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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Nov 13. 2024

공원 벤치에서 만난 꼬마

김두필 초단편소설

따듯한 햇살이 비추는 화창한 봄날.

싱그러운 향기와 온기를 주는 색감들이 공원을 예쁘게 꾸며주고 있었다.

푸른 풀들이 고개를 들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초록색 사이로 알록달록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에는 마실을 나온 노부부.

데이트를 즐기며 공원을 걷고 있는 연인들.

또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기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

많은 사람들이 봄이 온 공원에 행복한 기운들을 더욱더 북돋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에 자리 잡은 노란 벤치 하나가 보였다.

잠시 후 정수가 터벅터벅 걸어오며 말했다.


"아고 죽겠다... 어제 술을 너무 먹었나?"


목이 늘어난 하얀색 반팔 티셔츠에 파란 운동복 바지를 입은 정수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곤 술이 덜 깼는지 연신 자신의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는 정수였다.

연신 마시지를 하던 정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자연스레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어 무는 정수.

정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 어제는 내가 너무 했나? 에잇! 아 몰라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때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


정수가 앉아 있는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꼬마아이.

당돌한 표정으로 정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꾸지람에 정수가 멋 적은 듯 황급히 담뱃불을 껐다.

담배를 끄고 정수가 꼬마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아이인데요?"


"그걸 누가 몰라? 엄마 아빠랑 같이 왔니?"


"아니요."


"여기 담배 연기 많이 나니까 저~기 딴 대가서 놀으렴... 엄마한테 가던가."


정수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안 하는 아이.

아이는 가지고 있던 작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정수에게 건넸다.

아이의 손에 들려져 있는 풍선껌 하나.

풍선껌을 건네며 아이가 말했다.


"이거 먹어요... 담배 끊는 데는 이런 거 먹어야 한데요."


아이의 말에 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껌을 건네어 받았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정수가 말했다.


"나 참 이제 살다 살다 꼬마아이 잔소리까지 듣는구나..."


"근데 아저씨? 무슨 고민 있어요?"


"고민? 있지... 아주 많지... 고민이..."


"뭔데요?"


"너 같은 꼬맹이가 말하면 뭐 아냐?"


정수는 꼬마아이의 질문에 무시를 하듯 말했다.

하지만 꼬마는 대수롭지 않게 정수의 무시를 받아쳤다.


"고민은 어디든 털어놓으면 반으로 줄어드는 거라고 했어요..."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란 정수가 말했다.


"나 참... 누구랑 똑같이 말하네..."


"누구요?"


아이의 반문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정수가 말했다.


"있어... 내 여자친구... 아니 이젠 전 여자친구인가?"


"차였어요?"


"뭐...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러지 말고 고민 있으면 털어놔 봐요... 어차피 전 꼬마인데 뭘 알겠어요? 뭐... 아저씨 말을 들어도 꼬마인 제가 소문낼 것도 아니고..."


"야 꼬마... 너 말 잘한다?"


꼬마는 정수가 쳐다보자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런 꼬마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는 정수였다.

그리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정수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민이라... 많지... 그냥 나 자체가 고민덩어리지 뭐..."


정수가 입을 열자 꼬마는 묵묵히 정수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일단 난 지금 5년째 공무원 준비 중인 공시생이야... 매번 아깝게 낙방을 하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변변한 직업이 없는 백수... 그리고 나이는 벌써 36살... 노총각이 되어가고 있지... 물론 요즘은 다들 늦게 결혼한다지만... 내 친구들은 벌써 장가가서 잘 살고 있으니까... 난 늦었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백수에 노총각... 꼬마야? 백수에 노총각이 되면 자연스럽게 뭐가 되는지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아이가 물었다.


"뭐가 되는데요?"


"자연스럽게 바로 불효자가 된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런 불효자... 부모님은 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별 말 안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불효자로 만들어 사람을... 졸지에 직업도 없고 결혼도 못하는 불효자가 돼버리는 거지... 불효자가 되고 나면 또 자연스럽게 되는 게 있어..."


"그건 또 뭔데요?"


"아주 나쁜 놈이 돼... 정말 아주 나쁜 놈...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세상을 욕하고 주변사람을 욕하고 그냥 다 잡히는 데로 욕을 하기 시작해... 정말 나쁜 놈이지... 나도 내가 나쁘다는 거 안다? 근데 안 고쳐져... 그냥 내 방어를 하는 거야... 내 인생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빼고 모든 걸 비판하게 되더라고... 그런데 이 나쁜 놈이... 어제는 아주 나쁜 놈이 돼버렸어..."


"왜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이의 질문에 말을 하려던 정수가 말을 멈췄다.

꼬마아에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뱉어내는 이 상황이 순간 당황스러웠던 것도 있었다.

그런 당황스러움에 정수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꼬마의 눈빛에 또다시 정수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제 여자친구한테 나쁜 짓을 했거든..."


"뭔데요?"


"와...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 되나?"


"괜찮아요 말해봐요 어차피 전 한낱 꼬마아이일 뿐이니까..."


꼬마아이가 자신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었다.

정수가 받아 든 것은 작은 캔디였다.

캔디를 건네며 아이가 말했다.


"달콤한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데요..."


"너 혹시 내 여자친구를 알고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말마다 여자친구랑 똑같네..."


캔디를 받아 든 정수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미소를 짓던 정수가 받은 캔디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좋지 않은 얘기지만 너한테 말할게... 네가 아저씨의 대나무숲이 돼주라."


"네... 그럴게요."


"사실 어제 여자친구한테 나쁜 짓을 했어... 다 내가 못난 탓이지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정수의 말을 들어줬다.


"어제 카페에서 여자친구를 만났어... 난 참 눈치도 없지... 여자친구가 표정이 좋지 않았어... 근데 난 그것도 몰랐다? 그저 여자친구가 사준 커피와 디저트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거야... 참 멍청하지?"


아이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멍청한 거... 그깟 커피랑 디저트가 뭐라고 참... 아무튼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머뭇머뭇 무언가 말을 못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편하게 말하라고 했지... 그리고 여자친구가 한 이야기는 날 혼란에 빠뜨렸어..."


"뭐라고 했는데요..."


"임신... 임신을 했다는 거야... 테스트기를 보여주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더라?"


"대부분 아이가 생기면 기쁘다고 하던데?"


아이의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을 못하던 정수가 말했다.


"기쁘다 라... 그런 거 보다 먼저 든 생각이 뭔 줄 알아?"


"..."


"아무것도 없는 내가 먼저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말했지... 나는... 준비가 안되었다고..."


저 한마디와 함께 정수가 감정이 격해져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백수고... 능력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무슨 아빠냐고... 그래서 난 아빠가 될 수 없다고... 그 아이... 지우자고..."


"후회 안 해요?"


"후회? 당연히 하지... 내가 공무원만 일찍 되었어도... 그래서 내가 일찍 집도 얻고 차도 있었다면... 적어도 우리 아이  그 아이는 행복했을 텐데... 아니 나도 아이도 여자친구도 모두 행복했을 텐데... 내가 못나서... 내가 병신 같아서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너무 원망스럽고 싫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놈이 되어버린 거야 난."


순간 격해진 감정에 정수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고 걱정이 없듯 보이던 정수가 펑펑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공원이 떠나갈 듯이 아주 크게 목놓아 정수는 울었다.

그리고 그런 정수에게 꼬마 아이가 다가갔다.

정수를 꼭 안아주는 꼬마아이.

정수를 안은 채로 꼬마아이가 말했다.


"아빠... 난 준비가 안된 아빠여도 좋아요. 난 아빠를 볼 준비가 되어있어요."


아이의 말에 목놓아 울던 정수가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아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정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론가 미친 듯이 뛰어가는 정수.

아주 빠른 속도로 정수는 공원을 벗어나 사라져 버렸다.


***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정수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작은 빌라 앞.

정수가 또다시 헐레벌떡 빌라를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며 넘어지고 신발이 벗겨지고 상처 투성이가 되었지만 정수는 계속 뛰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정수는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정수의 여자친구가 눈이 퉁퉁 부운채 문을 열었다.

숨을 헐떡이던 정수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 아빠가 될 준비가 됐어... 사랑해..."


그렇게 정수는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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