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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9. 2024

오직 인간만이 뿔을 가져간다.

글래디는 팔콘, 메이디, 아렌, 와콤 네 코뿔소를 이끌고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늘 있던 풀과 나무, 그리고 모래가 전부였다. 이상한 것을 굳이 꼽자면 오늘따라 조용한 초원이었다.


"별다른 것은 없는데. 그만 돌아갈까?"


진흙목욕 중에 끌려온 와콤이 귀찮은 듯 말했다.


"글쎄 그래도 인간이 모습을 보였다니 좀 더 둘러보기로 하지. 그리고 코끼리 서식지 쪽도 가봐야 해. 코바영감이 그쪽도 살펴보는 게 좋다고 했어."


 와콤의 말을 글래디가 받았다. 와콤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와콤은 늘 그래왔으니까. 와콤은 무리의 일보다는 항상 개인의 일과를 우선했다. 먹이를 먹는 것도 가장 나중까지 먹었고, 물놀이를 하는 것도 가장 마지막까지 했다. 무리의 안전을 위해 단체로 행동해야 할 때 와콤은 늘 규칙의 경계선까지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규칙을 지키되 가장 지키지 않는 방향으로.


"인간이 이 초원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겠어? 여긴 맹수들도 있다고, 여긴 인간들의 서식지와는 너무 멀다는 거 알잖아. 아이들이 잘못 본거겠지 지나가는 것을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아이들은 인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확인을 하는 거잖아. 아이들이 본 것이 확실하게 인간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지니까. 내키지 않는다면 돌아가도 좋아. 가서 아이들이랑 진흙목욕이나 하고 있어 그 편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말이야."


 글래디는 비야냥 거리며 대꾸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말이었지만 인간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와콤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것을 느낀 와콤은 대꾸하지 않았다. 글래디의 경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끼리 서식지 쪽으로 가보자."


  다섯 마리의 코뿔소는 코끼리 서식지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글래디, 저기 뭐가 있다!"


앞서가던 팔콘이 소리치며 코로 정면을 가리켰다.


"코끼리들이 모여있어. 무슨 일이지?"


 글래디가 말했다. 코끼리들이 뭉쳐있는 경우는 드문 경우였다. 글래디는 빠른 속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머지 네 마리 코끼리들도 글래디의 뒤를 따랐다. 윤곽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코끼리들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코끼리들은 코뿔소를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눈에 보일만큼 경계를 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경계하고 있어.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서 상황을 보고 올 테니 나머지는 여기서 기다려."


더 이상 코끼리들을 자극시켜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글래디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그러지. 조심해"


와콤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나머지 코뿔소는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글래디 혼자만 코끼리 무리에 다가갔다. 코끼리들의 경계는 여전했지만 천천히 다가서는 글래디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몇몇 코끼리의 몸에 깊지 않지만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변으로 피 웅덩이가 고여있었다.


"세상에!!"


 글래디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코끼리 무리가 흠칫 놀라 글래디를 쳐다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코끼리 무리의 가운데에 두 마리의 코끼리가 누워있었다. 피 웅덩이의 주인공은 두 코끼리였다. 덩치로 보아 엄마와 새끼였다. 마치 애도라도 하듯 다른 코끼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죽은 코끼리들에겐 뿔이 없었다. 뿔이 있던 자리에 깊게 파인 자국에 들러붙은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인간의 짓이었다. 이 초원에서 코끼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사자뿐이다. 사자도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서 덤벼야 한다. 하지만 사자는 뿔을 먹지 않는다. 하이에도, 독수리도 뿔을 먹지는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뿔을 가져간다.


 글래디는 상황을 파악했으니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글래디의 몸이 떨렸다. 무섭거나 슬픈 것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 초원에서는 약하면 잡아 먹히는 것이 섭리였다. 약한 동물은 강한 동물의 식량이 되는 것, 안타깝지만 그것이 초원의 법칙이었다. 그래야 초원은 유지가 된다. 그것이 화가 나지는 않았다. 코끼리는 강했지만 인간은 더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코끼리는 잡혔다. 하지만 식량이 되지는 않았다. 초원의 섭리와는 무관한 죽음이었다.


 글래디는 화를 가라앉혔다. 돌아가야 했다. 무리로 돌아가 다른 코뿔소들에게 이 상황을 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대책이 있을지 모르지만, 코바영감이라면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 뭔가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래디는 나머지 네 마리 코뿔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코끼리들은 왜 모여 있던 거야?"


팔콘이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글래디를 재촉했다.


"일단 무리로 돌아가자. 가서 모두가 있을 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글래디가 팔콘의 질문을 끊고 말했다. 팔콘은 더 묻고 싶었지만 굳은 글래디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단호함 앞에 더 묻기를 포기했다. 팔콘은 글래디의 표정을 예전에 한번 본 기억이 났다. 사자들이 무리를 습격한 날.


다섯 코뿔소는 무리가 있는 곳까지 쉬지않고 달렸다. 앞서 달리는 글래디가 무언가에 쫒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네 코뿔소는 별다른 말 없이 글래디의 뒤를 쫒았다.


<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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