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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7. 2024

가장 빠른 코뿔소 레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초원, 주변의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에서 양분을 뺏어왔다고 봐도 믿을만한 거대한 나무한 그루, 그리고 그 나무를 행해 연신 들이받기를 해대는 코뿔소 무리가 있다.


"왜 내가 가장 빠른데 왜 '쾅' 소리는 내가 제일 작은지 모르겠어."

레니는 심술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쾅'은 빠르기만 해서는 안된다니까눙. 코 뿔 끝에 온 힘이 실려야 해. 나무기둥에 코뿔이 닿기 전에 체중을 실어야 한다니까눙, 넌 너무 욕심이 많다눙. 이미 속도가 붙을 때부터 보인다눙"

레니의 볼멘소리를 그냥 넘길 리 없는 게이드는 꼬투리 하나를 잡았다는 듯이 훈계를 늘어놓는다.

"그 똑같은 소리  90번 더 들으면 100번 채우겠어."

"같은 말을 10번이나 하게 만드는 너도 재주가 남다르다눙."

"너도 고작해야 잘 봐줘서 '쿵' 정도의 소리가 나는 거야. 어른들이 보기엔 아직 멀지 않았을까?"

"응. 어른들이 보긴엔 그럴지도. 그렇지만 너는 어른이 아니라눙. 누가 봐도 나는 너보다 '쾅'에 가깝다눙."


 게이드의 잔소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레니는 다시 한번 나무를 향해 돌진한다. 뒤에 서있는 게이드의 얼굴에 모래라도 튀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달음질이 평소보다 거칠다.


"마지막 순간에 체중을 싣어서, 한곳에 집중."


이내 '퍽'하는 충돌 소리와 함께 기둥 옆으로 나뒹구는 레니가 보인다. 게이드는 더 큰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니지! 나무의 정 중앙을 노려야 한다눙! 그렇게 귀퉁이에 갔다 처박으면 당연히 옆으로 미끄러진다눙!"

 

 게이드의 잔소리에 보란 듯이 성공을 보여주고 싶었던 레니는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해버린 것에 더 속이 상한다. 마음이 급했던 건지 아니면 게이드를 너무 의식했던 건지, 잘하려던 마음이 오히려 마음을 흩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문제의 원흉은 게이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 게이드는 자신을 보고 배우라는 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레니의 속도에 비해서는 느린 움직임이지만 정확하게 나무의 중심으로 향한다. 충돌 직전 몸을 띄어 온 체중을 코뿔에 모은다. 이내 '쿵' 소리와 함께 코뿔과 나무의 정 중앙에 충돌을 한다. 나무를 통해 대지로 전달된 충격이 레니의 다리까지 전해진다.


"그렇게 느리게 달리는 것이라면 나는 진작에 성공했을 거야! 그런 느린 속도로는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고, 삼촌들이 말했어."


게이드의 보란듯한 성공에 속이 상한 레니는 한 마디 내뱉는다. 사실 게이드의 달리기 속도가 느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게이드는 정확했고, 달리기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빨리질 것이라는 삼촌들의 얘기도 있었다. 그 부분이 더 속상했다. 자신의 들이받기는 연습을 통해 늘어야 하는데 게이드의 달리기는 크면서 자연스럽게 빨리질 거라는 생각이 레니를 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내 들이받기에 굳이 약점을 찾아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눙. 다만 그런 걸로 네 들이받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한다눙"


"됐어, 그만. 오늘은 그만할래. '초원 가르기'나 하자! 따라올 테면 한번 따라와 보라고. 느림보 눙이!!"

***초원 가르기 : 초원을 끝을 두지 않고 달리는 놀이다.


 게이드가 으스대는 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레니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초원 가르기'로 놀이 종목을 바꾸려 했다. 게이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초원 가르기'는 놀이라기보다는 레니가 그냥 신이 날 때까지 초원을 끝도 없이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게이드는 레니가 달리기 시작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레니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게이드의 말을 듣는 법이 없으니까.


"간다!!"


 레니는 외침과 동시에 시작된 달음질에 뿌연 먼지가 일어난다. 그 뒤를 게이드가 마지못해 따라 달린다. 레니는 끝도 없이 초원을 달리는 이 놀이가 좋다. 코 뿔이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좋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빨라지는 기분이 든다. 숨은 가쁘지만 그 덕분에 신선한 공기가 몸을 통과하는 느낌이 든다. 속도가 빨라지면 레니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든다. 이 순간 레니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지칠 때까지 이 기분을 가진 채로 달리면 된다.


 게이드는 처음에는 최선을 다해 레니의 뒤를 따라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린다. 물론 갈수록 거리가 벌어지지만 최선을 다한다. 게이드도 레니의 뒤를 쫓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너른 초원을 원 없이 달리며 코뿔로 바람을 가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게이드의 눈에 멈춰서 있는 레니가 보인다. 게이드는 점점 속도를 줄이며 레니의 옆으로 간다.


"레니 뭐라눙! 오늘은 이게 끝이야? 고작이 거 달리려고 '초원가르기' 씩이나 하자고 한 거라눙? 이제 바람 좀 타나 했는데."


 거친 숨을 숨기며 너스레를 떠는 게이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을 응시한 레니가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저게 뭐야? 저런 거 본 적 있어 게이드?"


 얼이 빠진 레니의 눈을 따라 게이드도 시선을 옮긴다. 게이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녹색천막의 무리,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쳐진 펜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인간들.


"여긴 우리가 늘 달렸던 곳인데..."


 실망에 찬, 그러면서도 놀라움과 두려움이 혼재된 목소리로 레니는 말한다. 대체 저것들을 무엇이란 말인지, 이 드 넓은 초원의 구석구석을 모조리 알고 있는 레니였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초원을 달리고 누비며 초원의 구석구석을 달렸다. 근데 이런 것이 있을 줄이야. 아니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리도 없었다. 여긴 레니가 가장 좋아하는 '초원 가르기' 장소였으니까.


"모르겠다눙 저게 다 뭐지.. 일단 가까이 가지 말자눙. 삼촌들이 그랬다눙. 우리가 모르는 초원 밖에도 세상이 있다고. 일단 돌아가서 삼촌들에게 물어보자눙."


 게이드도 역시 레니만큼 놀랐지만 두려운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빨리 레니를 데리고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지.. 그래, 그렇게 하자."


레니의 입에서 게이드가 듣고 싶었던 소리가 들렸다.


"응 돌아가자눙!"

"근데 그전에 좀 지켜보는 게 어때? 뭔가 우리가 더 알아가야 삼촌들 한테도 설명할 뭔가가 있지 않겠어?"

"너무 위험하다눙!"

"가까이 가지 말고 저기 바위 뒤에 숨어서 해가지기 전까지만 보고 가자."


 게이드는 레니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잘못 말리는 순간 레니는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지도 몰랐다. 레니는 하지 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게이드는 한숨을 내쉬고 알겠다는 듯이 바위 쪽으로 움직였다. 둘은 바위 뒤에 숨어 해 가지기 전까지 처음 보는 '저 것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2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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