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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표 족발

결핍이 새겨 준 각인

by mz교사 나른이


연휴를 맞이해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채 마루를 지그시 밟는 순간, 부모님의 반가운 표정에 앞서 코끝에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스쳤다. 아빠가 직접 고기를 손질하시고, 양념을 만드시고, 고기에 양념을 입힌 아빠표 족발이었다.


“아빠가 너 준다고 오늘 아침부터 족발 삶더라.”

엄마는 식탁에 오른팔을 짚고 살며시 기대어 서신 채 못 말린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셨다. 식탁 정중앙에는 갈색과 붉은색 그 사이의 어딘가의 색깔에 표면에 기름기를 한껏 머금은 먹음직스러운 족발이 냄비 가득 놓인 채 나를 유혹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콜라겐이 머금고 있던 지방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보드랍게 혀를 감쌌다. 야들야들한 고기는 육즙을 탐스럽게 머금고 있었고 고기의 감칠맛과 양념의 짭조름함은 조화로움을 넘어서 황홀했다.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 와, 진짜 맛있어.”

‘맛있다’는 단어를 몇 번이고 남발하며 아빠표 족발에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허겁지겁 족발을 뜯어댔다. 때마침 도도한 숙녀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던 해는 오렌지빛 하늘을 뒤로하고 서서히 꺾이려던 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하늘의 색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운을 띄웠을 테다. 오후 내내 새초롬한 물빛을 띠고 있다가도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면 오렌지 색 파스텔을 문질러내는 듯한 모양새가 얼마나 예술적인지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 아무 말 없이 눈으로만 하늘의 색을 감상하며 입으로는 하늘에 대한 찬사 대신 열심히 족발을 뜯어댔다. 아빠는 두 손을 사용해 가며 야무지게 족발을 뜯는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셨다. 반면, 엄마의 표정은 무언가 미묘했다.


“진짜 맛있긴 하지? 식당에서 먹으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직접 만들어 먹으니까 양도 많고.”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버무려진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의 반박이 들어왔다.

“사 먹는 족발이 양이 적으면 얼마나 적다고! 그냥 족발을 넉넉하게 사서 배부르게 먹으면

되지. 족발 직접 만드는 거 수고로우니까 다음엔 그냥 사 먹으세.”

주변 족발집에서 배달이나 포장하면 금방인데. 온종일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족발을 삶던 아빠의 수고로움. 그리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에 족발 냄새가 베이는 것이 아니꼬운 듯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의 풍경은 늘 그래왔다. 무언가 비싸다고 느껴지는 것을 사는 것-특히 완제품을 사서 소비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했던 엄마. 아빠의 입장은 조금 노력을 들이더라도 직접 만들어서 돈을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좋다는 것이었고, 엄마의 입장은 수고로움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깔끔하게 비용을 더 지불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두 분은 여러 가지의 화제와 이유로 투닥거리셨지만 그 표면을 벗겨보면 본질은 언제나 동일했다.


아빠는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 가난의 경험은 한 올 한 올 얽혀 결핍이라는 밧줄을 짜냈고, 오랜 시간 동안 짜인 그 결핍의 밧줄은 쉬이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질겨 지금도 시퍼렇게 잔존한다. 어린 아빠가 성장하는 내내 아빠를 옭아맸던 결핍은 여전히 아빠의 영혼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어른이 되고 중년이 된 아빠는 마트에 갈 때마다 호빵, 새우깡, 바나나, 투게더 아이스크림, 핫도그 같은 것들 앞에서 서성이신다. 어린 시절 먹고 싶었지만 귀해서 사 먹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신 듯하다. 호빵, 새우깡, 바나나, 투게더 아이스크림, 핫도그 같은 간식들을 가끔 사 오시곤 하시는데 당신의 입으로 직접 집어넣는 일은 드물다.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어두고 몇 달이 지나도 거의 드시지 않는다. -그러한 간식의 결말은 대부분 유사하다. 어느 날 배가 출출한 아빠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이 냉장고를 뒤지다가 우연찮게 그 간식을 발견하고 먹어 치우는 것.- 이제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공장형 간식이 아니라 수제 간식이나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디저트를 사 드실 수 있는 여유가 있으시다. 그럼에도 아빠는 늘 새우깡 같은 과자 앞에서만 서성거리시고 그런 간식마저도 아주 가끔 장바구니에 담는다.


아마 아빠가 추억의 간식을 통해 해소하고 싶었던 것은 식욕이 아니라 결핍일 것이다. 먹고 싶었던 것들을 쉬이 계산대에 올려놓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당신의 결핍과 설움. 입맛만 쩝쩝 다시며 진열되어 있던 간식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서서히 옮기던 아이.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마음 깊은 골짜기에서 짧은 검지 손가락을 빨고 있는 그 아이를 달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이런 것들을 실컷 먹을 수 있노라 안심시키고 싶었으리라.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에 등장하는 엄마처럼 아빠도 결핍이라는 말뚝에 메인 걸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속 깊숙이 자리한 그 말뚝은 시뻘겋게 녹슬었음에도 허술해 보이기는커녕 시뻘건 녹마저 핏대 선 앙칼진 눈매 같으리라. 옹골진 그 말뚝은 세월의 흐름만큼 나무껍질처럼 겹겹이 쌓여 더 두꺼워지고 뿌리를 내려 더 단단해졌으리라. 아빠는 여전히 가난을 염려한다. 두려워한다.


아빠의 마음속에는 체가 있다. 식료품 같은 필수품에 대한 소비는 아빠의 체에 걸러져 손쉽게 통과되지만 필수품이 아닌 것들은 아빠 마음의 촘촘한 체에 붙잡혀 도무지 통과되지 않는다. 아빠는 필수품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에는 흔쾌히 지불하신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의 교육비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유, 과일, 야채, 고기 같은 식품들도 흔쾌히 장바구니에 담으신다. 그러나 아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에는 급격히 인색해지신다. 보쌈이나 족발-고기를 정육점에서 사 와 만들면 훨씬 저렴한데 굳이 완제품을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브랜드 옷이나 신발, 여행 같은 것들에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신다.


아빠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떠한 형태로 마음 한편에 남아있을까. 일 년 중 두 번, 명절에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모처럼 들어온 고기에 소화기관이 적응하지 못해 명절이 끝나고 꼭 탈이 났다던 아이. 평소엔 반찬이 김 한 장뿐이었다던 아이. 대학 전공 서적비용을 아껴보고자 형과 똑같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한 청년으로 자랐던 아이.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쉽사리 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그 아이를 외면하고 지우고 싶을까. 모순적이게도 아빠는 과거를 아파하면서도 그리워하고 애달파하신다.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있는 OTT 플랫폼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만 몇 번이고 돌려 보신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신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동네를 어울렸던 추억을 외울 정도로 이야기하신다. 배고프고 부족했던 과거마저도 그리운 추억으로 변신시키고야 마는 그 보정 값은 또 얼마나 강한 것인가.


당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감히 당신의 삶과 가치관에 왈가왈부할 수 있으랴. 당신의 노력과 수고로 모자람 없이 성장했기에, 뼛속 깊이 새겨진 당신의 결핍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고, 때론 비싼 옷들을 예쁘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때론 값비싼 수제 디저트를 마트 과자보다 약간 더 맛있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들고 나오는 나는 아마 평생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만들어 놓은 사랑이 듬뿍 묻어있는 족발을 맛있게 뜯으며 찬사를 보내는 것밖에.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옛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놓는 당신의 실 끝을 살그머니 잡아 추억의 가장자리에 발을 담가보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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