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단발의 총성이 하늘을 찢었다. 총성에 놀란 새들이 날아올랐다. 풀을 뜯고 있던 코뿔소 무리는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글래디 쪽을 쳐다봤다. 글래디는 총성이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트럭이 일으킨 먼저 구름이 글래디의 눈에 들어왔다.
'탕탕! 탕! 탕!'
조금 더 가까이서 더 많은 총성이 들렸다. 글래디는 외쳤다.
"모두 반대 방향으로 달려! 와콤, 알렌은 나랑 무리의 뒤를 맡고 뒤쳐진 코뿔소를 챙긴다. 팔콘, 메이디 앞에서 무리를 이끌어줘. 숲 쪽으로 가야 인간들을 피할 수 있을 거야."
팔콘과 메이디는 글래디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달렸다. 숲으로. 숲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몸은 피하고 숨을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른 코뿔소들이 팔콘과 메이디 뒤를 따라 달렸다. 어린 코뿔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어미 코뿔소들이 챙겼다. 늙은 코뿔소들은 최대한 달렸다. 그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가장 나이가 많은 코바영감이 뒤로 처졌다.
"와콤 다른 코뿔소들을 챙겨서 달려! 코바영감은 내가 챙길게"
와콤은 별다른 대꾸도 않은 채 코바영감을 제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코바 영감을 제외한 후미의 무리들을 향해 외쳤다.
"속도를 내! 바로 뒤까지 쫓아왔어! 그렇게 굼뜨게 움직였다간 당하고 말 거야! 꼬랑지에 사자가 붙었다고 생각하라고. "
와콤의 소리에 코뿔소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속도를 올렸다.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했다. 글래디는 코바영감의 옆으로 붙었다.
"코바영감 내가 앞으로 달리면서 바람을 가를 테니 내 뒤에 붙어 더 빨리 뛰세요."
'부아아앙!! 탕! 탕!'
총성이 더 가까이서 들렸다. 지척까지 온 듯한 소리였다. 속도를 더 올려야 했다.
"글래디, 난 괜찮으니 더 빨리 달아나게. "
글래디는 못 들은 척했다. 대꾸를 할 시간에 더 빨리 뛰는 것을 택했다. 뒤를 돌아본 글래디의 눈에 트럭이 들어왔다.
"이제 지척이군. 코바영감 앞만 보고 달려요."
글래디는 옆으로 비껴 나 앞의 바위 뒤 쪽으로 몸을 숨겼다. 트럭이 일으킨 먼지로 인해 인간들은 글래디를 놓쳤다. 애초부터 가장 뒤에 달리고 있던 코바영감만을 노리고 있어을 가능성이 컸다.
'탕! 탕! 탕!'
세 번의 총성이 이어졌다. 한 발이 코바영감 오른쪽 뒷다리를 스쳤다. 박히진 않았지만 꽤 상처가 깊었다. 코바영감은 얼마 달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트럭이 정지하고 밀렵꾼 하나가 트럭에서 내려 총구를 코바영감에게 향한 채 다가갔다. 코바영감의 가쁜 숨 사이로 고통에 찬 신음이 섞여 나왔다. 코바영감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밀렵꾼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퍽!'
순간 글래디가 밀렵꾼에게 달려들었다. 글래디의 코뿔에 밀렵꾼이 들이 받혔다. 밀렵꾼은 짧은 신음과 함께 5미터 정도를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트럭에서 또 다른 밀렵꾼 하나가 총을 들고 나와 글레디를 향해 쐈다. 총알이 글래디의 왼쪽 귀를 스쳤다. 글래디는 순간 중심을 잃어 비틀거렸다. 총을 쐈던 밀렵꾼은 다시 재 조준을 했다. 글래디는 중심을 잡고 밀렵꾼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밀렵꾼은 글래디가 달려들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탕!'
총성과 동시에 바위 뒤에서 코뿔소 하나가 튀어나와 밀렵꾼을 덮쳤다. 밀렵군이 쏜 총은 허공을 갈랐다. 와콤의 뿔에 들이 받힌 밀렵꾼은 충격에 날아가 차에 박혔다. 트럭의 운전석에 있던 밀렵꾼은 빠져나가려 했다 와콤이 한 번 더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와콤의 육중한 몸이 날아올랐다가 트럭의 오른쪽 문짝에 부딪쳤다. 충격으로 트럭의 오른쪽 부분이 들렸다 떨어졌다. 오른쪽 문은 움푹 찌그러져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와콤은 물러나서 다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트럭의 밀렵꾼은 핸들을 최대한 좌측으로 꺾고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최대한 줬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트럭은 굉음을 내며 튀어나갔다. 와콤은 멈춰 섰다. 부딪쳤다간 다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와콤은 경계를 감각적으로 느꼈다. 트럭은 굉음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와콤은 계속해서 그 트럭을 주시했다. 트럭이 일으킨 모래 먼저 마저도 시야에서 살아질 때까지. 글래디는 코바영감에게로 갔다. 코바영감의 상태는 심각했다.
"괜찮으십니까 코바영감님."
"괜찮을 리가 있겠나. "
코바영감은 겨우 숨을 내쉬면서 간신히 말을 이었다.
"걸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부축을 할 테니 돌아가시죠."
"됐네. 여기가 내가 초원이 될 자리네 ."
코뿔소에게 초원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죽은 후에 코뿔소의 시체는 썩어 풀과 나무들의 거름이 된다. 그 거름으로 자란 풀을 또 다른 코뿔 소이 뜯는다. 그렇게 초원은 계속해 유지된다는 것이 코뿔소들의 생각이었다. 와콤 영감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초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래디는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와콤영감을 딱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지막 모습이 코뿔이 잘린 망측한 모습이 아니어서 다행이군. 자네에게 고맙네. 와콤 자네에게도."
글래디와 와콤은 별다른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대답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돌아들가게. 코뿔소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늙으니 코뿔소의 명예를 지켜주게."
코뿔소들은 다른 코뿔소의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지키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 가장 슬픈 눈을, 가장 처량한 모습을 다른 코뿔소에게 보이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체가 썩어 독수리와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겨지는 모습도 최대한 보지 않기 위해 코뿔소들은 죽은 코뿔소 근처를 한 동안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초원을 가르는 멋진 모습이거나. 나무를 들이받아 꺾어버리는 강인한 모습, 사자와 맞서는 용맹한 모습이어야 했다. 그것이 코뿔소들이 초원으로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글래디, 무리로 돌아가자."
와콤이 말했다. 와콤의 말투는 평소와는 달랐다. 항상 본인의 생각을 얘기했던 와콤이지만 이 순간 코바영감의 의중을 대신 얘기해 주는 듯했다. 글래디는 별말 없이 코바영감에게서 시선을 떼어 하늘을 쳐다봤다. 글래디는 분노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여기서 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글래디는 우두머리였다. 코뿔소 무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물론 지금까지 맹수들로부터 지켜내지 못한 코뿔소들도 있다. 모든 구성원을 지켜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초원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약육강식, 그 섭리에 의해 약한 동물들이 강한 동물의 식량이 되어주면서 초원은 유지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뜯을 수 있는 풀과 마실 수 있는 물을 제공하는 대가였다. 하지만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의해 동족을 지키지 못했다. 인간들은 이 초원의 섭리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있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코뿔소들을 위협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를 더 분노하게 했다. 글래디는 달리기 시작했다. 코바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듯이 계속해서 달렸다. 와콤은 코바염감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 글래디의 뒤를 따라 달렸다.
<6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