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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Nov 20. 2024

계속 죽는 남자

김두필 초단편소설

"이제 그만... 제발 그만... 그만 좀 죽여 이 새끼들아!!!"


이환영은 다시 한번 죽음을 맞이했다.

환영이 있는 곳은 음산한 안개에 휩싸인 곳이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난자했고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죽은 환영의 발 밑으로는 검붉은 피가 흥건하다 못해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환영에게서 떨어지던 핏방울이 멈췄다.

모든 것이 끝이난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던 그 순간 환영의 옆에 있던 악마가 환영의 입으로 알약을 하나 넣어줬다.

잠시 후 거친 숨을 몰아 쉬더니 환영은 다시 깨어났다.

좀 전에 죽었던 환영이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살아난 것이다.

돌아온 숨을 몰아쉬며 환영이 말했다.


"아... 또 살았네... 여기 저승 맞나 보네 씨발... 아니 지옥인가?"


환영은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났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기억이 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통이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죽는 순간의 그 고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잊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고통의 순간을 매번 매 순간 경험하는 게 환영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고통에 축 늘어져 있던 환영이 자신의 옆에 서있는 악마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합니까? 이제 그만 죽여요..."


그러자 악마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지..."


악마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환영의 앞에 섰다.

검은 재를 뒤집어쓴듯한 몰골에 빼빼 말라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남자.

그리곤 그 남자는 환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는 원망과 한이 가득 차있었다.

환영은 혹시 자신이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지 환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환영을 노려보던 남자가 말했다.


"나 배고파... 넌 모르지?"


"씨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그러자 남자가 또 말했다.


"얼마나 배고프고 춥고 아팠는 줄 알아? 넌 몰라 이 나쁜 새끼야!!"


그러자 환영이 대답했다.


"그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 모른다 몰라!! 그냥 죽여 씨발..."


환영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곡괭이로 환영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콱! 소리와 함께 콸콸 쏟아지는 환영의 피.

환영은 그 고통에 몸부림쳤다.


"으악!!! 살려줘!!!! 제발 그만 좀 해!!!!"


한참을 몸부림치며 고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환영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이내 축 쳐져버리는 환영.

미동조차 하지 않는 환영에게 알약 하나를 먹이는 악마.

잠시 후 또다시 숨을 몰아쉬며 환영은 살아났다.


"이제... 그만 살고 싶다... 제발 좀 죽여라..."


그러자 악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야 아직 멀었어... 저기 봐봐 벌써 다음 손님 오신다."


악마의 말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환영의 앞에 섰다.

남자는 군복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남자의 군복은 피로 젖어 있었고 총에 맞았는지 구멍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총구를 환영의 머리에 겨누는 남자.

그리고 총을 장전한 남자가 환영에게 말했다.


"너는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 바라지도 않는다... 근데 내가 뭘 잘 못했는지를 모르니까 그게 억울한 거지..."


환영이 남자에게 답했다.


"너 때문에 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너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그런데 넌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구나..."


"아니 뭘 잘 못했는지 알아야 반성을 하든지 말든지를 할 거 아니야!!! 이 개새끼야!!!"


"그냥 죽어라... 넌."


탕! 소리와 함께 환영의 이마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또다시 쏟아지는 환영의 피.

역시 축 눌어지는 환영의 육신.

그리고 어김없이 준비된 알약을 환영에게 먹이는 악마.

다시 숨을 몰아쉬며 살아나는 환영.

또다시 이어지는 환영의 말.


"제발 그만 좀 살려네..."


"히히히 와 너 죽는 거 벌써 한 20000번은 넘게 봤는데... 볼 때마다 아주 그냥 짜릿해... 팝콘 각이여! 아주 신나!"


악마는 이번에도 즐거운 듯 웃어대며 환영을 조롱했다.

그런 악마의 표정은 환영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영은 그 조롱을 그저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다.

그때 누군가를 보며 말하는 악마.


"아이고! 이번엔 여성분이 오셨네... 이리로 오시지요..."


한 여자가 환영의 앞에 우뚝 섰다.

여자는 피가 덕지덕지 묻은 하얀 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리곤 그녀의 손에는 긴 칼이 들려져 있었다.

칼을 환영의 얼굴에 대곤 죽지 않을 정도로 쭉 그어버리는 여자.

환영은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아 씨발! 이제는 한 번에 죽이지도 않네!!! 그냥 죽여 이년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긴 칼로 환영의 옷을 찢어 버렸다.

여자의 칼질에 알몸이 되어버린 환영이 물었다.


"넌 또 뭐야? 그냥 죽이지 이게 또 뭔 짓거리냐?"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자.

그러더니 환영의 몸에 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익- 쓰억- 휙휙.

그리고 이리저리 튀는 핏방울.

그 핏방울과 함께 그곳을 채우는 환영의 비명소리.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자가 환영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아파하지 마... 난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자는 환영에 몸에 그림을 그렸다.

환영의 몸에는 알 수 없는 그림과 문양이 가득했다.

그리곤 고통에 몸부림치던 환영은 어느새 몸이 축 늘어진 채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악마가 알약을 먹여서 또다시 환영을 살려냈다.

살아난 환영이 악마에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어? 그냥 죽여 죽이라고... 제발..."


"일단 저기 봐봐"


악마가 말을 끝내고 손을 몇 번 휘젓자 가득했던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환영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앞에 때를 지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노인부터 어린아이들까지 환영을 죽이기 위해 죽을 서 있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악마가 말했다.


"저거 봐봐... 아직 멀었어... 너 인기가 많더라고."


"저 사람들 도대체 뭐야? 도대체 뭐길래 나를 죽이려고 안달이냐고!!!"


"저 사람들 다 조선 사람들 그리고 대한제국 사람들이야..."


"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어. 너네 나라 사람들."


"아니 도대체 같은 동포끼리 왜 이러는 거야?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환영의 말에 악마가 키득키득 거리며 답했다.


"저 사람들은 일본에게 핍박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야. 앞전에 너를 죽였던 군함도 노동자도 있고... 나라 돼 찾겠다고 일본인들 죽이고 싸우다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일본이 전쟁하는데 끌려가서 위안부로 살아가다가 죽어버린 아까 그 여자분도 있고... 아주 종류가 많아... 저 사람들 어서 좋은 데 가서 쉬셔야 되는데... 한 사람 한 번 죽여보고 가겠다고 저렇게 죽을 서 있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가 뭘 잘 못했는지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냥 네가 한 짓을 내가 알려줄게... 하도 많이 죽어서 또 까먹었나 보다."


"그래 한번 말해봐."


"조선시대 때 그런 사람이 있었어. 조선의 멸망에 큰 역할을 한 사람. 외세의 침략에 조선을 문을 활짝 열다 못해 팔아먹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포를 팔아먹고, 또 그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어서 아주 잘 먹고 잘 살면서 계집질이나 하고, 지들 가족 말고는 친구고 친척이고 일본에 다 팔아먹고, 아 그리고 아예 일본인이 되고 그래서 높은 자리 해 먹고, 또 그 높은 자리 이용해서 조선의 수뇌부들 다 작살내고 또...."


"그만... 이제 그만합시다..."


"이제 다시 기억났지? 매국노 이환영 씨?"


"그래..."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해도 될까?"


"그래... 그럽시다..."


악마가 줄을 서 있던 조선인에게 말했다.


"네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걸려도 되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게 지옥은 또다시 환영의 비명소리와 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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