락.
은우 : 쾌락.
아빠 : 응. 자, 이번엔 나쁜 거 볼까?
병들면 뭐가 안 좋아?
은우 : 아파.
아빠 : 맞아. 고통.
화내는 건?
은우 : 기분이 나빠.
아빠 : 응.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이 아프지?
이것도 고통.
그럼 주사는?
유민 : 아파.
아빠 : 맞아. 고통.
나쁜 건 결국 다 고통이네?
이렇게 삶에서 좋은 건 쾌락, 나쁜 건 고통이다~ 하는 걸 쾌락주의라고 해.
이 생각은 어때?
은우 : 나는 좀 아닌 거 같은데?
아빠 : 왜? 어떤 게?
은우 : 세상에 좋은 거만 있는 게 아니잖아.
고통이나 죽음은 그럼 뭔데?
아빠 : 아니, 쾌락만 있다는 게 아니고..
인생에서 쾌락과 고통이 있는데 쾌락은 좋고 고통은 나쁜 거라고.
은우 : 응. 그 말은 맞는 거 같아.
아빠 : 그렇지? 맞는 말 같지?
이제 이 쾌락주의가 틀렸다고 해볼 거야.
은우 : 어떻게? 맞는 말 같은데?
아빠 : 이 쾌락주의에서 잘못된 점은 우리 삶에 좋고 나쁜 게 쾌락과 고통밖에 없다는 거야.
예를 들어 여행을 가서 느끼는 자연이나, 가족 간에 느끼는 사랑,
아니면 위대한 발견을 했을 때 느끼는 기쁨..
이런 것들을 단순히 쾌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쥐 기억나, 유민아?
은우 : 응. 막 쥐가 버튼 누르고 좋아했던 거?
아빠 : 유민이 한테도 좀 물어볼게. ^^;;
유민아 버튼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었지?
유민 : 그.. 쥐 머릿속에 뇌에.
아빠 : 응. 맞아. 버튼을 누르면 쥐가 '쾌락'을 느껴서 계속 누른다고 했잖아.
근데 사람은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
사람은 이런 단순한 쾌락에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근데 이런 건 어떨까?
로버트 노직이라는 사람의 사고 실험이야.
은우 : 로봇?
아빠 : 로버트.
자, 봐봐.
이렇게...
유민 : 컴퓨터야?
아빠 : 욕조야.
이렇게 욕조에 물이 차있고 사람이 둥둥 떠있어.
그리고 머리에 기계가 연결되어 있어서 이 사람이 원하는걸 실제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걸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위대한 발견을 해서 노벨상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현실처럼.
은우 : 근데 물 위에 떠있잖아.
아빠 : 아니, 물 위에 떠있다는 것조차 못 느끼고 마치 현실처럼 느끼는 거야.
자, 이런 게 있다면 어떤 경험을 할거 같아?
은우 : 나는 안 할 거 같아.
아빠 : 왜?
은우 : 진짜 경험이 아니고 그냥 기계니까.
아빠 : 그래? 유민이는?
유민 : 유민이는 행복한 경험을 할 거야.
아빠 : 응. 아빠는 이런 기계가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
날고 싶다고 생각하면 날 수 있게 되고 그런.
자기는?
엄마 : 나도 그런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네.
은우 : 나도 만약 한, 두 시간 정도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는 해보고 싶어.
아빠 : 근데 만약 평생 여기서 살라고 하면?
은우 : 그건 싫지.
아빠 : 근데 기계에 떠있는 줄 모르고 실제 경험처럼 느껴지는데?
은우 : 어떻게 몰라.
아빠 : 모를 수도 있지.
지금 은우가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 이런 기계일 수도 있잖아.
실제 은우는 물에 둥둥 떠있고.
은우 : 그걸 내가 모르겠어? 실제가 아니면 당연히 알지.
엄마 : 아니야, 은우야.
이런 주제로 영화도 많이 나왔어.
아빠 : 아무튼, 은우는 이런 경험이 실제처럼 느낄 수 있다고 해도
실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살기는 싫다는 거지?
아빠도 그래. 이건 대부분 비슷하게 느낄 거야.
왜 그럴까? 쾌락주의에 의하면 분명 좋은 삶인데.
아까 은우도 쾌락주의가 맞는 말 같다고 했잖아.
은우 : 그러게.. 잘 모르겠어.
아빠 : 아마 그냥 단순한 내면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외적으로 실제 느끼는 그런 경험이 필요한 거겠지.
사실 우리가 삶의 가치를 판단할 때 각각의 삶이 다르기 때문의 삶의 가치도 다 다르겠지?
삶에서 좋은 거, 나쁜 거를 다 더하고 빼고 해 보면 각각의 삶의 가치가 나올 거야.
이렇게 사람마다 삶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하는 걸 중간론이라고 하고,
'삶은 무조건 좋은 거다'라는 걸 낙관론이라고 해.
반대로 '삶은 나쁜 거다'라는 사람들은 비관론이라고 하고.
은우 : 응.
아빠 : 자, 근데 삶이라는 게..
이렇게 그릇처럼 돼있고 그릇 안에 내 삶의 가치들이 담긴다고 해보자.
아빠 : 쾌락 같은 좋은 건 +고, 고통 같은 나쁜 건 -라고 해보자.
예를 들어 앞으로 은우의 인생을 볼까?
은우가 나중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맘에 드는 여자 친구를 사귀었어.
그럼 좋은 거니 +100점.
은우 : 아니~! 나는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아빠 : 예를 들어서 그렇다고 해보자.
그리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 이건 -10점.
그리고 나중에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어. +1000점.
아기를 낳았어..
은우 : 아빠, 근데 이거 여자 친구 이거는 안 하면 안 돼?
엄마 : 그래, 그럼 그냥 좋은 친구를 사귄 걸로 하자.
아빠 : 그래.. 그렇게 하고.
이런 식으로 점수를 다 더해보면 은우의 인생의 가치가 나오겠지?
근데.. 이 그릇은 과연 몇 점일까?
삶의 경험이 아니라 '삶' 자체의 점수 말이야.
'살아있다는 것'의 가치.
은우 : 그건 무한 대지.
아빠 : 오케이.
은우는 무한대.
자기는?
엄마 : 나도 무한대 같은데?
은우야, 이 표시(∞)가 무한대라는 뜻이야.
아빠 : 나는 그릇은 0점이라고 생각해.
은우 : 왜?
아빠 : 찬찬히 설명해줄게.
유민이는?
유민 :.....
아빠 : 다양한 관점을 설명해야 되니까,
일단 유민이는 1000점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자, 은우나 엄마, 유민이처럼 '삶'이라는 '그릇'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걸 '가치적 그릇 이론'이라고 해.
그중에서 유민이 처럼 일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걸 '온건한 가치적 그릇 이론'이라 하고,
은우랑 엄마처럼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걸 '환상적 가치적 그릇 이론'이라고 한대.
아빠처럼 '삶'이라는 '그릇'자체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걸 '중립적 그릇 이론'이라고 하고.
은우 : 응.
아빠 : 자, 유민이처럼 삶 자체에 일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예를 들어 삶의 내용물을 더했을 때 안 좋은 일이 많아서 점수가 마이너스가 되어도
삶의 가치가 그거보다 크면 전체적으로는 플러스가 되겠지?
유민이가 삶의 가치를 1000점으로 생각하면
삶의 내용이-999점이라도 그릇의 점수를 더하면 +가 되는 거니.
은우 : 응.
아빠 : 반대로 -1000점이 넘으면 삶의 가치가 없어지니 사는 게 의미가 없겠지.
은우랑 엄마의 경우는 어때?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릇의 가치가 무한대니까 일단 점수를 더하면
삶 자체에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지?
심지어 식물인간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도 '살아있는 것'자체의 가치가 무한하니까
살아있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거고.
반대로 아빠같이 그릇의 가치가 0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경우 삶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거야.
은우 : 그럼 나도 아빠처럼 0인 거 같아.
아빠 : 그래?
자, 그런데 환상적 가치적 그릇 이론은 '삶'자체의 가치가 무한대라고 했잖아.
그럼 이 사람들에게 삶을 박탈하는 죽음은 당연히 나쁜 거지?
근데 영생은 어떨까?
은우 : 어? 그럼 영생이 좋은 거네?
아빠 : 그렇지? 영생이 아무리 지루하고 괴로워도.. 마이너스 천만 점이 넘어도,
삶 자체가 무한대의 가치가 있으니 영생이 좋은 거겠지.
죽음은 확실하게 나쁜 거고.
은우 : 응.
아빠 : 반대로 '삶' 자체의 가치가 없거나 한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 죽음이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겠지.
영생은 삶의 내용물이 결국 나쁜 쪽으로 가니까 확실히 나쁜 것일 거고.
은우 : 응. 맞아.
아빠 : 종합해보면, 우리의 삶의 내용물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정해져.
그래서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겠지.
그런데 우리가 사실 몇 살에 죽던지 간에 죽음이 너무 빨리 온다고 생각이 들기는 할 거야.
은우 : 120살까지 살면?
아빠 : 막상 그때가 되면 너무 빨리 왔다고 생각이 들고 아쉽지 않겠어?
은우 : 그건 그래.
아빠 : 반대로 가치가 없는 삶을 살면 어떤 관점에서는 차라리 죽음이 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경우에는 또 죽음이 너무 굼뜨게 다가올 거야.
은우 : 왜?
아빠 : 은우도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고 지루한 시간은 느리게 가고 그러잖아.
은우 : 응. 맞아.
아빠 : 아무튼,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거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건 각자에게 의미가 다를 거 같아.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 시간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거야.
이제 뒤로 갈수록 내용도 좀 우울해지고 어려워지는 거 같은데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서 해보자.
은우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