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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Feb 07. 2021

'죽음이란 무엇인가' 12강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2021-01-17의 기록.




씬 스틸러..^^;;



아빠 : 자, 지난 시간에 뭐했었지?

근데 아빠도 잘 기억 안 난다.


은우 : 음.. 삶의 가치에 대해서?


아빠 : 와.. 은우가 아빠보다 낫네.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지?


은우 : 그.. 막 물 위에 떠서 경험하게 해주는 기계.

그리고 좋은 거 나쁜 거를 적어보고 했어.


아빠 : 응. 맞아. 

삶에서 좋은 게 뭐였지?


은우 : 쾌락.


아빠 : 나쁜 건?


은우 : 고통.


아빠 : 응. 그걸 쾌락주의라고 했지?


은우 : 응.

그리고 그릇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


아빠 : 은우는 정말 다 기억하네.

맞아, 엄마는 '삶'이라는 '그릇'의 가치가 무한대라고 했고 아빠는 0이라고 했지?


은우 : 응. 아빠, 근데.

그러면 아빠는 삶이 안 좋다는 말이야?

그릇의 가치가 0이면 그릇이 없는 거랑 마찬가진데 그럼 삶이 아무리 행복해도 필요 없다는 거잖아.


아빠 : 음.. 그 말이 아니고.

'삶의 내용물'이랑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더해서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한다고 하면,

엄마는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는 거라서 어떤 삶이든 가치 있다고 보는 거고

아빠는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는 0이라서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삶의 내용을 가지고만 평가한다는 거.


은우 : 아.. 그 말이구나.


아빠 : 응. 지난 시간에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한 거 같아.

오늘은 지난번보다는 알기 쉽고 재미있는 주제야.


은우 : 뭔데?


아빠 :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으~~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죽음이 왜 나쁜 거라고 했지?


은우 : 박탈 이론.


아빠 : 응. 삶을 빼앗아가니까 나쁘다고 했지?

그런데 죽음은 박탈 말고도 다른 특징들이 있어.

오늘은 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들이 죽음을 더 나쁘게 하는지 생각해볼 거야.

어떤 게 있냐면..

필연성, 가변성, 예측 불가능성..


은우 : 죽음은 당연히 예측 불가능하지.


아빠 : 응. 그리고 편재성, 상호 효과.

이렇게 5가지를 이야기해볼 거야.




죽음의 특징.




아빠 : 먼저 필연성.

자, 죽음은 반드시 일어나지?

안 죽는 사람? 손들어봐?


은우 : 나! (손 번쩍)


아빠 : 은우는 안 죽어?


은우 : 당연하지. 나는 어리고 건강한데?


아빠 : 아니, 지금 말고.. 언젠가는 죽잖아.


은우 : 응. 맞아.

근데 과학자들이 안 죽는 약을 개발할 수도 있잖아.


아빠 : 그렇게 따지면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없겠지?

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잖아.

그럼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죽음을 더 나쁘게 할까?

아니면 나쁜 죽음을 조금이라도 좋게 할까?


은우 : 음.. 나쁜 거 같아. 


아빠 : 자기는?


엄마 : 나도 나쁜 거 같아.


아빠 :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고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어.

일단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어.

자, 봐봐.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 죽음은 나쁜 건데 그걸 피할 수도 없다니 더 나빠ㅜㅜ"

이럴 수가 있겠지?


유민 : 응.


아빠 : 근데, "죽음은 나쁜 건데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 차라리 맘 편하네."

할 수도 있지 뭐.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일이니까 그냥 맘 편할 수도 있잖아.


은우 : 그러네.


아빠 : 2+2가 4라는 사실에 스트레스받는 사람은 없겠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서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잖아.


은우 : 응.


아빠 : 자, 그럼 보편적으로는 어떨까?

보편적인 게 뭐야?


은우 : 몰라.


아빠 : 음.. 보통사람들이 다 그런 거를 말하는 거.

보편적으로도 죽음의 필연성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어.

먼저 "우리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어..ㅜㅜ" 하고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어차피 나만 죽는 게 아니고 다 죽으니까 그래도 좀 위안이 되네." 할 수도 있겠지?


은우 :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할 거 같아.


아빠 : 응. 그럼 은우한테는 죽음의 필연성이 나쁜 죽음을 조금이나마 좋게 한다는 거야.

죽음에는 필연성 말고 또 다른 성질이 있어.

두 번째는 가변성.


유민 : 가변성?


아빠 : 응. 사람마다 다양하게 죽는다는 거야.

어떤 사람은 오래 살고 어떤 사람은 일찍 죽고 그렇잖아.

사람들이 다양하게 죽는다는 사실이 죽음을 더 나쁘게 만들까?

어때?


은우 : 음... 잘 모르겠는데?


아빠 : 자기는?


엄마 : 음...


아빠 :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죽는다고 했을 때 그게 좋아?

그게 좋으면 죽음의 가변성 때문에 죽음이 더 나쁜 거고.

만약 똑같이 죽는 게 싫으면 죽음의 가변성 때문에 죽음이 조금이나마 좋은 거겠지.


은우 : 나는 똑같이 죽는 건 나쁜 거 같아.

그럼 불공평하잖아.


아빠 : 그래?


은우 : 응. 어떤 사람이 일찍 죽으면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다 일찍 죽어야 되잖아.


아빠 : 음.. 일찍 죽는 게 아니고 평균 나이에 죽는 거면?

어제 평균 이야기했었지?

평균 나이가 80살이라고 하고 우리가 다 80살에 죽으면?


은우 : 그래도 불공평하지.


아빠 : 그래? 근데 도덕적 관점에서는 이게 공평한 거야.

옳다, 그르다의 문제에서는.



은우 : 나는 그게 싫은데?


아빠 : '좋고 싫고'는 개인의 기호의 측면이지.

은우는 그게 싫을 수 있지.

하지만 '옳고 그른' 도덕적 관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나이에 죽는 게 공평한 거지.


은우 : 근데 그럼 더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불공평하잖아.


아빠 : 반대로 아빠, 엄마가 일찍 죽을 거였는데 덕분에 8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하면 좋겠지?


은우 : 그건 그래.


아빠 : 아무튼, 도덕적으로는 공평한 게 좋겠지만 우리는 지금 도덕적 관점을 말하는 게 아니야.

자, 모든 사람이 평균 나이에 죽으면 어떨까?

평균보다 일찍 죽을 거였던 사람은 오래 사니까 좋을 거고, 

평균보다 오래 살 사람이었던 사람들은 일찍 죽으니 싫겠지?

그럼 전체의 합은 어떨까?


은우 : 나쁠 거 같은데..


아빠 : 자, 80살이 평균이라는 이야기는..

80살보다 오래 사는 사람들과 80살보다 적게 사는 사람들이 정확히 똑같다는 거야.

그럼 이 사람들이 좋고, 나쁜 거가 더해지면 어떻지?


은우 : 그럼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지.


아빠 : 그렇지. 그럼 죽음의 가변성은 죽음을 더 나쁘게 하지도, 좋게 하지도 않겠지?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대.

사람은 좀 이상해서 얻는 거보다 잃는걸 더 고통스럽게 여기거든.

예를 들어 은우가 천 원을 얻으면 기쁘겠지?


은우 : 응.


아빠 : 천 원을 잃으면?


은우 : 슬프겠지.


아빠 : 그렇겠지? 

그런데 똑같은 천 원이니까 그때의 기쁨과 슬픔은 똑같은 크기여야겠지?

근데 천 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의 크기보다 천원이 있다가 없어지는 슬픔의 크기가 더 크다는 거야.

마치 오천 원쯤을 잃은 것처럼.


엄마 : 응. 그런 것 같아.


아빠 : 그래서 좋고 나쁘고의 양이 똑같아도 

실제 오래 살 수 있었는데 일찍 죽는 사람들의 슬픔이 더 크니까, 총합을 더하면 나쁘다는 거지.

결국 죽음의 가변성은 죽음을 더 나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은우 : 응.


아빠 : 자, 세 번째는 죽음의 예측 불가능성.

죽음을 예측할 수 있다면 좋을까?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죽음을 더 나쁘게 할까?


유민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빠 : 자, 태어날 때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알려주면 어떨까?


은우 : 그럼 너무 걱정되고 무서울 거 같은데..


아빠 :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몰라서 안 좋은 건..

우리가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

여기서 의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의사 되는 대학에 들어가서 6년을 공부하고 또 대학병원에서 5년을 일하고..

이렇게 의사가 되기 위해 오랜 노력을 하는 건 자기가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해서겠지?

만약 대학 들어가서 2년 뒤에 죽는다고 하면 이렇게 할까?


은우 : 당연히 안 하겠지.


아빠 : 그럼 이 사람은 대학에 안 가고 뭐할까?


은우 : 하고 싶은걸 하겠지.


아빠 : 응. 그러겠지?

자, 여기 있는 그림을 한번 볼까?




시간-행복 그래프.




아빠 : 이건 시간에 따라 행복한 양을 그래프로 그린 거거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땐 행복이 적은데 점점 행복해져서 죽기 전에 최고로 행복했어.

예를 들어 가난하게 태어났다가 성공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죽는 거지.


은우 : 어떻게 죽어?


아빠 : 80살에 사고로 죽었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은 엄청 행복하게 태어났다가 점차 불행해져서 마지막에 제일 불행할 때 죽어.

예를 들어 부잣집에 태어났는데 점차 실패를 겪다가 가난하게 죽는 거지.

둘 중에 어느 게 할래?


은우 : 난 첫 번 째거.


유민 : 유민이도.


은우 : 근데 이건 사고로 죽는데..


아빠 : 두 번째 것도 같은 나이에 같은 사고로 죽어.


은우 : 그럼 첫 번 째거.


아빠 : 자기는?


엄마 : 나도 당연히 첫 번째.


아빠 : 근데.. 이 두 개가 행복의 양은 똑같잖아.

불행했다가 행복해지는 거랑 행복했다가 불행해지는 거랑 순서 차이일 뿐이고..

그렇지?


은우 : 그럼 아빠는 이게 좋아?


아빠 : 아니, 아빠도 당연히 첫 번째 꺼가 좋은데..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은 왜 이걸 좋아할까?


엄마 : 당연한 거 아니야?


은우 : 그러게.. 왜 그러지?


아빠 : 사람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야.

'쉬모스' 보다는 '상실'을 더 크게 느낀다고 했었지?

그리고 지난번 마취 없이 수술해야 되는 상황 기억나?

그때도 깨어났을 때 수술이 돼있길 바랬잖아.

그리고 아까 말했던 좋은 거보다 나쁜걸 크게 느끼는 마음도 있어서 그런 거 같아.

되도록 잃고 싶지는 않은 거지.


은우 : 그렇구나.


아빠 : 이건 아빠의 인생관이랑도 비슷해.

아빠는 인생에서 갑자기 엄청 성공하고 그런 거는 안 하고 싶어.

로또가 되거나 그런 것처럼 갑자기 큰 행운이 생기면 이후에는 내려갈 일만 남잖아.

아빠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상태로 죽을 때까지 이어지면 좋겠어.

중간에 떨어지는 일 없이 쭉~


은우 : 근데 좋은 일이 생긴다고 꼭 그다음에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아빠 :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음.. 이런 거야.

식당에 가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걸 시켜 먹었어.

그럼 엄청 좋겠지? 근데 다음에 그 식당에 갔을 때는 그때의 경험보다 더 좋은 경험은 못하잖아.

그보다 못하거나, 그때만큼의 경험을 하겠지.

아빠는 그래서 항상 더 좋아질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는 뜻이야.


은우 : 응.. 


아빠 : 이건 그냥 아빠의 생각이야.

각자 사는 방법은 다 다른 거니까.

아무튼,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중요한 물음이 생겨.

만약, 언제 죽는지 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예를 들어 1년 뒤에 죽는다고 해봐.

그럼 뭐할 거야?


은우 : 나는 맛있는 거 먹고 여행 다니고..

하고 싶은걸 다할 거야.


엄마 : 나는 여행을 다닐 거야.


유민 : 유민이는.. 무서울 거 같아.


아빠 : 응. 아빠도 6개월은 놀고 6개월은 의미 있는 일을 할거 같은데..

막상 그러면 무서워서 하루하루 공포에 떨 거 같아.

며칠 남았네.. 이러면서.

어떤 TV 프로에서 웃긴 이야기가 나왔는데..


은우 : 실제로?


아빠 : 아니 이야기로.

어떤 환자가 의사한테 갔는데 의사가 "당신의 생명은 2분 남았습니다."라고 한 거야.


유민 : 실제로?


아빠 : 아니, 배우들이 연기한 거야 ^^;;

암튼, 그랬더니 그 환자가 "남은 2분을 정말 뜻깊게 보내야겠어요!"하고 결심하고 나왔거든.

근데 엘리베이터를 눌렀는데 엘리베이터가 1분 30초 뒤에 왔대.


은우 :......?


아빠 : 음.. 그니까.. 뭐냐면..

인생이 2분 남아서 뜻깊게 보내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다 썼다는 게 웃긴 포인트야..ㅡ.ㅡ;

그리고 또, 이번에는 진짜 실화인데.


유민 : 실제야?


아빠 : 응. 실제로.

앞으로 살날이 1년밖에 안 남은 학생이 이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했거든.


은우 : 아니, 어떻게?

어떻게 1년 남은 걸 알아?


아빠 : 아, 불치병에 걸려서..

1년이 딱 남은 게 아니고.

상태가 안 좋아서 오래는 못살아. 

3개월 뒤에 죽을 수도 있고 6개월 뒤에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1년 이상은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야.


은우 : 응.


아빠 : 근데 왜 이 사람은 살 날이 1년밖에 안 남았는데 대학에 와서 수업을 들을까?


은우 :.... 모르겠어.


아빠 : 이 사람은 남은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이 대학을 졸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졸업을 하기 위해 수업을 들은 거지.


엄마 : 대단하다..


아빠 : 근데, 슬프게도 수업을 마치지 못하고 상태가 악화되어서 죽었어.

그래서 교수님이랑 학교 직원들이 이 학생을 졸업시킬지 말지 고민을 했대.

원래대로면 수업을 다 못 마쳤으니 졸업을 못한 거거든.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은우 : 졸업한 걸로 했으면 좋겠어.


아빠 : 근데 그럼 다른 학생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은 수업도 안 들었는데 졸업을 시켜주나요?" 이럴 수도 있잖아.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은우 : 그래도..


아빠 : 그렇지? 불공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빠였어도 졸업을 시켜줬을 거 같아.

아빠 생각에는 불공평하지만 그게 정의로운 거 같아.

정의에 대해서 좀 알겠어, 은우야? 


은우 : 응.


아빠 : 자,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인생을 정말 후회 없이 잘 보내야 할 거야.

남은 시간이 얼만큼인지 알게 되었을 때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할 거라고 하면,

사실 지금도 못할 거는 없겠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니.


은우 : 응. 맞아.


아빠 : 자, 이제 두 개 남았는데..

다음 거는 죽음의 편재성이야.

편재성은 뭐냐면, 죽음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는 거야.

아무리 안전한 곳에서도 사람은 죽을 수 있어.


은우 : 어? 진짜?


아빠 : 그렇지. 두꺼운 쇠로 된 금고 안에 들어가 있어도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죽을 수도 있지.

어떤 사람은 집에서 소파에 앉아서 TV 보다가 그 집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었는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유민 : 실제로?


아빠 : 응.


은우 : 진짜? 그런 여객기 같은 비행기가?


아빠 : 몰라, 전투기였나. 아무튼.

자, 이렇게 죽음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는 게 죽음을 더 나쁘게 만들까?


은우 : 응. 나는 그런 거 같은데.


아빠 : 그렇지? 이런 거 한번 생각해봐.

우리가 항상 죽을 가능성이 있잖아.

근데 만약 이 가능성이 0인 곳이 있다고 해봐.

예를 들어 우리 동네 안에서는 죽을 가능성이 아예 없어.

이러면 어떨까?


은우 : 다들 여기로 오겠지.


아빠 : 그렇지? 그럼 죽을 가능성이 0인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봐.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죽을 가능성이 0인 시간이야.

그럼 그때는 마음 편하고 좋지만 12시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걱정이 되겠지?



은우 : 응.


아빠 : 죽을 가능성이 0이 되는 행동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는 절대 죽지 않는다. 

이러면 어때?


엄마 : 그럼 세상이 엄청 좋아지겠네.


아빠 : 응. 다들 책을 읽겠지?

그렇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죽음의 편재성을 나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리고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가능성이 올라가는 일을 한다는 건 

그 일을 그만큼 가치 있게 여긴다는 거지.


은우 : 그런 게 있어?


아빠 : 예를 들어 스카이 다이빙.

땅에 있으면 안전한데 왜 굳이 하늘에서 뛰어내려서 죽을 위험을 높일까?


은우 : 죽을 수도 있어?


아빠 : 응. 낙하산이 안 펴지면 죽겠지.

실제 그런 사고도 많을 거고.

하늘을 보고 싶으면 비행기 안에서 볼 텐데 왜 굳이 그런 일을 할까?

심지어 그런 직업까지 있잖아.


은우 : 그러게..


아빠 : 어떤 사람들은 죽을 가능성이 있는데 살아남았다는 거에 짜릿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거든.


은우 : 진짜?


아빠 : 은우도 은우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은 재미없잖아.

이길수도 질 수도 있는 게임을 이겨야 재밌지.

그리고 외줄 타기도 땅에서 하는 거보다 약간 높은 데서 하는 게 재밌지?

그런 거야.


은우 : 응. 뭔지 알 거 같아.


아빠 : 근데 이건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

아빠는 엄청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해외여행도 좀 별로거든.

집에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좋은데 굳이 비행기 사고의 위험이 있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서,

그리고 해외는 안전한 나라도 있지만 아닌 나라도 많거든.

그렇게 여행을 하는 게 썩 좋지는 않아.

엄마는 아빠랑은 완전 반대이고.


은우 : 응. 나도 엄마랑 비슷한 거 같아.


아빠 : 맞아. 은우도 아빠랑 다르게 모험을 즐기지.

자, 그럼 편재성은 사람에 따라서 죽음에 좋은 거일 수도 나쁜 거 일수도 있겠다.

마지막은 상호 효과.

삶과 죽음은 항상 세트지?

죽음이 없는 삶은 없고 삶이 없는 죽음도 없지.


은우 : 응.


아빠 : 삶과 죽음의 가치를 더해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하면,

낙관론자들은 죽음이 나쁘지만 삶이 그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서 살 가치가 있다고 해.

비관론자들은 삶이 아무리 좋아도 죽음이 훨씬 나쁜 거라서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게 축복이라고 하고.

중간론자들은 어떤 삶은 가치가 있고 어떤 삶은 가치가 없다고 하지.


은우 : 나는 중간인 거 같아.


아빠 : 아빠도.

근데 이렇게 가치를 그냥 더하는 건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

예를 들어, 유민이 미역국 좋아하지?


유민 : 응. 너무 좋아.


아빠 : 케이크도 좋아하지?


유민 : 응!


아빠 : 그럼 미역국에 케이크를 말아먹으면?


유민 : 윽...


아빠 : 좋은 거 끼리 합쳐도 나쁘게 될 수 있잖아.

반대로 엄마랑 아빠는 어때?

엄마랑 아빠는 1+1=2 가 아니고 1+1=100이 되는 거야.

서로가 있어서 단순히 합쳐진 거보다 더 좋게 되는 거지.

이게 '좋은 상호작용'이고 미역국과 케이크'나쁜 상호작용'이야.

그럼, 삶과 죽음은 어때?


은우 : 좋은 거 같아.



엄마 : 나쁜 거 같아.


아빠 : 이것도 여러 관점이 있어.

어떤 소설에서 온 우주에 모든 생명이 영생하는 이야기가 나와.


유민 : 진짜?


아빠 : 이야기에서.

근데 유일하게 사람만 죽어.

그럼 사람은 다른 생명들을 부러워하겠지?


유민 : 근데 그럼 나무도 죽을 거 같은데.


아빠 : 아니,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해보자.

사람은 영생하는 다른 생명을 부러워하는데 오히려 다른 생명들은 사람을 부러워하거든.

죽을 수 있으니까.

영생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건 지난번에 이야기했었지?


은우 : 응.


아빠 : 이런 경우에 죽음이 있어서 삶이 좋아지는 거니 삶과 죽음은 좋은 상호작용이지.

반대로 안 좋은 상호작용은 이런 거야.

삶이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데 충분히 즐기기도 전에 죽음이 뺏어간다는 거지.

만약에 은우가 식당에 갔어.

엄청 맛있고 좋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데 은우가 한입을 먹자마자 상을 치워버려.

그럼 어때?


은우 : 엄청 슬프지.


아빠 : 그렇지? 차라리 맛도 보여주지 말지.

아쉽게 한입 먹으니까 치워버리다니.


은우 : 그럼 차라리 식당에 안 가는 게 낫지.


아빠 : 맞아. 지금 은우가 말한 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은우야.

실제로 식당에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삶과 죽음이 나쁜 상호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삶을 맛보기로 살아보고

빼앗길 바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은우 : 응. 그럴 거 같아.


아빠 : 자, 지금부터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야.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아, 차라리 태어나지 말걸.."

그럼 어떤 생각이 들까? 

"어차피 사람은 죽을 거고 인생에 가치는 없는데 살아서 뭐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 생각은 어때?


은우 : 잘못된 생각이야.


아빠 : 그렇지? 정말 중요한 거야.

이 생각이 왜 잘못된 걸까?


은우 : 아니, 그러면 더 일찍 죽잖아.

그리고 태어나는 건 자기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건데 일단 태어났으면 오래 살아야지.

그냥 죽으면 더 나쁘지 않을까.


아빠 : 맞아.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죽는 건,

'나쁜' 죽음을 더 앞당기는 거니까 좋을 게 없겠지?

아빠는 너희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건 답이 될 수 없을 거 같아.

알았지?


은우 : 응.


아빠 : 자, 오늘은 여기까지야.

다음 시간에는 핵심 주제야.

우리가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야.


유민 : 이제 몇 개 남았어?


아빠 : 두 개밖에 안 남았어.

마지막 시간에는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거고 그러면 끝.

죽음 강의 끝나고 다음 강의는 좀 쉬운 걸로 준비할게.

유민이도 이해할 수 있는 걸로.


은우 : 어떤 거?


아빠 : 전에 이야기한 거. '지대넓얕' 같은 거.


은우 : 그래.


아빠 : 자, 오늘 수고했어~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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