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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22. 2024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은 없어.

 인간들의 위협은 점점 코뿔소들을 덮치고 있었다. 코바영감 뒤에도 인간들의 습격은 두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무리의 구성원을 잃었다. 글래디는 무리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리 내에 안전을 위해서 엄격한 규율을 갖춰야 했다. 풀을 뜯을 수 있는 때를 정하고, 낮잠을 자고, 물을 마실 수 있는 때도 정해야 했다. 활동을 할 수 반경도 정해야 했다. 그래도 100%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글래디는 코뿔소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했다.


"이제부터는 정해진 때에만 풀을 뜯을 수 있습니다.  해가 뜨는 무렵,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을 무렵, 그리고 해가 지는 무렵에만 풀을 뜯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풀을 뜯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낮잠을 잘 때도 모두가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시야를 벗어나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코뿔소들은 당황했다. 이런 규칙은 있던 적이 없었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자는 것은 그냥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가 있어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에 해야 하는 때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감지한 와콤이 가장 먼저 물었다.


 "행동의 반경을 축소하고, 언제든 도망칠 때를 대비해 모여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왜 풀을 뜯는 때를 정해야 한다는 거지?"


글래디가 답했다.


"그 외에는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야. 물론 그 시간에도 경계를 하겠지만 우리가 풀을 뜯고,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덜 경계를 하게 되겠지. 그 덜 경계를 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해."


알렌이 뒤를 이어 물었다.


"그건 알겠는데 우린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 그런 것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래디가 답했다.


"우리에게 시간은 없어. 인간들은 우리 바로 코 앞까지 와 있다고. 심지어 우리는 세 번이나 습격을 받았고, 그때마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은 없어.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우리는 한 마리도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글래디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수긍이라기보다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엄한 곳에 콧바람을 휑 불고는 편한 나무 밑동을 찾아가 배를 깔고 엎어졌다. 나머지 코뿔소들도 흩어졌다. 레니와 게이드는 주변을 맴돌다 다른 코뿔소가 없는 그늘을 찾아 엎어졌다.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레니가 말했다.


"며칠째야, '쾅' 연습을 못한 게. 이러다간 실력이 줄어들겠다고."


게이드가 말했다.


"정말 다행인 건 너에게 줄어들 실력이 별로 없다눙. "


레니가 익숙하다는 듯 받아넘겼다.


"모르던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 친구녀석아. 그뿐이야? 초원 가르기를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그건, 기억력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눙. 우리의 마지막 초원 가르기는 우리가 인간을 발견했을때였다눙. 물론 그 인간들에게 쫓길 때 원 없이 달렸지만"


"내가 정말 기억이 안 난다는 게 아니잖아. 게이드! 그리고 인간들에게 쫓기는 건 안 좋은 경험이었어. 쫓길 때 달리는 건 정말 싫어. 정신없고, 누가 다치진 않을까 걱정되고, 신경이 쓰여서 고뿔에 바람이 갈라지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냥 숨만차고, 힘들 뿐이야."


"맞다눙. 인간들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 예전의 초원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인간들은 왜 초원에 들어와 우리를 사냥하는 걸까? 먹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뿔만 잘라가는 게 이해되지 않아. "


"맞다눙. 코바영감님이라도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코바영감님도 저번에 그랬잖아.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동안 두 코뿔소는 말이 없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득한 구름이 노을이 모습을 채 숨기기도 전에 사위를 어둡게 만들었다. 금세 주변이 깜깜해졌다. 레니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생각. 그들은 이곳에 왜 온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뿐일까? 왜 뿔을 가져갈까? 뿔을 어디로 가져가는 것일까. 생각을 마친 레니가 말했다.


"게이드, 우리가 확인해 보자."


게이드가 알아듣지 못했는지 다시 물었다.


"뭐를? 뭘 확인해?"


"우리가 확인해 보자고. 인간들 말이야. 왜 뿔을 가져가는지, 이 초원에 나타난 이유가 뭔지 "


"레니 그 농담은 웃기지 않다눙. 아빠가 아까 하는 얘기 못 들었어? 우리는 이제 다 같이 움직여야한다눙. 무리

에서 이탈을 해서는 안된다눙."


"농담 아냐, 밤에 몰래 나가이지. 다들 잘 때 몰래 나가서 슬쩍 보고 오자. 저번에 그 강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면 충분히 살펴보고 와도 해가 뜨지 않을 거야."


"뭐? 몰래? 어떻게? 삼촌들이 돌아가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 들키면 혼날 거라눙"


"삼촌들이 경계를 하는 건 무리 밖이야 무리 밖을 신경 쓰느라고 우리가 움직이는 건 모를 수 있어. 대신 우리가 조심히 움직인다면 안될 일도 아니지."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나눙. 레니 무리 밖은 진짜 위험하다눙! 인간들에게 쫓겨서 알잖아. 그들이 타고 있는 트럭이 얼마나 빠른지, 그들이 갖고 있는 총이 얼마나 무서운지."


"게이드! 넌 자존심 상하지도 않아? 우린 인간들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다고, 근데 그들은 우리를 못 살게 굴고 있어. 우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피해 다니기만 하고 있다고. "


"그래도 안돼. 너무 위험해."


"몰래 움직이면 돼. 그들은 밤에 나타난 적이 없잖아. 분명 그들도 밤에는 움직이는 건 힘들 거야. 그리고 지금까진 무리가 움직였으니까 눈에 잘 띄었을 거야 우리 둘만 움직인다면 안 들킬 수 있어."


"몰라, 난 안 갈 거라눙. 가려면 너 혼자가"


"정말? 나 혼자가도 돼? "


"당연히 안된다눙! 나도 안되고 너도 안된다눙! 너무 위험하다눙!"


"난 갈 거야. 넌 너 알아서 해."


 게이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를 말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레니는 말리면 말릴수록 더 어긋날 것이었다. 그는 레이드를 잘 알았다. 결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게이드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니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들키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인간들이 두렵긴 했지만 두렵다고 계속 피해 다니는 건 코뿔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글래디는 요즘 너무 예민해졌다. 다른 코뿔소들을 대하는 태도도 냉정해졌고, 특유의 차분함과는 거리가 있을 정도로 작은 일에도 흥분했다. 게이드는 걱정됐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빨리 초원을 떠나길 바라는 수밖에. 근데 레니를 따라가 인간들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얻을 수 있다면 아빠의 걱정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의 모습으로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7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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