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편지를 한 시간 안에 쓰다 보니 고치고 싶은 말들이 많더구나. 퇴근 후 쉬지 않고 집안일을 마무리했는데도 항상 시간에 쫓기여 편지 쓰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단다. 다음 날로 미룰 수 있었지만 미룬다 하여 시간이 충분할 것 같진 않아 차라니 표현이 부족하더라도 편지를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 들어 펜을 들었단다.
인생을 살면서 완벽함은 없는 거 같구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게 인생이고 삶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훗날 네가 커서 완벽하지 못하여 속상해하기보단 부족함을 채워 그걸 성취감으로 순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간사한지 아님 자연 생리 현상인지 간혹 헷갈릴 때가 있구나. 엄마가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입덧을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란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리 잘 먹던(바지락탕을 제외하고) 음식들이 병원에서 임신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몸은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입에 안 맞게 되더구나.
회사에 직장 동료 중 같은 시기에 먼저 임신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한 친구는 한라봉을 못 먹겠다고 남은 한라봉을 회사로 가져온 한라봉을 한입 먹었는데 그리 달콤할 수가 없더구나. 이렇게 달콤한 한라봉이 입으로 넣을 수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입덧을 하고 나서 알 수 있게 되었단다. 경험하지 않는 일에 대해 남을 평가하는 건 삼가야 함을 느껴 본다.
엄마 역시 그리 달콤한 귤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회사 사내 식당 음식 냄새를 맡으면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였는데 먹지 않으면 더 힘들다고 하여 무거운 걸음을 식으로 옮겼단다. 냄새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밥을 한번 뜨면 다 넘어가긴 한단다. 하지만 너를 낳고도 몇 년 동안 그때의 사내 식당 냄새는 머릿속에 남아 발걸음이 후에도 걸음은 가볍지는 않더구나.
결혼 후 음식 재료에 대해 눈을 뜬 엄마는 재료 선정에 상당히 까다로움을 발휘하였단다. 순수의 재료만을 가지고 음식을 하기 원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선함과 제철 그리고 특산품들을 식탁을 꾸몄단다. 남들이 몸에 안 좋은 건 안 먹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릴 적부터 먹었던 라면을 무척 좋아하는데 무려 주 7일 중 5일을 먹을 정도였단다. 물론 라면은 주식보다 간식으로 먹는 케이스였지. 보통 사람들이 엄마처럼 라면을 많이 먹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일반 사람이 라면을 먹는 평균이 한 달에 2~3번 이던가 그리 많이 먹지 않는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주 5일을 먹는 내가 비정상인가? 어떻게 하면 한 달에 라면을 그리 적게 먹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하지만 라면이 기름에 튀긴 음식이니 몸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기에 임신 후 걱정이 되더구나. 과연 안 먹고 잘 참을 수 있을지. 남들은 커피 때문에 고민이라는데 커피를 체질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엄마는 라면이 걱정이더구나. 그래서 주 2회만 먹기로 했단다. 그것도 다 먹지 않고 3분의 1만 먹고 아주 맛없게 먹었단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편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먹고 될 수 있으면 먹지 않게 되더구나. 책임감이란 사람을 이리도 변하게 하는 거 같구나. 절대 있을 수 없을 거 같은 일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엄마를 바꾸더구나. 너에게도 훗날 좋은 책임감만이 따르길 바라본다.
아, 또 다른 음식 변화는 빵이란다. 밀가루를 좋아하지만 주로 동양식으로 좋아했던 엄마가 너를 가지고서 그리 빵이 먹고 싶더구나.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빵집의 빵 냄새가 어쩜 그리 좋게 날 수가 있을까 싶더라. 그래서 한 번씩 사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먹었던 빵 맛을 지금까지 따라 올 빵은 없었단다. 참 신기하지. 전혀 좋아하지 않던 빵인데 그리 맛있게 먹었던 것이.
엄마는 입덧을 심하게 한 기간이 3~4개월 정도였는데 이때가 지나니 슬슬 조금씩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중 하나가 복숭아였단다. 하지만 그 시기는 5월이던가 6월로 복숭아가 아직 나오기 전인데 어쩜 그리고 먹고 싶은지. 없는 복숭아를 어디서 구해 올 수도 없고 참 힘들었단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우스 복숭아가 나온 걸 본 엄마는 하나에 5~6천 원한 복숭아를 3개를 골랐단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이 고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비쌌고 맛이 어떨지 몰라 3개만 골랐단다. 집으로 와서 복숭아를 먹기 전 항상 생각하던 맛과 향을 기대하고 한입 먹었는데... 실망한 기억이 한가득 이더구나. 생긴 것과 향은 복숭아지만 맛은 전혀 복숭아 맛이 아닌 걸 보고 깜짝 놀랐단다. 어쩜 이런 복숭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의 욕심으로 빨리 나온 복숭아는 제대로 자신의 옷을 입지도 못 하고 나온 거 같아 씁쓸했단다. 역시 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본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중학교 때던가 고등학교 때던가 엄마가 좋아했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말이란다. 후에 너도 한번 읽어 보렴. 푹 빠져 들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수필이었단다. 아무튼 사람들의 재촉으로 나왔던 복숭아는 밥이 되지 못하고 설익은 밥처럼 설익은 복숭아가 되어버렸단다.
너의 인생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함이 깃들길 바라본다. 사랑하는 내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