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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Feb 07. 2021

'죽음이란 무엇인가' 13강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2021-01-25의 기록.




마지막 수업.




아빠 : 자, 드디어 마지막 시간이네..

사실 하나가 더 남긴 했는데 그건 너희들이 지금 자세하게 알아야 할 주제는 아닌 거 같아서..

나중에 종강 파티할 때 간단하게 말해줄게.

오늘 꺼는 중요한 내용이라서 아빠가 준비를 많이 했어.

(무려 PPT까지 만들었다.. ^^;;)

자, 시작해보자. 

지난 시간에 뭐했지?


모두 :.....


아빠 : 뭐했지? 아빠도 기억 안 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에 대해서 했었지?

죽음을 나쁘게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었지?


은우 : 그 다섯 가지를 다 말해야 해?


아빠 : 아니 ^^;;

자, 필연성, 가변성, 예측 불가능성.. 뭐 이런 것들이 있었고

이런 것들이 죽음을 더 나쁘게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야기했었지?


은우 : 그건 오늘 하기로 한 거 아니야?


아빠 : 맞아.

은우가 잘 알고 있었네. ^^

자, 오늘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야.

우리가 죽음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먼저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죽음에 대한 태도는 세 가지가 있어. 부정, 인정, 무시.

부정은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


은우 : 응.


아빠 : 인정은 죽음에 관한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인정한다는 거야.

죽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정으로 고민해볼 수 있어. 

이따가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마지막으로 '무시'는 죽는 걸 알면서도 그냥 생각 안 하고 무시한다는 거지.

이게 올바른 태도일까?


은우 : 아니.


아빠 : 근데 죽을 거라는 사실을 계속 생각하면 무섭고 우울하잖아.


은우 : 그렇긴 한데.


아빠 : 그래도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죽음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야.

예를 들어 아빠가 은우한테 콜라를 주면서 종이를 하나 줬어.


은우 : 와~ 콜라~


아빠 : 근데 종이를 주면서,

"이 종이에 아빠가 알아낸 콜라에 대한 진실이 있어.

근데.. 이걸 보면 두 번 다시 콜라는 먹지 못할걸?"

이러면 어때?


은우 : 그럼 안 보고 콜라를 마실 거야.


아빠 : 그래?

만약 종이에 '사실 이 콜라에는 독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있을 수도 있잖아.


은우 : 근데 그거 보면 콜라 못 먹잖아..ㅜ


아빠 : 그래. 은우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근데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사실을 무시하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야.

자,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건 동기와 근거가 있거든.

예를 들어 순대를 이야기해볼까?

순대 어떻게 만드는지 알지? 내장으로 만들잖아.

그 내장안에 원래 뭐가 있어?


은우 : 똥. 윽..


아빠 : 그거 생각하면 어때?


은우 : 먹기 싫어져.


아빠 : 그렇지? 그건 일종의 동기야.

깨끗하게 씻고 가공했지만 똥이 있던 거라고 생각해서 먹기 싫을 수 있겠지.

누군가는 그 동기에 의해서 순대를 안 먹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순대를 먹지 말아야 할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잖아?

이렇게 보편적인 행동에 영향을 주려면 근거가 필요해.

예를 들면 순대를 만들 때 독성물질을 쓴다거나 한다는.. 그런 근거가 있으면 어때?


은우 : 안 먹겠지.


아빠 : 그때는 안 먹는 게 맞는 거지. 근거가 있으니.

만약 동기만 있고 근거가 없으면 무시해도 괜찮아.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데 그걸 무시하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야.

그럼 죽음은 우리의 행동을 바꿀만한 동기와 근거가 있을까?


은우 : 음.. 동기는 있는데 근거는 없는 거 같아.


아빠 : 맞아. 은우야.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의 행동을 바꿀 동기가 생기지.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을 바꾸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


은우 : 나는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아빠 : 아빠도 그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삶을 진지할게 생각할 수 있겠지?

근데 그럼 항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까? 매 순간?


은우 : 아니.


아빠 : 그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시간은 언제일까?


은우 : 아침? 저녁?


아빠 :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장소는?


은우 : 우리 집? 마당?


엄마 : 장례식장?


아빠 :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적절한 시간과 장소는

바로 '지금', '이곳'이야.

죽음 강의를 하는 지금 이 공간이지.

우리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적어도 지금만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하는 게 이 강의의 목적이었어.


은우 : 아...


아빠 : 자, 그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

은우는?


은우 : 음..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아빠 : 그럼 삶은?


은우 : 그래서 행복하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


아빠 : 오.. 좋은 말이야.

유민이는?


유민 : 유민이는 죽는 게 박탈 이론 때문에 조금 무서워.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아빠 : 아빠도 그래 유민아.

자기는?


엄마 : 나도 비슷해.

죽음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겠지.


아빠 : 좋은 말이네.

자, 그럼 유민이가 죽음이 무섭다고 했잖아.

아빠도 그렇거든.

근데 죽음은 과연 두려움의 대상일까?


은우 : 아니, 두려울 게 없지.


아빠 : 근데 개인에게는 두려울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아빠한테 비행기처럼.

전에 '합리적'이라는 거 말해줬지?

아빠처럼 비행기가 무서운 사람도 있어.

하지만 이게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감정이 되려면,

그러니까 모두가 인정하려면 그에 합당한 조건이 있어야 해.

예를 들어 '자부심'을 한번 볼까?

자부심의 조건을 뭘까?


은우 : 자존감이랑 비슷한 거야?


아빠 : 응.

자부심의 조건은 성취가 있어야 된다는 거랑, 자신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

예를 들어 아빠가 그냥 숨 쉬는 걸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지.

그건 아빠 마음이니까.


은우 : 하하하.


아빠 : 은우 왜 웃어?


엄마 : 합리적이지 못하니까.


아빠 : 그렇지? 은우가 들어도 이상하잖아.

숨 쉬는 데에는 성취가 없으니까.

근데 아빠가 병에 걸려서 숨을 못 쉬다가 몇 년의 노력 끝에 겨우 숨 쉰 거야.

그럼 어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은우 : 응. 이해돼.


아빠 : 이렇게 합리적이라고 말하려면 조건이 필요하거든.

그럼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조건은 뭘까?

첫 번째로 나쁜 것이어야 하고,

두 번째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세 번째로 가능성이 불확실해야 해.


은우 : 응.


아빠 : 첫 번째로, 나쁜 것이어야지 두려울 수 있겠지?

아빠가 "얘들아 아이스크림 사줄게~"했는데 너희들이

"으.. 아빠 너무 무서워요..ㅜㅜ" 하면 어때?


은우 : 하하하.. 웃겨.


아빠 : 그렇지? 아이스크림은 나쁜 게 아니니까.

그리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야겠지?


은우 : 응.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은 당연히 무섭지 않지.


아빠 : 마지막으로 가능성이 불확실해야 해.

이건 뭐냐면..

100% 일어날 일이면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거야.

예를 들어 주사를 맞을 때..


은우 : 오, 맞아.

예방접종.


아빠 : 응. 무조건 맞아야 한다고 하면 차라리 무섭지 않지.

근데 만약 병원 가서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면 맞고 뒷면이면 안 맞는다고 하면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어.


은우 : 그러네. 

근데 그럼 죽음은...


아빠 : 응. 은우가 지금 궁금한 거에 대한 대답은 이따가 나와. 좀 기다려봐 ^^;;

자, 그럼 죽음은 이 조건을 다 충족할까?

근데 애당초 우리는 죽음의 무엇이 두려운 거지?

죽는 과정의 고통?


은우 :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도 있어?


아빠 : 많지, 사고로 다치거나 병들어서 죽으면.

자, '죽는 과정의 고통'이 두려움의 조건을 충족하는지 볼까?

'죽는 과정의 고통'은 나빠?


은우 : 당연히 나쁘지.


아빠 :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불확실해?


은우 : 응.


아빠 : 그럼 죽는 과정의 고통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당연하지. 아빠도 두렵거든.


엄마 : 엄마도.


아빠 :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두려움이 가능성에 비례해야 합리적이라는 거야.

가능성이 적은 건 덜 무섭고 가능성이 높은 건 더 무서워야겠지.

비행기가 떨어질 가능성이 엄청 낮은데 지금 당장 떨어질 것처럼 무서워하면 비합리적인 거지.

아빠처럼.


은우 : 근데 비행기는 나도 무서워.


아빠 : 응. 아무튼 ^^;;

죽는 과정의 고통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나이가 엄청 많고 병에 걸렸으면 고통스럽게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두렵겠지만,

지금 우리는 아니지?

그래서 우리가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 필요는 없을 거야.

그럼 죽는 과정의 고통 말고 두려운 게 뭐가 있을까?

죽음으로 인한 상실? 이건 어때?

첫 번째 조건, 나쁜 거야?


은우 : 그건 아니지.

죽으면 생각이 아예 없는데 나쁠 수가 없지.

하지만 가족들한테는 나쁜 거지.


아빠 : 맞아. 죽음으로 인한 상실 자체는 우리가 두려울 게 없겠지.

그럼, 삶을 박탈당하는 건?

나쁜 거야?


은우 : 응.


아빠 : 응. 상대적인 나쁨이지만 나쁜 거는 맞지.

그리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근데 불확실한가?

이게 아까 은우가 궁금한 거였지?


은우 : 응. 죽는 건 확실한 건데 왜 무서워?


아빠 : 죽는 건 확실하지만 언제 죽는지는 모르잖아.

만약 아빠가 너희들한테 TV를 보여줬어.

마음껏 보는 대신에 아빠가 그만 보라고 하면 바로 중단해야 해.


은우 : 그럼 마음껏 이 아니잖아.


아빠 : 아빠가 그만 보라고 하기 전까지는 마음껏.

그러면 언제쯤 그만 보라고 할지 신경 쓰이고 무섭겠지?

근데 영화 하나만 보고 끄라고 하면 신경 쓰이지는 않을 거잖아.


은우 :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빠 : 응.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

하지만 이것도 가능성에 비례해야 해.

우리는 아직 죽을 가능성이 낮잖아. 특히 너희는.

예를 들어 TV를 계속 보다가 밤이 되고 깜깜해졌어. 

그럼 '이제 슬슬 끄라고 할거 같은데..' 하면서 슬슬 불안하겠지?

근데 설마 TV를 틀자마자 끄라고 하진 않을 테니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겠지? 


은우 : 아, 그게 우리야?


아빠 : 응. 맞아. 역시 이해가 빠르네.

자 그럼, 우리가 지금 당장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는 건 합리적인 건 아닌 것 같네.

그럼 이런 건 어때?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고 화가 나는 거야.

"난 죽는다는 사실이 화가 나!"


은우 : 맞아. 나도 그래.


아빠 : 자, 화가 나는 감정의 조건은 뭘까?

먼저 어떤 상대방이 있고 그게 나한테 나쁜 걸 해야 해.

그래야 그 사람한테 화를 내지.

그럼 죽음은 어떻지?


은우 : 죽음은 상대방이 없나?


아빠 : 일단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

우리는 아니지만 일단 신을 믿는다고 가정하고,

우리의 죽음을 결정한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첫 번째 조건은 맞지?

근데 신이 우리에게 나쁜 걸 했나?

아빠가 너희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줬어. 두 개, 세 개,,

근데 더 이상 안 줘.

그럼 "아빠! 왜 아이스크림을 더 안 줘요! 화가 나네요!"

이럴 거야?


은우 : 아니.


아빠 : 그럼 아빠한테 뭐라고 할 거야?


은우 : 고맙다고.


아빠 : 맞아. 잘 기억해.

두 번째로 종교가 아닌 과학적 관점으로 보면,

애초에 화를 낼 대상 자체가 없지.

우리는 그냥 원자의 조합으로 생겨나서 살다가 죽는 건데..

자, 커트 보네거트라는 사람이 쓴 '고양이 요람'이란 글에 나온 말이야.


은우 : 신은 진흙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신은 진흙 덩어리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덕과 바다와 하늘과 별,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보라.”

한때 진흙이었던 나는 이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봅니다.

운 좋은 나, 그리고 운 좋은 진흙

진흙인 나는 일어서서 신이 만든 멋진 풍경들을 바라봅니다.


아빠 : 계속 읽어봐.


은우 : 아빠가 읽어줘.


아빠 : 위대한 신이시여!

오직 당신이기에 가능한 일.

결코 나는 할 수 없는 일.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초라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유일한 순간은,

아직 일어나 주변을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한 다른 모든 진흙들을 떠올릴 때.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진흙들 대부분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영광에 감사드릴 뿐.

진흙은 이제 다시 누워 잠을 청합니다.

진흙에게 어떤 기억이 있을까요.

내가 만나봤던, 일어서 돌아다니던 다양한 진흙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내가 만났던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은우 :......


아빠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원자였다가 운이 좋아서 생명을 얻었어.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우리만큼 운이 좋지 않아서 생명을 얻지 못한 원자들이 많지.

우리는 운이 좋아서 이렇게 멋진 삶을 살다가 다시 원자로 돌아가는 거야.


은우 : 응...


아빠 : 자, 그러면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두려움? 분노?


은우 : 아니.

고마움.


아빠 : 맞아. 우리는 감사와 다행의 감정을 가져야 해.

이게 아빠가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

자, 그러면 이 감사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잠깐 쉬었다가 계속하자.


은우 : 여기(PPT에) 휴식이라고 쓰여있네.


아빠 : 응. 중간에 한번 쉬어야 할거 같아서.

지금쯤 너희들이 힘들 거 같아서 여기에 넣었는데 딱인 거 같아.


(귤 까먹고 잠시 휴식..)




처음 도입한 PPT 강의.





아빠 : 자, 다시 해보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화낼게 아니고 삶에 대해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에는 정말 가치 있는 일이 많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그에 비해 우리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기회는 한정되어 있어.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해.


은우 : 사고 나면 안 되니까?


아빠 : 안전에도 신경을 써야 되고.

어떤 삶을 살지 목표를 잘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목표를 잘 못 세우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은우 : 아빠가 택시운전사가 되고 싶었는데 세상에 택시 회사가 다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의사가 되면?

그럼 목표를 잘 못 세운 거지.


아빠 : 그건 아빠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런 거 말고, 의사가 되고 싶어서 십 년 넘게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어.

근데 해보니까 안 맞아서 도저히 못하겠어.

그럼 아빠의 십 년이 넘는 인생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겠지?

이건 목표를 잘 못 선택한 거야.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어. 목표는 잘 세웠어. 

근데 노력을 안 했어.

십 년 넘게 공부를 했는데 열심히 안 해서 결국 의사가 못된 거야.

이것도 결국 실패한 거겠지.


은우 : 아..


아빠 : 근데 인생은 길고 기회는 많아.

무한하지는 않지만 은우랑 유민이는 충분히 시간이 많거든.

그러니까 아빠, 엄마는 너희들이 많은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어.

물론 신중하게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해야겠지.

그리고 엄마, 아빠도 앞으로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할 거야.

자, 근데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


은우 : 부자가 되는 거?


유민 : 유민이는 그냥 지구를 다 사서 내 마음대로 하는 거.


아빠 : 음.. 삶의 전략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

너희들이 말한 목표는 이루기가 어렵지?

노력했다가 결국 안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일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도 있어.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일 하면서.

너희는 그런 게 뭐야?


은우 : 나는 노는 거.


유민 : 유민이는 그림 그리는 거.


엄마 : 모닝스페셜 듣는 거?


아빠 : 근데 사실 신이 원하는걸 다 이뤄준다고 하면 그런 걸 소원 빌 사람은 없겠지?

이루기 어려운 높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만 몰두하는 사람도 있어.

이루기 힘든 목표는 뭐가 있지?


은우 : 아빠랑 노는 거?


아빠 : 음.. ^^;;

그건 아빠가 노력해야 하는 거고..

예를 들어 아빠가 부자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거기에만 몰두해서 

어디 산 같은데 들어가서 십 년 동안 공부만 하는 거야.

가족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그런 삶도 있겠지? 높은 목표에만 집중하는 삶.

어떤 게 좋아 보여?


은우 : 음.. 1번?


아빠 : 근데 3번도 있어.

이루기 힘든 목표에 매진하면서 일상의 삶도 소중히 여기는 거.


은우 : 오. 난 3번.


엄마 : 나도.


유민 : 유민이는 1번.


아빠 : 그래.. ^^;;

유민이한테는 1번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네.

아무튼 너희들도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서 일상의 삶도 소중히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

자, 이거 한번 봐볼까?

이건 '시간-행복' 그래프야.

옆으로는 살아온 시간이고, 위로는 삶의 행복이거든.

왼쪽은 100점짜리 삶을 50년, 오른쪽은 100점짜리 삶을 100년 살았어.

어느거 할래? 1번, 2번?





은우 : 2번.


아빠 : 그런 이건?

100점짜리 삶 50년이랑 130점짜리 삶 50년은?





은우 : 2번.


아빠 : 그렇지? 같은 행복이면 오래 사는 게 좋고, 

똑같은 시간을 사는 거면 행복하는 게 사는 게 좋겠지.

그럼 이건 어때?

100점짜리 삶 50년이랑, 90점짜리 삶 100년.





은우 : 2번.


아빠 : 그렇지?

행복점수가 좀 낮아도 삶의 길이가 두배잖아.

결국 이 네모의 크기가 행복의 총량이랑 똑같은 거야.

자, 그럼 이건 어떨까?

150점짜리 100년이랑, 1점짜리 3만 년!





은우 : 1번이지.


아빠 : 왜? 네모의 크기는 2번이 더 큰데?


은우 : 그래도 1점이잖아.


아빠 : 그래 은우야.

결국 행복의 합계도 중요하지만 성취의 높이도 중요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냐 하는 거.

프리드리히 횔덜린 이란 시인은 '운명의 여신들에게'라는 시에서

자기의 시가 무르익어서 경지에 이르면 잠시나마 신처럼 살아본 거니 

죽어도 소원이 없다고 했대.


은우 : 근데 죽으면 소용이 없잖아.


아빠 : 음.. 예전에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빠가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

아빠는 정체성의 인격 관점이 맞는 거 같은데,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아이들을 통해서 이어지면 그것도 일종의 영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은우 : 응. 기억나.


아빠 : 이것도 비슷해. 이걸 유사 영생이라고 표현했는데,

자신의 성취, 예를 들어 시, 노래, 그림, 책, 작품, 생각, 발견..

이런 것들이 세상에 남으면 그걸 통해 일종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거잖아.

소크라테스는 죽었지만 그의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죽었지만 모나리자는 지금도 남아있지.

이 책을 쓴 교수님도 돌아가셔도 책과 강의가 남겠지?

아빠가 은우한테 강의해준 것처럼 은우가 나중에 애들한테 똑같이 해주면

어쩌면 영원히 남을 수 도 있을 거고.


은우 : 응. 근데 나는 그래도 죽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해.


아빠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아무것도 안 남기는 것보단 낫겠지.

아빠는 이게 엄청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자, 이제 마지막 질문이야.

나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살면서 어떤 걸 이루고 싶어?


은우 : 나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연구해서 하늘을 날고 싶어.


아빠 : 그걸 이룰 수 있다면 아까 그 시인처럼 죽어도 좋아?


은우 :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아빠 : 이건 어려운 질문이야.

그 시인처럼 '한 번은 신들처럼 살아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은우 : 아빠는 그런 게 있어?


아빠 : 아빠, 엄마도 아직은 모르겠어.

사실 부자가 되려는 것도 목표가 아니고 결국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야.

정작 최종적인 목표는 아직 모르겠어.

은우랑 유민이는 당연히 더 모르겠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가치관이 생기고 하면 이런 목표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엄마, 아빠도 앞으로도 계속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할 거야.


은우 : 그래도 죽음이랑 바꿀만한 목표는 없을 거 같아.


아빠 : 아니, 목표를 이루면 죽는다는 게 아니고.. ^^;;

그 정도로 간절한 목표를 말하는 거야.

은우가 더 경험이 쌓이고 성인이 되고 그러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거야.

자, 일단은 강의는 여기까지야.

뒤에 주제가 하나 더 있긴 한데..

좀 애매해서 이따가 종강 파티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걸로 넘어갈게.

다들 고생 많았어^^






p.s. 


은우의 강의 소감 인터뷰 ^^



강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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