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초단편소설
"이제 정말 준비하셔야 합니다... 가족분들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죠..."
진수의 나이 이제 겨우 40세.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진수는 아침부터 병원에서 나와 밤이 된 지금까지 계속 걸었다.
그저 걸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데 제정신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자신의 죽음보다 진수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진수는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을 하고 예쁜 딸아이를 슬하에 두었다.
아내와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며 알콩달콩 살고 싶었지만 하늘은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암이란 병으로 진수의 아내를 데려간 것이다.
처음엔 아내를 잃은 슬픔에 힘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수의 앞에는 소율이라는 작고 예쁜 딸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진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하나뿐인 자신의 딸을 누구보다 예쁘고 소중하게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수와 소율이는 6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진수에게 시간이란 녀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은 걸까?
진수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걷기만 했다.
그리고 힘이 빠져 털썩 주져 앉은 진수가 울며 소리쳤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아내만 데려가시면 됐지... 저 아이에게서 저까지 뺏어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 아이를 지켜줘야 할 부모를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데려가시면 너무 매정하잖아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진수는 소리쳐 울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 소율이를 지켜주지 못하다는 사실이 그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하던 진수가 또 한 번 소리쳤다.
"적어도 저 아이를 지킬 수 있게는 해 주셔야죠!! 하나님 정말 간절하고 간절한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제발 저 아이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을 울부짖던 진수의 눈에 한 가게가 들어왔다.
낡고 허름한 가게의 모습.
간판은 떨어져 가고 있었고 인테리어도 엉망인 곳이었다.
깜박거리는 간판에는 장난감 가게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곤 진수는 홀린 듯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가게 안에는 온갖 장난감들이 모여있었다.
현대 시대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장난감들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 아닌 나무와 헝겊등으로 만들어낸 장난감들이었다.
그리고 그 가게의 한쪽 구석 한 노인이 열심히 장난감을 만들고 있었다.
진수가 천천히 다가가자 노인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진수에게 물었다.
"장난감 만들어줘?"
"아?... 네..."
당황한 진수가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뭐로 만들어줘?"
"6살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요?"
"음... 곰인형 하나 만들어주지... 그 다 큰 남자가 남의 가게 앞에서 펑펑 울고 난리야 난리가..."
"아... 죄송합니다... 좀 힘들어서요..."
"그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아주 이쁘게 하나 뚝딱 만들어 줄 테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그 말은 끝으로 노인은 말없이 곰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수도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자신의 상황이 누구와 한가하게 대화를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없이 노인이 곰인형을 만드는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곰인형은 꽤 그럴듯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곰인형을 만들던 노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 손에 끼고 있는 반지 그거 줘봐."
"예? 이거요? 왜요?"
"여기다가 넣어 줄게... 줘봐..."
"반지를요?"
"그래 여기다가 넣는다고..."
진수는 노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진수도 이유를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이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또 딸에게 주는 선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손에 끼고 있던 자신의 반지와 아내의 반지를 노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노인은 그 반지를 넣고 곰인형을 완성시켜 주며 진수에게 말했다.
"자 가져가... 공짜야... 자네가 너무 울어서... 울지 말라고 주는 선물이여."
그렇게 진수는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완성된 곰인형을 가지고 가게에서 나왔다.
***
집에 돌아온 진수.
진수의 손에 들린 곰인형을 보며 소율이 물었다.
"아빠 그거 뭐야?"
진수는 노인에게 받은 곰인형을 소율이에게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소율아... 이 곰인형은 소율이의 기사야... 아빠가 없어도 소율이를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항상 잘 간직해야 돼..."
"아빠... 어디가?"
"어 아빠가 아주 오랫동안 멀리 가거든?.... 그러니까 그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지내야 돼?"
"몇 밤 자고 와?"
"응.. 100 밤 자면 아빠 올 거야... 우리 딸 착하게 잘 지낼 수 있지?"
"응 알았어 아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을게요..."
그렇게 진수는 소율이와 이별을 했다.
아빠가 준 곰인형을 안은채 그렇게 소율이는 밤마다 잠이 들었다.
곰인형은 소율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때도 함께 했다.
또 중학교 때 소율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도 항상 곰인형은 곁에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갔을 때도 소율이의 방에는 언제나 곰인형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곰인형은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한 도시의 작은 아파트.
그 아파트에서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크진 않지만 작고 아담한 아파트에서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딸이 오손도손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자.
그녀는 바로 소율이었다.
그리고 소율이와 쏙 빼닮은 딸아이게 그녀가 말했다.
"지유야 오늘은 일찍 자기로 엄마랑 약속했지?"
"잉... 싫은데..."
"오늘은 일찍 자야 돼요... 낼은 우리 가족 캠핑 가는 날이니까.."
"그래 지유야 오늘은 일찍 자자... 그래야 내일 아빠랑 캠핑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뛰어놀고.. 또 마시멜로도 먹고... 또 비누방을 놀이도 하고..."
이때 남편의 말을 끊으며 소율이 말했다.
"그거 다 하려면 어서 자야겠다. 어서 주무세요 공주님."
"네..."
"양치하고 세수하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공주님."
"네!"
그렇게 지유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는 동안 남편과 그녀는 저녁식탁을 정리했다.
그리고 세수를 마친 지유가 그녀의 옆에 쭈볏대며 서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귀에 속삭이는 지유.
"엄마... 나 근데 무서운데..."
"음... 많이 무서워?"
"네... 향초랑 조명 켜주면 안 돼요?"
"음... 위험한데..."
"저 잠들면 엄마가 꺼주면 되잖아요..."
"그래 기분이다. 어서 들어가자!"
"그리고 곰인형도..."
지유의 투정이 귀엽다는 듯 소율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엄마 곰인형 빌려줄게... 이거 엄마 아빠가 준 인형이니까 소중히 다뤄줘야 돼... 밤에 괴물이 와도 이 곰인형이 지켜 줄 거니까..."
"네! 좋아요!!"
그렇게 지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남편도 정리를 마치고 부부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불이 꺼지고 집안은 고요해졌다.
***
그녀와 남편이 잠자리에 들고 잠시 후, 그녀는 무언가 타는 냄새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바로 지유의 향초였다.
향초를 끄고 잔다는 것을 깜박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지유의 방으로 달려갔다.
지유의 방 문은 열려있었고 작은 방에서는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편은 집안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와 문을 열고 미친 듯이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 지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그만 뿌려~"
지유의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소화기를 멈췄고 소율이는 지유를 번쩍 안아 들었다.
소율이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물었다.
"지유 너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응 괜찮아..."
"불 난 거 아냐?"
"응 불났었어... 근데 저 곰인형이 나 구해줬어."
지유의 말에 소율이는 지유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는 검게 그을린 채 물에 축축이 젖어있는 곰인형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화장실에서 지유의 방까지 많은 양의 물자국이 이어져있었다.
지유가 곰인형을 안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곰인형이 막 물로 불 끄고 나한테 물 뿌려주고 그랬어."
그 말을 들은 소율이 지유와 곰인형을 안은채 울며 말했다.
"아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