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윤이에게
네가 처음 우리에게 왔음을 느꼈을 때가 11년이 지났어도 엄마는 똑똑히 기억한단다. 너도 태어나서 나이가 들면 알게 되겠지만 세월은 기억을 내 허락 없이 조금씩 야금야금 먹는단다. 필요 없는 기억이든 중요한 기억이든 가리지 않는 거 같구나. 엄마는 이 세월로부터 너와의 첫 만남을 잊지 않기 위해 아주 깊숙한 곳에 간직했기에 잊지 않을 수 있었단다. 그래서 그날만은 똑똑히 기억한단다.
해산물 중 바지락을 그리 좋아했던 엄마는 큰 냄비에 바지락을 1킬로 넘게 넣고 삶았단다.
제철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이기에 1년을 기다렸던 바지락탕을 얼마나 기대했겠니. 살은 바지락 껍데기가 부족할 정도로 차 올랐고 뽀얀 국물은 속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줄 것을 기대하고 먹었던 바지락탕은 상상했던 맛과 정 반대의 맛을 내고 있었단다. 비릿하고 쫄깃한 맛이 아니며 넘어올 것 같은 맛에 상한 바지락을 먹었나 하고 다른 바지락을 들었단다. 하지만 똑같은 맛에 안 좋은 상품을 보내줬나 싶었지만 이리 바지락이 통통한데 어찌 안 좋을 수가 있나 싶었고 같이 먹던 아빠도 2~3번 먹더니 엄마 따라 맛이 이상하다 하고 더 이상 바지락을 손대지 않았단다.
그리고 순간 혹 임신인가? 하는 생각으로 주말에 산부인과를 갔는데 임신이 맞았단다. 초음파로 너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듣는데 어찌나 경이롭고 신기하던지. 몸짓은 아주 작은데 심장 소리가 커서 아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때가 너와 우리의 첫 만남이었단다.
아, 그리고 아빠가 바지락 맛이 이상하다고 한 것은 엄마 따라 입덧을 한 것이란다. 그 후로도 엄마가 이상하다고 하면 잘 먹다가도 엄마 말을 듣는 순간 맛이 이상하다는 아빠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단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처음 너를 느끼기 일주일 전 술자리가 있었는데 막걸리는 좋아하는 엄마가 그날따라 막걸리에 손이 가지 않아 마시지 않는 게 생각나는구나. 어쩜 네가 왔음을 몸은 무의식적으로 알았을까? 아님 너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엄마의 몸은 들었던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잊어버리는 게 많은데 너와의 첫 만남은 이리도 잊지 않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구나.
아빠는 그 후로 회사에서 불합리한 지시에 대해 언쟁을 하지 않게 되었단다.
주변 사람들이 왜 평소와 다른 모습이냐고 선임님 답지 않다 했지만 그만큼 너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거지. 쉽게 숙이지 않는 고개를 너를 위해 숙인 아빠의 마음을 너도 언젠가 아는 날이 오겠지? 아빠의 위대함이란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웃음이 났지만 바로 아빠가 걱정됐단다. 모든 걸 참고 일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리고 엄마는 생각했단다. 아빠의 저 무거운 어깨를 같이 나눌 것을. 너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면 엄마는 일을 좀 더 오래 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위하면서 너를 맞이했단다. 소중한 내 아이야. 그러니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구나. 사랑하는 내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