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달간의 강의가 모두 끝났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강의 프로젝트였는데
은우가 의외로 재밌어하고 생각보다 너무 잘 따라와 줘서 가르치는 나도 재미가 있었다.
은우는 정말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아이다.
강의를 끝내면서 원래는 시험을 보려고 했었다고 농담을 했는데
은우가 시험도 만들어달라고 하도 졸라대서 급하게 구두로 시험문제를 내봤다.
생각보다 많은걸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어서 다시 한번 놀랐다.
<학기말 시험??>
아빠 : 자, 시험 시작한다!
1번 문제!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는 관점에 반대되는 관점으로 인간은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은?
은우 : 일원론!
아빠 : 오!! 정답!
2번,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일상적인 사물과는 다른 이상적인 '원형', '기준'을 가리키는 용어는?
은우 : 음.. 모형?
아빠 : 땡!
은우 : '형'은 맞지?
아빠 : 응.
은우 : 아.. 뭐였지..
엄마 : 형상.
아빠 : 정답!
자, 3번 문제.
나는 왜 나일수 있는가? 내가 나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은우 : 이거 알아. 잠깐만..
아빠 : 십,, 구,, 팔,,
은우 : 아~~ 그렇게 하면 생각 안 난단 말이야..
아빠 : 알았어..
힌트 줄게. "ㅇㅇ"를 밝혀라!
은우 : 정체성!
아빠 : 좋아.
자, 그럼 어떤 물체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상태가 변해.
근데 같은 정체성을 가지면 하나의 고리로 묶을 수 있다고 했지?
이걸 뭐라고 했지?
은우 : 음.. 시간 벌레였나.. 뭐였지..
유민 : 시간 벌레!
아빠 : 땡.
은우 : 그럼 공간 벌레!
아빠 : 합쳐서?
은우 : 시공간 벌레!
아빠 : 정답!
자, 5번째 문제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영혼 관점, 육체 관점, 인격 관점이 있었지?
육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은우 : 뇌!
아빠 : 정답!
자, 뒤에 5문제는 주관식 서술형이야.
은우 : 서술형이 뭐야?
아빠 : 답을 길게 말로 설명해야 하는 거.
은우가 아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야.
자, 6번 문제. 박탈 이론을 설명하세요.
은우 : 어.. 삶을 빼앗기니까 나쁘다.
아빠 : 정답.
좀 살을 붙여서 길게 말하면 좋을 거 같아.
삶은 좋은 건데 죽음으로 삶을 빼앗기니까 죽음이 나쁘다는 이론을 박탈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7번 문제, 영생은 좋은 걸까요?
은우 : 아니요.
아빠 : 왜?
은우 : 영원히 살면 결국 모든 게 지루해지니까.
아빠 : 기억을 지우면 되잖아.
은우 : 그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니까.
아빠 : 정답!
내가 나인 게 정체성이라고 했으니 내 정체성을 잃게 된다는 말이지?
8번 문제!
쾌락주의란 무엇인가요?
은우 : 좋은 거. 근데 너무 쾌락주의만 있어도 안 좋은 거지.
아빠 : 음. 이건 은우가 잘못 이해한 듯.
쾌락주의에 의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 거지?
은우 : 아, 쾌락이 좋고 고통이 나쁘고.
아빠 : 맞아. 삶에 있어 쾌락은 좋은 것이고 고통은 나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쾌락주의지?
9번 문제!
이건 좀 어려울 수 있는데.. 환상적인 가치적 그릇 이론은 무엇인가요?
은우 : 좀 알아듣게 설명해줘.
아빠 : 그릇 이론이 두 가지가 있지?
중립적 그릇 이론은 그릇 자체에는 가치가 없다는 거.
아빠의 관점.
은우 : 그리고 나?
아빠 : 응. 맞아.
또 하나는 가치적 그릇 이론인데 이것도 두 가지가 있어.
온건한 게 있고 환상적인 게 있고.
은우 : 아, 기억나.
그릇이 아주 좋은 거라서 삶이 좋은 거라는 거.
아빠 : 맞아. 환상적 가치적 그릇 이론에서는 삶은 무조건 좋고 죽음은 무조건 나쁘지.
영생은?
은우 : 영생까지 좋은 게 돼버려.
아빠 : 맞아.
자, 이제 마지막 문제.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뭐였지? 두려움? 분노?
은우 : 아니, 감사와 다행.
아빠 : 응. 삶에 대한 감사와 다행이지.
자, 그럼 이렇게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은우 : 행복하게.
아빠 : 그리고?
은우 : 오래오래.
아빠 : 오래오래 행복하게만 살면 될까?
아까 이야기했던 거 뭐였지?
은우 : 뭐였지?
아빠 : 성취.
은우 : 아, 맞다.
아빠 : 성취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은우 : 음. 목표를 잘 고르고
아빠 : 그리고?
은우 :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해.
아빠 : 오케이!
와~ 은우가 엄청 많이 알고 있네..
아빠가 깜짝 놀랐어.
한 80점 정도 줄 수 있겠다.
박수!!
모두 : 짝짝짝~
아빠 : 졸업장 줘야겠네.. 하하..^^
은우 : 아빠, 그럼 졸업장 만들어줘.
아빠 : 알았어..^^;;
결국 급하게 졸업장까지 만들어서 수여했다... ^^;;
<졸업장 수여>
졸업장을 자랑스럽게 방에다가 붙여놓은 은우.
좀 제대로 만들어 줄걸 그랬나...^^;;
그리고 이어진 '종강파티'!!
<종강파티>
종강파티 때는 강의 중에 제대로 다루지 않은 마지막 14장의 이야기를 잠깐 해줬다.
주제는 '자살에 관하여'.
사실 이 부분을 강의하지 않은 건 아이들에게 자칫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지는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실제 강의에서는 특정한 조건에서는 자살이 정당화되기도 한다는 논조인데,
이 부분을 이해시키기도 싫었고, 이해시키는 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식사를 하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함께,
합리적 관점과 도덕적 관점 양측에서 자살은 올바르지 못한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아내 역시 많이 걱정이 되었던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엄마, 아빠가 곁에서 함께하고 지켜줄 거라는 말을 곁들였다.
많이 조심스러운 주제였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것 같다.
<후기>
이로써, 장장 두 달간에 걸친 '죽음이란 무엇인가' 강의가 끝났다.
애초에 나는 이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아예 담을 쌓고 지낸 문외한이라 걱정이 많았다.
주제 자체가 무거웠기에 괜히 잘못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따라왔고,
'죽음'이라는 주제 자체는 무거웠지만 반대로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너무도 뜻깊고 즐거운 시간이어서 앞으로도 강의 프로젝트는 죽~이어갈 생각이다.
p.s.
종강파티가 끝나고 정리를 하던 중.
은우가 갑자기 와서는 한마디 명언을 남기고 간다.
"아빠, 근데.. 내가 생각해 봤는데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지 열심히 노력하는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