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로 돌아온 글래디 일행은 코뿔소들을 불러 모았다. 팔콘은 숫자를 세어 빠진 코뿔소가 없는지 확인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을 눈치챈 와콤은 무리의 가장자리 주변에 가장 편한 나무 밑동을 차지하고 엎드렸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글래디는 심호흡 한 번으로 가뿐 숨을 정리했다.
"먼저 무리 주변은 이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 서식지 쪽에 인간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코뿔소들은 '인간'이라는 단어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레니와 게이드가 보고 왔다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아이들이 믿음이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본 것이 인간이 아니길 바라서였다. 수근 거림을 잠재우기 위해 글래디는 말을 이었다.
"코끼리 두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코 뿔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두 마리 모두. 한 마리는 체구가 작은 새끼 코끼리였는데 그 마저도 뿔은 없었습니다."
코뿔소들은 더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초원에도 법칙은 있었다. 새끼는 되도록 건드리지 말 것. 어미가 잡혔다면 굳이 새끼까지 사냥할 이유는 초원에 없었다. 그것은 초원 외부의 존재, 인간을 의미했다.
"죽은 코끼리의 상태를 볼 때, 얼마 되지 않았보였고, 게이드가 봤던 것이 그 죽은 코끼리의 뿔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은 인간이 맞고, 그들의 패악질이 다시 시작된 것 같습니다. "
글래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특히 '패악질'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말을 이었다. 글래디는 감정이 주체가 안 됐다. 초원에서 자라온 글래디는 도저히 인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래디가 느낀 감정을 어른 코뿔소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와 욕설이 들렸다. 어떤 코뿔소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와콤영감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에 대해 알려주실 게 있지 않을까요?"
글래디의 말에 코뿔소들은 일제히 와콤영감을 바라봤다. 와콤이 앞으로 나와 글래디의 옆에 섰고, 말을 이었다.
"나도 시간이 오래 지나 인간에 대한 기억이 그리 또렷하지는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강합니다. 그들의 가장 강한 뼈는 우리의 뿔보다도 약하고, 그들의 크기는 새끼 코뿔소보다도 작고 가볍습니다. 빠르지도 않고, 큰 소리도 낼 수 없는 그들이 강한 이유는 그들이 가진 끔찍한 무기와 그보다 더 끔찍한 잔혹성 때문입니다."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코바영감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먼저 그들이 가진 무기는 총이라는 것입니다.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며 작은 돌멩이를 던집니다. 크기는 작지만 그 돌멩이 하나가 바위를 부실 수도 있고 작은 나무는 가뿐하게 뚫고 지나갑니다. 위력으로 친다면 어른 코뿔소의 '쾅'과 같지만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천둥소리가 들리면 돌멩이가 날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고 그저 박혀있는 것만 보입니다. 인간은 또 트럭이라는 것을 타고 이동합니다. 레니가 보고 왔다는 그것인데 코끼리 만한 덩치에 사자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립니다."
좌중이 아까보다 더 크게 웅성거린다. 코바영감은 다음 말을 준비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다.
"크흠. 인간이 무서운 존재라는 것은 총과 트럭이 아니에요. 잔혹성에 있죠. 인간은 그저 악마라는 말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동물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잡아 가두고 그들의 구경거리로 쓸 때도 있습니다. 언제는 우리를 잡아 죽여 뿔을 가져가고, 언제는 그런 우리를 데려가 치료를 해주고... 언제는 그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이 초원의 섭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원하지도 않고, 내장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풀을 뜯을 땅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인간들은 그저 공격을 할 뿐이죠. 그들은 코뿔소도 잡고, 코끼리도 잡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내버려 둔 채 뿔만 잘라갑니다. 이 초원의 어떤 동물이라도 그들에겐 사냥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기 때문이죠."
좌중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는다.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났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강하고 잔혹할 뿐이라는 말은 두려움의 늪과 절망의 늪 중에서 빠질 늪을 고를 수 있을 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래도 싸워야죠.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코뿔소는 강하다고.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고 사자의 심장도 터뜨릴 수 있다고 했어요."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어른들이 불편했던 레니가 소리친다. 좌중의 시선이 레니를 향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린 코뿔소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헛 된 희망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다들 느끼고 있다. 글래디가 레니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잇는다.
"일단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심하는 것뿐입니다. 되도록 무리를 이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풀을 뜯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무리를 벗어나지 않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무리의 끝은 항상 팔콘, 메이디, 아렌, 와콤 이 넷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밖으로는 그 어떤 코뿔소도 이탈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저녁에 쉬는 것도 돌아가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것에서 경계를 늦춰선 안됩니다. 인간의 흔적이 아직 주변에는 없지만 최대한 주의를 살피도록 하는 것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
글래디는 평소와는 달리 많은 말을 했다. 그것은 이 상황에 글래디도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였고, 그럼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든 개선하고자 하는 우두머리로서의 책임감이었다.
<5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