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초단편소설
"자자~ 우유 맛이 어때? 맛있지?"
"친구니까 이렇게 챙겨주는 거야~"
연희의 머리에 아이들이 우유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욕설과 구타.
연희는 익숙하다는 듯이 모든 걸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야 이년 독한 거 봐~ 이제 눈도 깜짝 안 하네..."
연희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아니 흐르지 못했다.
이미 메말라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옥상 구석에서 헝클어진 머리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구타를 당하면서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옥상으로 올라오던 정욱과 눈이 마주쳤다.
정욱은 그런 연희를 보며 안쓰러웠지만 그냥 못 본채 내려갔다.
모두 다 그렇게 했다. 아무도 연희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수업종이 울리고 모든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갔다.
연희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겨 둔 채 말이다.
***
연희는 그렇게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정신은 너덜너덜해져 피폐해져 갔다.
그렇게 터덜터덜 연희는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멍하게 시간을 보내던 연희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검색을 했다.
[복수하는 방법]
이곳저곳을 클릭하고 뒤적거리던 연희에게 한 가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연희는 그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복수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쏘면 내가 받았던 고통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해줄 수 있습니다. 다만 세상엔 공짜는 없죠? 단돈 200만원에 모시겠습니다. 손가락으로 고통을 쏴보세요!! 연락처 - 010.xxxx.xxxx ]
말도 안 되는 방법에 돈까지 내야 한다니 연희는 망설여졌다.
저 말이 사실일까? 정말 내 고통을 돌려줄 수 있는 걸까?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연희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연희는 결심했다. 복수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가의 물건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 죽나 미친 짓을 하다가 죽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연희는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
며칠뒤 새벽 동네 놀이터.
연희는 돈 봉투를 손에 꼭 쥔 채 놀이터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욱이었다.
연희도 놀랐지만 정욱도 놀리긴 마찬가지였다.
연희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연희가 정욱에게 물었다.
"진짜야?... 진짜로 손가락으로 총을 쏠 수 있어?"
"어... 그렇긴 해... 연습만 하면 쏠 수 있어..."
연희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건네며 다시 한번 물었다.
"만약 거짓말이면 죽을 때까지 너를 저주할 거야..."
연희에 말에 정욱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희의 음성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욱이 조심스레 연희에게 대답했다.
"근데... 한 가지 조심할 게 있어... 이 손가락 총을 쏴서 그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만큼 너의 수명이 1년씩 깎일 거야... 복수는 달콤하겠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을 거야... 괜찮아?"
"1년?"
정욱은 연희가 포기하길 바랐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연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고민하던 연희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10년은 아니네? 1년 적게 살더라도 난 그 손가락 총을 꼭 배워야겠어..."
"그래... 알겠어... 그럼 손가락 총을 알려줄게..."
"부탁할게..."
"우선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봐... 그리곤 손 끝에 너의 피를 모은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너의 피로 총알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돼... 어렵지 않아... 너의 모든 피를 일단 머리로 모은다고 생각해 봐..."
"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음... 너 숨을 참고 힘을 주면 얼굴이 빨개질 때가 있지?"
"응..."
"그렇게 숨을 참고 힘을 줘."
연희가 끙끙대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 그렇게 그런데 거기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숨을 못 참고 쉬고 싶을 때 그때 10초를 더 참아봐..."
연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최선을 다 했지만 계속해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숨을 참을 수 없어 계속 실패하는 연희에게 정욱이 말했다.
"숨을 쉬고 싶을 때 10초를 더 참아 그리고 참고 있던 숨을 천천히 뱉으면서 손끝에 힘을 줘. 그럼 손 끝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거야."
연희는 계속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손가락 총을 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연희를 보며 정욱이 다시 한번 말했다.
"기절하면 내가 살려줄 테니까 끝까지 해봐... 그게 돼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거야."
"알겠어... 너 믿어볼게..."
연희는 다시 한번 숨을 참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숨을 쉬고 힘들어지고 숨을 뱉으면서 손끝에 힘을 주었다.
정신을 몽롱해지고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손 끝이 말도 안 되게 뜨거워지고 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연희는 기절해 버렸다.
잠시 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기절해 있던 연희가 눈을 떴다.
연희의 눈앞에는 자신을 놀이터 벤치에 눕혀놓고 기다리고 있는 정욱이 보였다.
힘겹게 연희가 일어나며 말했다.
"나 성공한 거야?"
"너도 봤잖아? 그 손끝..."
"응..."
"앞으로 한 달이야... 한 달만 연습하면 숨을 참지 않고 힘을 주지 않아도 손끝에 모을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고마워..."
연희의 고맙다는 말에 정욱은 왠지 미안해졌다.
그동안 연희를 모른척한 자신이 괜스레 나쁜 놈 같았다
그래서일까? 정욱이 돈 봉투를 연희에게 던지며 일어났다.
"뭐... 기분이다... 첫 제자니까 공짜로 알려줄게...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라..."
"어? 그래... 고마워."
그렇게 연희는 손가락 총을 배우기 시작했다.
***
한 달 뒤 새벽 놀이터.
미끄럼틀을 향해 사격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연희.
그리고 그 뒤로 마치 감독처럼 팔짱을 끼고 있는 정욱이 보였다.
정욱이 연희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자 이제 해봐."
"응... 흡!"
한마디 대답과 함께 연희는 손가락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손가락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 지금이야 쏴!"
정욱의 외침에 연희는 손가락 총을 쐈다.
빨갛게 달아올랐던 손가락에서 무언가가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럼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욱과 연희의 사이에는 적막이 흘렀고 그 적막을 깬 건 정욱의 입이었다.
"고생했어... 성공했네..."
연희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정욱을 끌어안았다.
정욱이 당황하자 연희도 부끄러운지 후다닥 떨어지며 말했다.
"고마워..."
"명심해... 수명 1년이야... 네가 잘 생각했으면 좋겠어..."
"응... 고마워... 사부..."
"힘내라... 그동안 미안했다. 제자... 아니 이제 친구 하자. 더 이상 너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게..."
"그래도 난 내 복수를 멈추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한 달간의 수련 시간이 끝났다.
정욱은 연희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욱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연희는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난 이제 강해졌어...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야..."
***
다음날.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은 연희를 옥상으로 불렀다.
연희도 평소 때처럼 그들을 따라나섰다.
옥상에 도착한 연희는 아이들 무리 중 가장 악질이었던 학생을 마주 보고 손가락 총을 만들고 섰다.
그러자 악질인 학생이 비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미쳤구나 네가? 뭐 하냐 너? 왜 총이라도 쏘시게?"
"이제 그만해... 나도 더 이상 너희에게 당하지 않을 거야..."
"그걸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뭐? 장풍이라도 나와?"
학생의 말에 주변 모두가 조롱하듯 웃어댔다.
그들은 몰랐다. 그들에게 곧 닥칠 고통을 말이다.
그리고 연희는 자신을 비웃고 있는 학생을 향해 손가락 총을 조준한 채 말했다.
"빵!"
그 순간 쿵 소리와 함께 그 학생이 나가떨어졌고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으악!!! 뭐야!!! 아파! 아프다고!!! 제발 살려줘!!! 제발!!! 내가 잘 못했어!!! 그만! 제발 그만하라고!!"
바닥에 몸을 뒹굴며 학생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고통에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다른 아이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자 연희가 손가락 총을 또다시 들며 말했다.
"하나, 둘, 셋.... 5년이네... 오늘은 5년 더 빨리 죽는 걸로 하지 뭐..."
이 한마디와 함께 연희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바닥에 뒹굴며 고통에 소리쳤다.
총을 너무 많이 쏜 부작용일까?
연희도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힘이 빠져 손을 들 힘도 없었지만 연희는 또다시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악한 미소를 씩 지으며 말했다.
"두방... 두방 맞으면 어떻게 되나?"
연희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총을 쏘려는 순간.
옥상으로 올라온 정욱이 소리치며 연희 앞을 막아섰다.
"연희야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저 녀석들 때문에 너를 망가뜨리지 마... 여기까지만 하자... 친구야."
정욱의 한마디에 연희가 옅은 미소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5년 버리고 친구하나 생겼네... 앞으로 계속 친구 해줘..."
"그래... 가자 연희야..."
정욱은 연희를 부축한 채 옥상을 내려갔다.