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달 네가 엄마 배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10달 주수로는 40주란다. 각각의 한 스텝들을 걸쳐 하나씩 진행되어가지만 입덧의 기간은 10달과 가장 친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가깝단다. 먹지 못한 입덧이든 잘 먹는 입덧이든 먹는 것은 따로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좀 평범한 편인 거 같구나. 20주 정도 되었을 때는 정말 잘 먹었으니 말이다. 어떤 이는 침을 삼키지 못하는 입덧도 있다고 한단다. 그래서 침을 계속 뱉어내는데 그 얼마나 힘들까 싶구나. 입덧이 힘들어 둘째를 낳는 걸 포기한 사람도 많으니 엄마의 입덧은 지극히 평범하니 축복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구나. 평범하기가 가장 힘들고 가장 큰 축복이지 않나 싶다. 현재 우리 모두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20주가 지나자 엄마는 먹방을 찍듯이 그리 잘 먹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많이 먹어서 배가 나와도 배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점이 정말 좋았단다.
먹는 입덧 중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쑥국과 할머니가 만든 김밥이란다.
시골에서 캐온 쑥을 찧어 쑥물을 뺀 후 멸치 육수에 된장을 풀어 진하게 끓인 쑥국을 밥이 든 국그릇에 담아 말았다. 따끈한 쑥국을 한수저 떠 잘 익은 김치를 그위에 올려 먹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구나. 평소에 쑥국보다 보리 국을 좋아했던 엄마였는데 이리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입덧이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임신은 이제 까지 경험하지 못 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세계의 여행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독립을 하여 사회에 나와 타지 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고향에 계신 엄마의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그 먹고 싶던 음식이 더욱더 짙어지고 결국에는 4시간의 시간을 가지고 친정집으로 향하였단다. 자신의 음식이 먹고 싶어 먼 길 온 딸을 그 누가 반기지 않을 수 있겠니.
"엄마, 난 엄마가 해준 김밥이 왜 그렇게 생각 날까? 그게 너무너무 먹고 싶어."
"그 김밥이 뭐라고 그게 먹고 싶다냐. 흔하디 흔한 김밥을"
할머니는 겨우 김밥이냐며 더한 것도 해줄 수 있는데 더 말해 보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할머니의 김밥은 흔하디 흔한 김밥이 아니단다. 요리에 나름 자신 있는 엄마지만 김밥을 여러 번 만들어도 할머니의 김밥을 흉내 낼 수 조차 없었단다. 할머니는 김밥을 만드실 때 2리터 패티병의 참기름을 3분의 1 정도를 사용하신단다. 잘 지어진 밥을 퍼 굵은소금과 참기름을 한가득 부어 밥을 볶는데 하얀던 밥은 연 갈색의 참기름의 옷을 입어 참기름 밥이 된단다. 여기에 참깨까지 넣어주니 얼마나 고소하겠니. 이런 방식을 엄마가 아무리 따라 해도 만져지는 손길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지 그 맛은 나타나 주지를 않더구나.
재료 하나라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양념하고 볶는 걸 반복한 끝에 재료가 완성되었단다. 모든 재료가 준비된 상태에서 김발에 김을 올려 정성스러운 음식을 하나씩 올려 돌돌 말려 김밥은 완성된단다. 단단하게 말린 김밥. 이것 역시 아무리 해도 잘 따라 할 수가 없더구나. 김밥을 썰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김밥 꼬투리. 엄마는 이 김밥 꼬투리를 가장 좋아한단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건 아녔단다. 어릴 적 할머니가 김밥을 싸시면 도시락 통에는 꼬투리를 제외하고 이쁜 김밥들이 들어있는데 4남매의 김밥이다 보니 남게 된 꼬투리가 어마어마했단다. 이 많은 꼬투리를 할아버지 혼자 드시는 모습을 보고 엄마도 꼬투리를 먹게 되었단다. 엄마가 같이 먹어줘야 할아버지가 꼬투리가 아닌 김밥을 드실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이렇게 먹게 된 김밥 꼬투리는 나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되더구나. 꼬투리를 먹고 있을 때면 항상 어릴 적 쟁반 위에 산처럼 쌓인 꼬투리 산이 생각나는구나.
아빠는 엄마를 참 많이 배려하고 사랑해 주는 분이란다. 운전을 할 때 방지턱을 지날 때면 항상 속도를 늦추어 엄마를 불편하지 않게 해 주고 기침을 좀 자주 하는 날에는 이불 세탁을 하고 이밖에도 많은 것들을 엄마 중심으로 생각하여 행동한단다. 입덧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왜 아빠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부분에서도 아빠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먹방을 찍을 듯이 많이 먹고 있을 때쯤 아빠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나 보더구나. 임신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많이 먹을 수는 없단다. 태아가 너무 커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지. 각 주수에 쪄야 하는 키로가 있더구나. 하지만 먹는 걸 적당히 먹기란 참 쉽지 않더구나. 이런 엄마가 걱정되는지 아빠는 엄마가 먹던 음식을 더 빨리 먹더구나. 그럼 엄마가 적게 먹을 거 같아서. 아빠는 엄마와 다르게 식탐이 없단다. 음식에 대한 불만도 투정도 없는 아빠인데 이때는 엄마가 걱정되어서 많이 먹게 되어 살이 쪄버릴 정도였단다. 엄마는 아빠의 이런 배려가 참 좋았단다. 생각하지도 못한 배려였단다. 아, 배려하니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구나. 어느 날 집에서 조그마한 구더기가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어 집안을 다 살펴보고 처리할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열심히 했는데 찾지 못하고 있을 때었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더기의 수는 더 많아지는데 아빠는 엄마가 퇴근해서 이 구더기를 보는 게 걱정되었는지 먼저 와서 치웠단다. 실은 엄마는 구더기를 무서지 하지 않는데 말이다. 엄마는 다리 많은 벌레를 무서워하고 아빠는 다리 없는 벌레를 무서워 자신이 무서워도 엄마를 위해서 먼저 퇴근하여 치워 주는 남자가 아빠 란다. 배려심이 많은 남자를 만나면 행복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말해주고 싶구나.(구더기는 덜 말린 옥수수에서 나온 걸 뒤늦게 발견하여 말끔하게 치웠단다.)
두 편에 걸쳐 입덧 내용을 썼구나. 기간이 길기도 하여 쓰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단다. 그건 후에 너에게 사소한 이런 내용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썼단다.
임신을 한 후 할머니에게 임신했을 때 어땠냐고 물었는데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어떻게 낳았는지 어떻게 키웠는지 바쁜 삶에 기억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여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려 온단다. 요즘이야 임신을 하면 축복하면 배려받는 시대이지만 할머니의 시대에는 그러지 못하였단다. 입덧을 해도 아파도 해야 할 일들을 혼자서 다 해나가는 시대에 어쩜 기억을 못 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바쁜 삶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거슬리수 없기에 기억을 하지 못 할까 하여 별 내용 아닌 글을 적어본다. 사소하지만 너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