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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8. 2024

코뿔소 무리의 자긍심

 레니와 게이드는 바위 뒤에 숨어 계속 '저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들은 무언가를 분주하게 나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시로 엄청 큰 덩치의 네모난 동물뒤에 그것들을 싣고, 동물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돌아왔고, 그 안에서 다른 것들을 내려놓았다. 네모난 동물은 아주 크고, 빠르고, 우렁찬 소리를 냈다. 레니와 게이드는 그렇게 큰 것을 코끼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코끼리가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게 좋겠다눙. 곧 해가 질 거라눙."


 게이드가 얘기했다. 레니는 반응이 없이 계속 '저 것들'만 주시하고 있었다. 게이드는 무언가에 몰두하면 대화가 안 되는 레니를 향해 콧김을 내뿜었다. 레니에게는 레니가 듣는 말로 해줘야 했다. 


"근데 좀 놀랍다눙 저 커다란 동물, 저렇게 빠르고 크고, 소리도 우렁찬 동물은 처음 봤다눙. 얼른 가서 삼촌들한테 자랑하고 싶다눙. 삼촌들이 모두 놀라 자빠질 거라눙. 내가 먼저 가서 말할 테니까 너는 좀 지켜보다가 와."

"어? 뭘 한다고?"


레니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비쳤다. 그리고 게이드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게이드의 말이 먹힌 모양이다.


"네가 가서 말한다고? 나도! 나도 가서 얘기할 거야. 저 커다랗고 네모난 동물, 그리고 인간들이 여기 있다는 거 말이야. 우리처럼 어린 코뿔소 중에 인간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코뿔소는 없을 거야 그렇지?"

"아니, 넌 더 보고 싶을 거라눙. 내가 가서 말을 할게 넌 좀 더 지켜보다 오라눙."

"아니! 같이 돌아가자, 나도 돌아가자고 말하려고 했어."

"아! 그래 그럼 얼른 돌아가자눙"


게이드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게이드는 레니를 잘 알았다. 마을로 돌아가 여기서 본 것을 누구보다 호기롭게 자랑하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을. 레니와 게이드는 서둘러 마을을 향해 달렸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다 말하는 거야!"


레니는 신나서 달렸다. 게이드도 뒤를 따랐다. 사실 게이드는 여기서 본 것을 자랑하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마을 입구에 지나자마자 레니는 큰 소리를 내며 코뿔소들을 모았다. 


"다들 내가 어떤 걸 보고 왔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모여봐요! 강가 주변에 인간들이 모여 있어요!! "


 코뿔소들은 '인간'이라는 단어에 수군거리며 모여들었다. 때마침 게이드도 마을 입구를 들어서고 있었다. 레니가 일으킨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리느라 먼 자가 몸 전체를 뒤덮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들어와 레니 옆에 드러누웠다. 신나서 달려온 레니와 대조적으로 보였다. 


 코뿔소 무리가 대부분 모인 것을 확인한 레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간들이 모여 있어요. 인간들! 알죠? 큰 동물을 타고 모여 있어요. 주변에는 덩굴 같은 것들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에 나뭇잎 더미 같은 것들 안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죠. 큰 동물! 그건 엄청 큰 소리를 내면서 엄청 빨리 달렸고, 엄청 덩치도 컸어요. 제 생각에 코끼리라고 생각하는데 코끼리보다는 훨씬 빨랐어요. 삼촌들 중에서도 그렇게 빠른 코뿔소는 없을걸요."


"인간들이 왜? 거기서 뭘 했어? 인간들이 틀림없는 게야? "


어린시절 동물원에서 자란 코바영감이 흥분하며 물었다. 코바영감은 인간들이라면 치를 떨었다. 인간들은 속을 알 수 없는 동물이고, 악마가 있다면 인간의 모습을 했을 거라는 게 평소 코바영감의 지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바영감은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코바영감의 부모가 야생에서 인간들에게 잡혀 동물원으로 들어갔고, 다른 인간들의 구경거리로 삶의 대부분을 살았다. 생을 다할 즈음 인간들은 그런 부모와 자신을 자연으로 끄집어냈다. 반 평생을 동물원에서 자란 코바영감의 부모는 자연의 섭리를 잊은 지 오래고, 몸은 늙어 약해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바영감의 부모는 생을 다했고, 젊은 코바는 초원에서 방황을 한 끝에 지금의 무리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레니는 흥분한 코바영감을 보는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본 것이 인간이 맞을까? 다른 동물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냐 맞을 게야. 레니 네가 본 큰 동물은 발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달렸지?"


"맞아요.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어요. 너무 빨라서 안 보이는 건가 싶었는데 맞아요. 움직이지 않았어요!"


레니는 코바영감의 질문에 다시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본 것은 인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네가 본 크고 빠른 동물은 트럭이라고 한다. 그것은 동물은 아니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타고 다니지, 어렸을 적 나를 태워 이곳으로 보낸 것도 트럭 이란다. 그래 더 자세히 말해보거라 그 인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레니는 코바영감의 질문에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자신이 본 것은 이미 다 말을 했기에 더 말을 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했고, 그걸 눈치챈 게이드가 나섰다.


"인간들이 트럭에서 싣는 것을 봤어요. 코끼리 뿔 같았어요. 멀리서 보느라 확신하지는 않지만 코끼리 뿔 같았어요. 코끼리는 없었지만 뿔, 그건 거기 있었어요."


"이런... 악마들이 또 포악질을 시작한 모양이야. 글래디, 자네가 젊은 친구들을 모아 주변을 좀 돌아봐 주게, 절대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되고 조용히 움직이면서 주변에 죽은 코끼리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됐을지 찾아보게. 아주 중요한 일이네."


"네 그러죠. 코바영감. 일단 피곤하신 듯 하니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들어가 쉬시죠. 영감"


글레디는 무리의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우두머리 코뿔소다. 그리고 게이드의 아빠다. 게이드와 글래디를 나란히 두면 큰 덩치와 매서운 눈이 누가 봐도 부자지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글래디는 영감이 나무 그늘 아래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젊은 코뿔소 몇을 골라 무리 주변을 둘러보려 했다.


"저도 갈게요 삼촌! 이 일은 제가 시작했고, 더 알아보고 싶어요."


레니가 당차게 말했다. 


"당연히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위험하기도 하지만 코바영감의 말대로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네가 나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넌 아직 어리잖니."


질세라 글래디가 말했다. 글래디는 레니가 좋은 말로 타일러서는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강하게 대꾸했다.


"맞아요 어려요. 하지만 저는 영웅 랭글러의 아들이라고요. "


 레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랭글러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랭글러는 무리의 전설이었다. 큰 덩치와 빠른 발, 큰 뿔을 자랑했고, 용맹함은 사자와 싸워서도 밀리지 않았다. 레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코뿔소무리에 사자무리가 들이닥쳤다. 그때, 랭글러는 우두머리 사자의 심장에 코뿔을 박아 넣고 그 충격으로 쓰러진 사자의 머리를 앞발로 눌러죽였다고 했다. 그로 인해 나머지 사자들은 도망쳤고, 코뿔소 무리는 큰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랭글러도 그때 얻은 큰 상처로 인해 얼마 뒤 죽음을 맞이했다. 랭글러는 코뿔소 무리의 자긍심이었고, 레니의 자긍심이었다.


"맞아 랭글러의 아들이지 하지만 네가 랭글러는 아니잖아. 네가 나서야 할 때가 올 것이야. 그때는 물러서지 말고 나서거라."


 글래디는 더 나서려고 하는 레니를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옆에서 게이드가 눈치를 보고 있다가 레니를 슬쩍 밀어 진흙 쪽으로 이끌었다.


"레니, 우리는 너무 지쳤다눙. 오늘만 날이 아니라눙. 오늘은 진흙 목욕이나 하자눙"

"게이드! 이건 우리가 시작한 일이잖아. 우리 아니었으면 인간들이 강가에서 진 치고 있는 걸 알기나 했겠어? 글래디 삼촌은 정말 너무해. 아니 어른들은 다 너무 한 거 같아. 맨날 우리는 어리데 그래서 보호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 크는 건데?"

"레니, 넌 충분히 용감하다눙. 랭글러 삼촌만큼 용감하고, 크고, 빠르게 클게 분명하다눙. 하지만 랭글러 삼촌만큼 차분해지려면 노력이 필요해보인다눙. 랭글러 삼촌은 때가 아닐 때 나서는 것은 무모함이라고 했다눙. 아빠가 말했듯이 언젠가 네가 나서야 할 때가 올 거라눙 그땐 물러서지 말고, 오늘은 물러서자눙"

"또..."


말을 이어가려던 레니는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을 거고, 얘기를 길게 해 봐야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체념하기로 했다. 마침 진흙 목욕이 하고 싶기도 했고. 


<3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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