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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Nov 06. 2024

신호등

김두필 초단편소설

"너는 어떻게 매번 여자가 바뀌냐?"


종석을 아는 친구들은 종석에게 매번 저렇게 말했다.

이런 소리를 듣는 종석은 웃으며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나한텐 쉬운 일이야."


종석의 말대로 종석에겐 쉬운 일이었다.

종석은 수려한 외모와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항상 꾸밀 줄 아는 남자였다.

매번 깔끔한 복장을 하고 다녔고 항상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많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종석의 눈에는 여자들의 신호등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신호등이었다.

빨간불 노란불 초록불. 이 세 가지의 색이 종석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보였던 이 신호등이 종석의 비결이었다.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신호동과 똑같았으니까.

빨간 물은 멈춰, 노란불은 아직 믿음이 부족해, 초록불은 나는 이제 마음이 활짝 열었어요라고 말하는 신호였다.

이런 신호가 보이는 종석에게는 연애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연애를 하면서 종석에게는 안 좋은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빨간불의 여자들에게만 접근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문이 꽉 닫쳐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종석은 호감이 갔던 것이다.

어느 순간 종석은 모든 순간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초록불이 이미 들어와 있는 여자에게는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게 된 것이다.

노란불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노력하고 매너 있게 다가가면 초록불로 바꾸는 건 쉬웠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빨간불의 여자들은 달랐다. 결코 자신에게 쉽게 넘어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변하는 그 순간이 종석에게는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종석은 여자의 마음이 빨간불에서 노란불로 노란불에서 초록불로 바뀌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석에게 새로운 목표가 나타났다.

그녀는 바로 종석의 옆 부서에서 일하는 경아였다.

경아는 종석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빨간불의 여자였다.

종석은 목표를 정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마음을 초록불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경아에게 종석이 말했다.


"경아 씨 저랑 저녁 식사 한번 하지 않을래요?"


"싫은데요?"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거절뿐이었다.

그럴수록 종석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종석의 게임은 시작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은 까칠한 츤데레로.

또 어느 날은 친절한 매너남으로.

그것도 안되면 무심한 무관심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봤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종석은 오기가 생기고 화가 났다.

종석이 더 화가 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 왜 나한테만 빨간 불이지?..."


그랬다. 경아의 신호등은 종석을 빼고는 모두에게 초록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착한 사람이었다. 항상 웃음이 얼굴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다.

하지만 유독 종석에게만 까칠했고 종석이 다가오면 피하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매번 종석은 생각했다.


'뭐지? 내가 그렇게 싫은가?'


처음에는 자신의 신호들이 잘 못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여자들에게 다가가 확인을 해봤다.

하지만 신호등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신호등은 잘 작동되고 있는데... 뭐가 문제지?'


종석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경아를 보면서 종석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기필코 그녀의 신호등을 초록불로 만들리다."


그때부터 종석은 경아에게 끊임없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매번 경아의 눈에 띄기 위해 옆부서에 미치듯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커피를 어느 날은 음료수를 또 어느 날은 쿠키를 사서 경아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종석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금껏 자신이 이토록 노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아의 머리 위는 항상 빨간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종석이 아메리카노 한잔을 경아 책상에 놓는 날.

경아가 종석을 보라보며 말했다.


"저기... 종석 씨... 저랑 이야기 좀 할까요?..."


경아의 말에 종석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긴장감인지 아니면 설렘인지 모르겠지만 종석의 마음이 콩닥 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경아의 말에 종석이 답을 했다.


"좋아요... 잠시 옥상 가서 얘기 나누실까요?"


종석이 말이 끝나자 경아는 종석과 함께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


옥상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분위기가 알콩달콩하지는 않았다.

그저 긴장감만이 둘 사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종석이 먼저 말했다.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그러자 경아가 대답했다.


"종석 씨... 사실 이렇게 커피 사주고 하시는 거 굉장히 불편해서요..."


"아... 그냥 같은 동료끼리 하는 응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되는 걸까요?"


"네... 저는 굉장히 불편해요..."


일절의 고민도 없이 나오는 그녀의 대답에 종석을 당황했다.

여전히 빨간불을 켜고 있는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종석은 놀란 것이다.

자신의 외모와 신호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모두 무효화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자존감 마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종석에게 경아가 한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종석 씨 마음... 진심이 아니잖아요?"


경아의 말에 종석은 할 말이 없었다.

경아의 말대로 종석은 그저 게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종석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경아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종석의 게임은 끝이 났다.

항상 승리만 해왔던 종석은 그렇게 첫 패배를 했고 그 패배는 종석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


그렇게 상실감에 빠져 있는 종석은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종석은 계속해서 경아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종석은 경아만 보면 숨기 바빴다.

간혹 어쩔 수 없이 경아와 마주치더라도 실망감만 커졌다.

경아의 머리 위 신호등은 여전히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석은 조금씩 경아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석은 머릿속은 경아의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경아를 피해 숨어 다니는 날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었다.

그럴수록 종석이 경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자꾸 생각하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갖는 이 현실이 말이다.

이제 종석은 완전히 경아에게 빠져 버렸다.

그렇게 끙끙 앓던 종석은 결심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로 말이다.

종석은 생각했다.


'경아 씨의 마음을 얻으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닌데...'


그날 종석은 다시 한번 옆부서로 찾아갔다.

그리곤 모두가 있는 앞에서 경아에게 소리쳤다.


"경아 씨!!! 우리 오늘 저녁식사 같이 해요. 저 진심으로 경아 씨에게 할 말이 있어요!"


종석의 외침에 회사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 몰렸다.

경아는 당황했고 종석의 얼굴을 빨갛게 닳아 올라 있었다.

하지만 종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다시는 이렇게 당황하게 안 할 테니까!! 오늘은 밥 한 끼 같이 먹어줘요!! 이따가 저녁 7시 회사 앞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한마디만을 남긴 채 종석은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경아 역시 그저 망한 표정으로 그런 종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


회사 앞 레스토랑. 종석이 멀끔하게 차려입고 경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종석은 초조함에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리고 맑은 종소리와 함께 레스토랑 문이 열렸다.

그 뒤로 종석이 그렇게 기다리던 경아가 등장했다.

두리번거리던 경아가 종석을 발견하고 종석이 있는 테이블로 와 종석의 앞에 앉았다.

그렇게 음식을 주문하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는 두 사람이었다.

종석은 연신 기장한 채 땀을 흘리고 있었고 경아는 그런 종석을 보며 부끄러운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종석이 꽃다발을 건네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뭐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사람 마음이 보이 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게 항상 쉽고 또 대수롭지 않았어요... 근데... 이번엔 달라요. 사실 처음에 경아 씨한테 다가간 건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심입니다... 좋아해요. 거짓 하나 없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 마음을 좀 받아주실래요? 당신을 최선을 다해 좋아하겠습니다."


그렇게 종석은 온 마음을 다해 경아에게 고백을 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종석은 잔뜩 긴장을 했다.

아직 경아의 머리 위의 신호등은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런 종석을 보던 경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그쪽 신호등이 초록불이 되었네요... 좋아요 우리 한번 만나봐요."


대답과 동시에 경아는 종석의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종석이 본 경아의 신호등은 딸각 소리와 함께 초록불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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